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에 대자보 하나가 붙었다.

대자보의 제목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의 명문대,

그것도 최고 인기학과의 학생이 자퇴를 하면서 남긴 파장은 적지 않았다.

수많은 언론이 이 대자보를 기사로 올리며 사회적인 공감과 자성의 소리들을 불러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그다지 많아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치열한 경쟁의 맨앞을 달리던 이들이 보내오는 비보다.

죽을 힘을 다해 성공의 정점에 다달았던 이들 역시

또 다른 형태의 막다른 골목에 막혀 절망을 말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고,

우리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같은 날 어느 인터넷 신문에서

15살(우리나라로 치면 중2다) 독일 소녀의 인터뷰를 읽었다.

이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무엇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지를 토론을 통해 배운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은,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거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다양한 것이요. 얼마 전에 있었던 프랑스 파리 테러 사건이라든지, 인종차별이라든지, 환경문제라든지요. 아, 전 특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작년에 교환학생으로 이스라엘에 다녀왔었거든요. 그저 남의 나라의 민족 간 분쟁이 아니라 당장 나와도 관계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교환학생으로 있는 동안 생각하게 됐어요.”


오래 전 읽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애벌레들도 다른 애벌레들을 밟고 올라 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꼭대기에서 마주한 현실은 처참하다.


“야! 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 바보야 조용히 해, 저 아래서 듣잖아.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여기야.”

줄무늬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올라온 것이 헛일이라니! 아래서 볼 때만 굉장해 보였구나.’


그러나 몇몇 애벌레들은 그 무리에서 빠져나와 다른 선택을 하고

고치가 된 그들은 결국 나비가 된다.

명문대를 포기한 대학생 김예슬의 선택은

과연 나비가 되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치열한 삶의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는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 관련기사


3월이면 생각나는 그녀의 용기, <김예슬 선언> 5년

http://goo.gl/pRfyMS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몰락하는 중산층 10장면

http://goo.gl/eJKJNs


2년 전까지만 해도 A씨(55세)는 중견 금융회사의 부장급 간부였다. 상류층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중산층은 된다고 자부했다. 퇴직 후 눈을 낮추면 소소한 일자리는 있겠지 싶었지만, 현실은 전쟁터였다. 재취업은 불가능했다. 중소기업 재무담당 경력채용 공고가 나오면 경쟁률이 금방 수백대 1을 넘었다. 2년여 백수생활 끝에 A씨는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더 이상 놀 수는 없지 않소. 앞으로 살 날이 얼만데…”


독일 15세 소녀의 일침… 한국 중학생이 보면 열받겠죠?, <오마이뉴스>

http://goo.gl/jznGXY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중요해. 머리가 똑똑한 것이 나무로 의자를 잘 만든다거나 기계를 잘 고친다는 것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다른 것뿐이잖아.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면 그만큼 따분한 세상이 어디 있겠어.”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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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를 좋아한다.
흔히 다큐하면 BBC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떠올리지만
한국의 몇몇 다큐는 그 수준이 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100여 편의 다큐를 직접 소장?중이니 개인적이지만 터무니없는 의견은 아니다.)


그래도 그 중 몇 편을 꼽으라면 다음의 두 편을 꼽겠다.

바로 '누들로드'와 '아이의 사생활'이다.
면을 좋아하는 사적인 취향에 영향을 받은바 크지만,
면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세계사를 풀어간 '누들로드'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만으로도 충분히 역작이라 할만한 다큐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유익하고 흥미롭다.


또 다른 한편인 '아이의 사생활'은 두고 두고 다시 보는 다큐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교육 때문에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에게는
수십 권의 자기계발서보다 몇 배는 더 유익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특히 '자존감'에 대한 명쾌한 정의와
다중지능이론을 통해 인간의 다양성에 집중한 구성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 자신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아래의 글은 그 PD가 쓴 글이다.

스티브 잡스가 얘기한 'Connecting the Dots'의 의미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아주 생생하게 풀어놓았다.

