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베리아

완벽한 하루 2006. 10. 20. 06:31

며칠전 주말에 서원이와 함께 산세베리아의 화분갈이를 해주었습니다. 너무 커버린데다 몸에 맞지 않는 작은 화분이 급기야 깨지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분 하나만 따로 사기가 마땅치 않은데다 게으른 주인 탓에 그야말로 산세베리아만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와중에 꽃까지 피운 겁니다. 서원이와 함께 앞산 어귀에서 지렁이가 득실거리는 좋은 흙을 퍼와서 비록 버려진 것이지만 큰 화분에 옮겨다 심었습니다. 물도 시원하게 뿌려주구요.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산세베리아는 와이프가 이웃집 아줌마에게 얼떨결에 얻어온 것이라 합니다. 이게 뭐야 투덜거리며 싫다는 말은 못하고 받아온 모양인데 그후로 산세베리아는 철저하게 버림받은채 커왔습니다. 반면 이웃집 아줌마는 지극 정성으로 키운 모양인데 결국 지금 살아남은 것은 우리집 산세베리아입니다. 꽃까지 피웠다는 얘기는 아까 드렸지요?^^

최근에 '관심'에 대한 책들이 집중적으로 출판되고 저 역시 관심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전에 한번 얘기드린바 있지만 그러나 과유불급,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더 나쁠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게 되네요. 이런 예는 사실 흔합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나비가 안타까워 도와주면 곧 죽어버린다죠. 이런 원리는 우리들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인듯 합니다.

가능하면 서원이를 강하게 키워주고 싶습니다. 저랑 외모는 물론이고 습관, 성격까지 유사한 서원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만 준다면 나약하게 자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제가 그랬기 때문입니다. 어찌나 겁이 많았던지 친구들이랑 산에 갔다가 다리 많이 달린 거미를 보고 울고, 공부가 힘들다고 울고, 저보다 어린 동생한테 맞아 울고... 제 어릴 때 삶은 그야말로 나약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제가 이나마 사회생활을 하게 된건 나름대로는 힘든 삶의 경험들을 거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스승은 아끼는 제자를 무조건 싸고 돌지 않습니다. 오히려 혹독한 고난을 맛보게 하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고 자라게 합니다. 아끼기 때문에 더욱 그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벌을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과정은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것들은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루어야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오늘 내게는 어떤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러나 거기에서 단 한가지라도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있는 어려움이라 생각합니다. 예상치 못한 실패에서 배우라고 말했던 피터 드러커의 말이 가슴에 깊이 와닿는 아침입니다.

그러니 오늘 혹 힘드시더라도 너무 투덜거리지만은 마세요^^
우리가 자라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 카트라이더 박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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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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