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극장 나들이를 갔습니다. '황후화'라는 장이모우의 영화였습니다.

이 사람의 영화를 보고 나면 스토리보다는 그 강렬한 색채가 먼저 떠오릅니다. 붉은 수수밭의 기억이 그렇고, 걔중 최근에 본 영웅과 연인의 경우도 첫영화만큼은 못해도 그가 얼마나 영화에서의 '색'을 중요시여기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연인의 경우는 영화 전개에 따라 대표하는 색들이 달랐던 기억이 나고, 영웅의 경우는 등장인물에 따라 테마컬러를 따로 가져갔더군요. 중국인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영화는 아무래도 금빛 찬란한 '황금색'이 메인 컬러였던 것 같습니다. 10만의 반란군과 이를 진압하고자 하는 그 이상의 은빛 군사들이 보여주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근래에 보기 드문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전해준게 사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장이모우는 이 영화를 통해서 중국의 존재와 저력을 표현하고 싶어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압도적인 스케일과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배경과 소품, 그리고 황제와 황후가 보여주는 사치의 절정은 '중국은 이런 나라다'라는 사실을 항변하는 그런 홍보영화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황진이'를 보고 한복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던 저를 참으로 무색하게 만드는 잔인한 장면이기도 했구요. 저만 그렇게 느꼈을까요?

그러나 이 영화를 끝까지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화려함을 덮어 쓴 '그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는 아주 평범하고도 당연한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황제는 그의 아내를 비롯하여 옛 아내, 그리고 태자를 포함한 현재의 세 아들을 모두 잃습니다. 그가 그러한 압도적인 권력과 쾌락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러야 했던 희생치고는 너무 잔인하다 싶을 정도의 영화적 설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게 그냥 영화였을까요?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을 한 화면을 통해 모아놓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군요.

욕심, 그리고 그 분노의 크기가 이 영화의 스케일보다 더 크면 컸지 작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그 끝이 있을 수 없고,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더 큰 분노를 키울 수 밖에 없는 사람살이의 피곤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그리고 나는
언제쯤 그 욕심과 분노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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