삶이란 점을 찍는 것이다.
자신만의 점을 찍어 궤적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점은 결국 내가 무언가를 '직접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궤적안에서는 실패도 성공이 된다.


p.s. 절대 공감하는,

인사이트가 가득한 근래 보기 드물었던 정말 좋은 글이다.


* 원글 링크 : 깊게 생각하지 말고 '한번 하기', 김민태 EBS PD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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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 년전, 처음으로 네이버 도서관을 찾았을 때 느낀 감정은 단연 부러움이었다. 햇빛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는 녹색 블라인드가 수백 평의 드넓은 공간에 시시각각 다른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안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건물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운 마음이 가득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최근 리뉴얼을 마친 ‘네이버 라이브러리’를 다시 찾았을 때 ‘더 이상 좋아질 무엇’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네이버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는 공간이 사람을 어떻게 배려하고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다음의 인터뷰는 그 ‘좋아진 무엇’에 관한 이야기다.

 

- The Interviewed with 네이버 CX 브랜딩팀 강새봄 수석 마케터, 오인숙 선임 마케터 

 

 

Q. 네이버 도서관을 연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다시 만든 이유가 뭔가?

 

네이버는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가 아니다.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블로그를 만드는 건 네이버지만 그 나머지 절반을 컨텐츠로 채우는 건 사용자다. 그래서 사용자의 본질, 즉 사람을 탐구하는 게 중요하다. 서비스의 형태와 디바이스는 달라지지만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는 직원과 지역사회를 위한 서비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행동의 본질을 찾아 서비스에 적용하고 싶었다.

 

Q.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다시 말하지만 네이버는 사용자 경험, 즉 UX를 고민하는 회사다. 사용자의 필요가 잘 반영된 도서관과 서가를 직원과 지역주민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검색이나 '네이버 캐스트'와 같은 서비스들을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는 컨셉이다. 그래서 크게 매거진과 디자인, 백과사전이라는 세 개의 테마를 잡고 각각에 맞는 공간을 별도로 구성했다.

 

매거진은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가로수길을 걸으며 쉽게 보기 힘든 잡지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디자인 테마는 생화가 심어진 책의 숲을 미로처럼 드나들며 자유롭게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 컨셉이다. 백과사전 코너는 다락방 깊숙한 곳에서 좋아하는 책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Q. 이러한 시도가 필요한 시장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3년 전만 해도 네이버 캐스트와 같은 서비스에 사람들이 반응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깊은 호흡의 잘 만들어진 컨텐츠에도 니즈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예, 스포츠 뉴스나 '오늘의 유머'와 같은 서비스에 열광하는 사람도 있지만, 음악이나 웹툰처럼 특정 영역에 미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전문적인 컨텐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따라서 직원들이 가장 먼저 이러한 변화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퇴근이나 점심시간처럼 직원들이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네이버 도서관을 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Q. 일종의 내부 브랜딩처럼 들린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혹 있었나?

 

내가 속한 CX팀에서 '키카드(key card)'라는 것을 만든 적이 있었다. 네이버가 원하는 인재상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직원들 각자가 상사와 동료, 부하 직원들을 리뷰했다. 경영자가 탑다운의 방식으로 점수를 매기는 평가가 아니라 '너는 이 점이 좋고, 저 사람은 이 점이 좋다'라는 식으로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나온 몇만 개의 리뷰들을 마흔여섯 개의 키워드로 다시 정리했다. 자연스럽게 네이버의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인재상을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면 이를 활용한 서비스는 물론 채용과 같은 인사 방식에까지 적용할 수 있다. 가장 네이버다운 사람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뽑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네이버다운 사람이 네이버다운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네이버다운'게 무어라 생각하나?

