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교회 모임이 있어서 한 집사님 댁을 찾았습니다. 마침 우리처럼 새로 이사한 집이라 예기치 않은 목사님의 심방이 있었나 봅니다. 갑작스런 일이라 당황하고 있는데 다른 집사님이 절더러 앉으라 하시더니 부부간의 관계나 기질에 관한 목사님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아마 저희들이 오기 전부터 계속되던 얘기인 듯 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라 급작스런 일에 내키지 않는 마음이 있었지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자신의 말에 모든 이들의 아멘을 요구하더니 급기야는 서로를 세워주고 격려하는 말을 하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시더군요. 결과만 말씀 드린다면 저는 그날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지 않은 이런 일방적인 리드나 결정이거든요.

저는 이 글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취지로 쓰고 있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이 글을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쓰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이토록 고집스런 일면이 있다는 것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사회성이 뛰어나신 분들에게는, 아니 평범한 분들에게도 어쩌면 이해 못할 행동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분위기 맞춰서 한번 손바닥을 마주쳐줄 법도 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씩 이러한 고집을 꺾어 버리지 못하고 관계까지 틀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겪었던 좋을 일들만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자주 끌리게 됩니다. 굳이 미화하지 않더라도 숨기고는 싶은 거지요. 결과적으로 내가 공개한 글들은 대개 나의 반쪽만을 보여주게 됩니다. 나는 나의 고집스러움만큼이나 이런 위선도 때때로 견디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모자람이 지나칠 때보다 나은 법인 것을요. 당장 토해놓으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나 그 글을 읽는 사람에게 끼칠 해악을 세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절필의 한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런지요. 자신의 겉모습과 실체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자기계발’에 관련한 서적을 절반만 신뢰합니다. 실천이 힘들어서도 그렇겠지만 사람이 언제나 에너지 충만한 상태일 수는 없다고 은연중에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앞의 일과는 전혀 상관 없는 또 다른 어떤 일 때문에 분기 가득한 채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왔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수 많은 책들이 말하던 진리는 뭔가 생각해보니 왠지 부질없는 듯한 스산함이 밀려들더군요. 그러나 잊지 말자구요.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법이랍니다. 내가 읽은 것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내 몸이 말하는 것 사이의 괴리감은 인간인 이상 당연한 것이니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화나는 날은 그냥 화를 내렵니다. 그러나 나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옳은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 가득한 온전한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 내가 화를 내기로 작정한 때문이지 외부의 어떤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게 그 일을 기록으로 남겨놔야겠습니다. 좋은 날은 결코 기억해낼 수 없는 그런 기분과 느낌이니까 말입니다.

저는 과연 이 글을 남들에게 내보일 수 있을까요?
내기할까요?^^



* 글쎄, 우리 아들이 요즘 가장 갖고 싶은게 '알콩이 소꼽놀이 셋트'라는데... 이를 어쩌죠?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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