IMG_1376, originally uploaded by parkyocheol.


얼마전 주일아침에 가족들과 같이 밤을 따러 간 적이 있다. 동네 뒷산이 밤나무 천지라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포대자루에 담아가는 분도 있다고 한다. 산밤이라 알이 작지만 그만큼 맛이 알차다. 들뜬 기분으로 네가족이 산을 올랐다.

산이라고 해봐야 약수터 가는 동네 뒷산이므로 약수터 입구에 접해있는 우리집에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로 산으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런데 밤이 익었다는 얘기를 들은지 채 며칠이 되지도 않았건만 등산로를 따라 난 길에 떨어진 밤치고 온전한게 없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산이니 길가에 밤이 남아나기를 바란게 무리였다. 오죽했으면 산에 사는 동물들을 위해서 도토리를 남겨달라는 플래카드까지 걸렸을까. 기껏 줍고 보면 줍기 민망하리만큼 작은 밤들이라 큰맘먹고 집을 나선 가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발길이 안 닿은 등산로에서 먼 쪽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역시나 조금만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니 줍지 않은 밤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미친 듯이 밤을 주워댔다.

그런데 일단 아내와 5달된 희원이가 할 일이 없어졌다. 그 두사람이 따라올 만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껏 아빠를 따라다니는 네살배기 희원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나뭇가지와 비탈길에 막혀 줄곧 아빠를 찾는다. 뭔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은 이미 저쪽 밤나무 밑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결국 아내는 배가 아프다며 먼저 산을 내려갔다. 가져간 비닐봉지에 밤을 가득 채워오라는 하명을 남긴채...

내가 가족들과 함께 산을 오른 이유는 뭐였을까? 산밤이 알차다고는 하지만 밤을 먹고 싶어서 나선 길은 아니었다. 아내는 밤을 주우면서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가 목적이었는지 모른다.
밤줍기는 그저 그러한 가족간의 교감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그런데 수단이 그 목적을 넘어서버리자 아내는 작은 절망을 느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나의 주위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행복이란 꼭 무언가를 이루거나 성취해야 한다고 우리는 무의식중에 교육을 받아왔다. 싸우면 이겨야 하고 뭔가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했다. 그러나 그 무엇을 하는 과정을 즐기는 법은 배우지를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좇지만 그것은 언제나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항상 한발짝 앞에 있었던 것이다.

시간과 장소와 사람을 누리는 지헤를 배우고 싶다. 인생을 지혜롭게 살았던 사람들의 책은 결코 목적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 목적을 이뤄가기 위해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성공이든 실패든 그 순간을 누리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다음번에 산을 오르면 몇 알 안되는 잠을 주워오더라도 아내나 아이들이랑 더 많은 얘기를 나눠야겠다. 밤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행복은 내가 정성과 마음을 쏟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행복을 좀 더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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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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