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점심은 크게 세가지로 나뉩니다.
도시락을 먹거나 동료들과 식당을 가거나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그중에서 도시락은 아내가 아이 둘과의 씨름이 깊어지면서 포기한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점심약속을 통해 식당에 들르거나 혼자 산책을 합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산책 얘기를 해볼까 해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 공원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공원을 특히 좋아합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공원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공원을 돌아다니며 나무에 대한 설명을 일일이 다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청단풍과 홍단풍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기 위해 두 나무 사이를 오간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편의점으로 바뀐 매점의 국수를 사랑했습니다.
어느 정도 단골이 되자 사리도 덤으로 나오고 외상으로 국수를 먹기도 했습니다.

공원은 봄과 가을이 일품입니다.
나는 혼자 있다는 것을 즐깁니다.
깊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행복해합니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을 느낍니다.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진정한 자유로움 속에 한껏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에 둘러싸이면 나는 에너지를 빼앗깁니다.
그래서 내게는 충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더욱 행복합니다.
새벽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깊은 몰입이 이 공원에서는 가능합니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책 속의 주인공과 나누는 대화처럼 즐거운 일은 다시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시간을 누리는 시간이라기보다 훈련의 시간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속에서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치열한 훈련의 시간으로도 여깁니다.
휴식과 훈련,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이 두가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산책과 독서, 혼자로서의 나 자신을 깊이 있게 대할 수 있는 것,
이것은 휴식이기도 하고, 때로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나는 내가 나무처럼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나무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향기로 인해, 내가 맺는 열매로 인해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내가 가진 전부를 주겠습니다.
준것보다 더 많은 열매와 가지와 잎을 맺을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빠른 걸음으로 산책을 즐깁니다.
하천을 따라 곧게 단 자전거도로 위를 가볍게 걷습니다.
땀이 배이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땅 위를 걸으면서
오후에 있을 가장 완벽한 하루를 준비합니다.
내 인격의 부족함, 그리 호락하지 않은 일터의 환경도
이러한 준비의 시간을 매일 가질 수만 있다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 순간에 흠뻑 젖어들이 그 시간을 내 것으로 온전히 만들 수 있다면
절대적인 의미의 한시간, 두시간은 그렇게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이런 시간들로 나의 하루를 채우고 싶습니다.

혼자 된다는 두려움에 겁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사람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루에 한 시간 그들로부터 떨어진다 해서
낙오되거나 소외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되려 나의 깊은 성찰이 그들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10분전, 아쉬운 마음으로 공원을 떠납니다.
좀 더 이 자유와 여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이 시간들이 더욱 소중한 것이니 뒤돌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치열한 삶속으로 행진해들어갑니다.
성공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실패와 절망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일 다시 충전하면 됩니다.

혼자서 보내는 완벽한 점심,
그 점심을 나와 함께 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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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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