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매주 있는 교회 모임에 갔다가 한 분이 심각하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을 들었습니다. 직장에 상사가 한 분 있는데 도저히 함께 일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일을 하자니 아무리 본심을 숨긴다 해도 하루 하루가 지옥 같다고 하소연합니다. 한 잔 하신 듯 빨갛게 상기된 그 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 땅의 샐러리맨들이 겪고 있는 고충이 나이나 직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공감 반 씁쓸함 반으로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너 번 옮겨 다녔던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습니다. 사실 그 중에서 두어 번은 거의 도망치듯이 회사를 떠나 왔으니까요. 함께 일하던 상사가 나 모르게 등 뒤에서 칼을 꽂은 적도 있고 (비유가 너무 적나라함을 용서하세요.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이랍니다), 철저한 지역 감정으로 무장한 탓에 인간적인 환멸을 느껴 떠나온 적도 있습니다. 성격이나 기질, 일하는 방식이 달라 부딪혔던 적도 숱하게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듯 합니다. 이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어딜 가도 반복되는 똑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진리를 말입니다. 그보다는 정작 고민하고 안타까워해야 할 사실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이어지는 어떤 집사님의 얘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학교를 다니면서도 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을까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어떤 것보다 필요한 자질이자 능력인데 말입니다…”

얼마 전 이곳을 통해서 소개했던 서원이 동기 대현이가 문득 떠오른 건 어제의 모임이 끝난 지 한참 뒤인 지금 글을 이 순간입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얘기하지만 상황이 바뀔 것 같지 않으면 그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냅니다. 이를테면 서원이가 자전거를 양보하지 않으면 뒷자리에 타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뒷자리를 타면서도 앞자리보다 더 큰 즐거움과 만족을 누릴 줄 알았습니다. 양보하지 않는 서원이를 향한 원망은 이미 저 멀리로 날아가버린 상태입니다. 온 동네 아줌마들이 대현이를 반기고 함께 놀기를 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기는 저는 네 살배기 대현이보다 나은 게 없습니다. 타고나지 못했다면 배우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머리에 잡다한 지식은 많이 쌓았는지 모르나 인간관계의 아주 단순한 원리조차도 이제서야 ‘아 그랬구나…’하면 깨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마흔을 훌쩍 넘긴 다른 집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같은 물을 먹고도 뱀은 독을 만들지만 벌은 꿀을 만들어냅니다. 똑같이 어려운 상황, 힘에 겨운 사람을 만나고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그런 지혜. 그런 지혜는 우리가 학교에서는 결코 배우지 못했던 과목들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책들을 통해서, 대현이를 통해서, 나 자신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관계들을 통해서 배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꼭 과락만은 면하고 싶으네요^^



* 드라마 '황진이'를 보던 와이프가 그 감동을 이기지 못해 7개월 된 자기 딸의 '화초'를 손수 올려주었습니다. (화초가 뭔지 모르시는 분들은 직접 검색해보시길^^)

'완벽한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이버 오늘의 책  (4) 2006.11.15
황진이, 이런 드라마를 일찍이 본 일이 없다...  (3) 2006.11.11
거저 받았으니 거저 나누라  (935) 2006.11.09
수리력 1.1  (10) 2006.11.08
처제의 해피엔딩^^  (789) 2006.11.06
Posted by 박요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