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 소년동아일보에 기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주의 장원을 했고 3000원짜리 두꺼운 소설책을 받았어요.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슨 글짓기 대회를 한다고 하면 거의 빠짐없이 나갔습니다.
언젠가 상을 받는데 저 혼자 남자애라서
'청일점'이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중학교 영어시간,
갑자기 선생님이 '시'를 영어로 뭐라 하는지 아느냐 물으셨습니다.
내가 대답했죠. poet이라고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온 후 아주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던 시절,
나는 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단어를 알고 있었습니다.

중 3때는 소설을 썼어요.
스프링노트로 몇백페이지나 되는
지금도 그 원고는 부산에 있는 집 어딘가에 있는데
그 유치찬란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꽤 스케일은 컸답니다.
배경이 미국이었는데
저는 한번도 미국에 가 본 적이 없거든요.

고등학교 국어시간,
비가 오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시를 쓰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 시를 보고서 실제 시인에게 보여줬나 봅니다.
그 분이 이랬다더군요.
'고등학생의 시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나이 많은 국어선생님은 그러셨어요.
'먼저 사람이 되라'

고 3때는 시집을 냈어요.
제가 쓴 시를 복사해서 시집을 열 권 남짓 만들었지요.
근사하게 사인도 해서 친구들에게 돌렸어요.
그 시집은 남아 있지 않지만
친구들은 그 시집의 제목을 기억할 겁니다.
'시에 영혼을 팔아먹은 소년'
그 후로 친구들은 저를 글 잘 쓰는 아이로 알아주었습니다.

고3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글쓰기의 소질을 다시 인정받았습니다.
그후로 10년간 주보를 만들었습니다.
글을 쓰는게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의 직장에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1년에 백권, 혹은 이백권
매주 월요일에는 서점으로 북헌팅을 다녔습니다.
일주일 내내 그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서평을 써서 그로 인한 적립금만 두어달새에 몇 십만원이 쌓였어요.
그리고 그 내용들을 직원들에게 매일 아침 메신저로 나눴습니다.
딱 1년동안.

그 후로 회사 사람들은 제 외모고 공병호를 닮았다고도 하고
하는 짓?이 구본형씨를 닮았다고 합니다.
'비전으로 가슴을 뛰게 하라'의 내용을 아시는지요?
이 책의 주인공이 딱 저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쓴 블로그 글을 읽고
출판사에 계신 한 분이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언젠가 좋은 책을 쓰실 것 같다고.
저도 그럴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기를 모를 뿐이지.

한번은 나름의 영역에서 전문적인 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모임에서
'400권의 책읽기'라는 작은 강연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흥미로워하셨고
무엇보다 제가 행복했습니다.

윤문을 의뢰받았습니다.
개정판의 내용을 거의 모두 새로 썼습니다.
책이 가진 메시지를 제가 가진 경험으로 풀어썼지요.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몇달동안 정말 힘들었고 또한 행복했습니다.
하루는 휴가를 내서 10시간동안 썼습니다.
화장실을 두세번만 가고 글만 썼습니다.
근래 들어 그렇게 행복한 적은 다시 없었습니다.

책, 글쓰기는 제게 운명같습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쓰게 될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이 재주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행복이겠고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이 세상에 보내신
그 뜻을 이루는 일이 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언젠가 쓰게 될 그 책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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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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