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이 책을 소개하고 다녔지만 반응은 별로였다. 적어도 회사 안에서는 말이다(사람들이 유머가 없어!!!). 아무튼 좀처럼 '흥이 난' 내 모습을 보지 못하는 아내는 달랐던 것 같다. 아직 한두 시간은 읽을만한 분량을 책날개로 표시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이 책을 동시에 읽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씻기는 손에 나와 같은 흥을 담아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재밌다'고 말한다. '잘 쓴 글은 아니지만...'이라는 사족을 달긴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을 막 다 읽었다. 그리고선 생뚱맞게도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 흥미있어 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충돌'임을 새삼 깨닫는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 '충돌' 때문이다. 전쟁 3부작과 로마인이야기 2부 '한니발 이야기'가 읽은 책의 전부이긴 하지만 그녀의 출중한, 생생한 글쓰기 능력만큼이나 그 소재 자체에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 두 문화의 충돌, 바로 그것이다.

'마이 코리안 델리'는 그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책과 비슷한 감흥을 준다. 그 무슨 어거지냐며(특히 시오노 나나미의 광팬이라면)따질 분이 혹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 이주민의 새로운 역사를 썼던 한국인 장모와 함께 델리를 운영했던 이야기를 그야말로 미주알 고주알 써내려가는 '샌님(아내의 표현대로라면)'의 충돌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흔적이 아닌 현실로 만난 청교도 출신의 글쟁이 사위의 푸념과 호소와 애정어린 고자질이 눈 앞에 보일 듯 생생하게 살아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문학과 사람, 어쩌면 뉴요커의 삶 자체를 사랑한 듯 보이는 조지와 가게 점원 드웨인, 그리고 그 주변의 이야기는 생생하다 못해 눈물겹다. 그래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명언, 혹은 격언을 기어이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글 비슷한 것을 써서 먹고 사는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단 한 가지다. 글을 재밌어야 한다는 것, 심장의 박동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사는 것, 그리고 읽는 것은 즐거운 일임을 읽는 독자들에게 환기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주말 아들이 읽던 로알드 달의 소설(우리의 챔피언 대니)을 펼쳐들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썼길래 아홉살 짜리가 일요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서너 시간을 숨도 안 쉬고 책을 읽게 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포스트로 올릴까 한다).

아무튼 책장을 막 덮는 순간, 아내에게 이 말만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팬티 바람으로 편집실을 서성이던, 저자가 오픈한 델리의 점원으로 일해보기를 진심으로 흥분해마지 않으며 바랬던 '파리 리뷰'의 편집장이자 보스였던 조지가 어느 날 아침 심장 마비로 일어나지 못했으며, 하이네켄 12개를 매일 마시며 작가의 유일한 친구로 표지 모델을 장식했던 드웨인 역시 동맥류로 짧았던 이 생의 마지막을 장식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400여 페이지를 가뿐히 넘기는 이 책의 촘촘한 활자 속에서, 넘을 듯 말 듯 넘실대던 웃음과 울음, 희극과 비극의 교차점 사이에서의 아쉬운 여행을 마무리하며 오랫만에 서평 하나를 끝까지 써본다.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코리안 델리의 소박함, 절박함, 간절함과 다른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스스로 자문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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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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