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Author : 박요철 / Date : 2006.10.25 10:01 / Category : 완벽한 하루

저희 동네는 세대수가 많은 빌라촌이라 항상 주차공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이중주차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인도에 차를 올려두는 경우도 많은데 이게 문제입니다.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떡하니 인도를 막고 있는 차들, 결국 차도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때 시쳇말로 두껑 열리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지나갈 수 있는 조그만 틈마저도 만들지 않고 주차를 시켜놓은 차들을 보면 언젠가는 한번 해보리라 맘먹고 있는 비장의 무기가 떠오릅니다. 바로 이쑤시개, 들은 얘기지만 열쇠구멍을 막아놓으면 차문을 못 연다나요^^

아무튼 살다보면 이런 사소한 분노에 피가 거꾸로 쏫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되는데 저는 남들도 이런 줄만 알았습니다. 한번은 아내와 함께 길을 가다가 인도를 가로막고 막 주차하는 차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쌓여왔던 분노가 폭발하면서 상상만 했던 욕들이 거침없이 차주인을 향해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발견한 한가지,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차주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입니다. 내가 심한거구나, 내가 오바하는거구나 그런 생각이 퍼뜩 들자 한없이 무안해진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몇번 경험한 바지만 아내는 이런 면에서 저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여자이긴 하지만(여성을 비하할 뜻은 전혀 없답니다^^) 저보다는 인격적인 면에서 큰 그릇임을 깨달을 때가 많죠. 사사로운 감정을 함부로 흘리지 않습니다. 나는 아내의 이런 면을 종종 흠모해왔는데 쉽게 배울 수 있는 건 아닌 듯 합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섬세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만^^

최근에 읽고 있는 '긍정심리학'을 읽다보니 '행복'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풀리는 것을 느낍니다. 이를테면 저처럼 감정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행위는 오히려 건강에 더 해롭다고 하네요. 어린 시절의 상처를 되집어 해결하는 것 역시 프로이트가 우리에게 던져준 큰 오해라고 합니다. 이 책 뿐만 아니라 많은 책들이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마라'로 충고합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도 자주 사사로운 일에 목숨 거는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소량 계산대에 떡하니 5개 이상의 물건을 올려놓거나 버스안에서 DMB를 큰소리로 틀어놓고 보는 사람, 파란불인데 건널목 한가운데 차를 세우는 사람, 그럴 때면 저는 이런 상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느끼는 분노의 안테나들을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는 상상입니다.

어떤 수도승이 3년의 수련을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스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스승앞에 섭니다. 그런 그에게 스승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꼭 하나만 묻겠다. 꽃이 문간에 세워둔 우산대 오른쪽에 있더냐 왼쪽에 있더냐?"
제자는 두말 없이 다시 3년의 수련을 시작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삶의 지혜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에서 나오며, 그같은 애정은 사람에게 '여유'를 선물합니다. 내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더 깊고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이 여유일 듯 합니다. 내 속에 이런 여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작은 짜증과 불편이 나를 분노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여유를 위해서 우선은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인데... 나는 아직도 이 모든 것에 한없이 서툽니다.

그러나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조금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우리 희원이에게 '진짜' 웃는 법을 배워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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