 

네이버는 24시간 계속되는 온라인 서비스다. 사용자의 니즈도, 그에 따른 시장 변화도 빠를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 스토리처럼 새롭고 다양한 서비스들이 쉴새 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조직개편이 계속되다 보니 직원들이 짐을 풀지 않을 정도다. 모든 사무 가구들에 바퀴가 달려있고, 심지어 임원들의 방도 손쉽게 뜯거나 옮길 수 있게 되어 있다. 심지어 빌딩 한 층의 구조가 통째로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수시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 전체가 유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구성원들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많다. 따라서 빠르지만(speedy) 유연하게(flexible) 남다르게(smart)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서비스로서의 네이버가 아닌 네이버를 만드는 사람과 문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세 단어가 네이버다움이 아닐까 싶다.

 

Q. 네이버 라이브러리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뭐였나?

 

도서관을 찾아 꼬박 이틀 동안을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일부러 노트북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마다 책을 고르고 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인문학책을 보는 사람들은 원하는 책을 발견하면 자리로 가져가 숙독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디자이너들은 찾는 책도 다양할뿐더러 그 책들을 바로 자리로 가져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펼쳐보는 경우가 많았다.

 

네이버 라이브러리의 공간과 인테리어는 모두 이런 사용자 관찰의 결과를 바탕으로 디자인되었다. 만약 예쁘고 멋지게 지으려고 했다면 오히려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관찰하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게 결과적으로 훨씬 쉽고 효과적이었다.

 

Q. 그러한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웠나?

 

도서관을 가장 일찍 찾고 오래 이용하는 사람들은 책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원래의 취지와 다른 사용자들이지만 이들의 출입이나 공부를 막을 순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패턴을 바꾸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예를 들어 탁자를 책 한 권만 겨우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로 만들었다. 책 읽기에는 불편함이 없지만 여러 권의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들이 여러 권의 책을 이동하면서 고를 수 있도록 북카트를 만들고, 큰 책을 굳이 자리로 가져가지 않고 펼쳐볼 수 있도록 책장 사이에 공간을 별도로 만들었다. 원래의 목적에 맞는 필요는 살리되 불필요한 행동은 가구와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한 것이다. 진정한 UX 디자인을 현장에서 배운 셈이다.

 

Q. 넛지를 연상시킨다. 스마트하다.

 

얼마 전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팀원들과 갑론을박이 있었다. 다큐의 내용은 질문이 사라진 대학 문화였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들었다. 질문하지 않는 것이 꼭 나쁜가 하는 거였다. 동양은 어떤 질문에 대해 바로 답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교육방식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선문답이다. 하지만 서양은 치열한 논쟁을 통해 답을 찾는 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 네이버와 라인을 위한 연수원을 짓고 있는데 이곳에 '비우는 공간'과 '채우는 공간'을 별도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인위적인 강제 없이 도서관 문화를 바꾼 것처럼 직원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사용자의 경험, 사람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간의 배치와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에 응용할 생각이다. 이게 네이버답게 일하는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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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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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워서였다.
2년 꼬박 아이폰 3GS를 썼다.
추호도 의심없이 아이폰5로 옮겨가리라 믿었다.
그러다 우연히 옵티머스 뷰2를 만났을 때 문득 그런 ‘자각’이 일었다.
스티브 잡스도 세상을 떠난 마당에
길어지고 빨리진 것 말고는 도무지 달라진 게 없을 것 같은 아이폰5로 왜 갈아타야하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딱 2달이었다.
5인치의 화면, 안드로이드폰의 생경함이 신선함으로 작동하기까지는.
이유야 많다.
출근길과 퇴근길, 5인치의 화면에 커버까지 여닫는 과정이 몹시도 걸리적거렸다.
굳이 볼륨을 모두 줄여야 진동으로 바뀐다거나,
살짝만 눌러도 작동하는 버튼에다 메뉴 버튼까지 피하느라 손에 걷돌기 일쑤인 점,
뭔가 2% 부족한 아이콘과 UI의 어설픔이 무뎌지기는 커녕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2달이 지났을 때 폰을 갈아탈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고,
나는 미련없이 안드로이드를 버리고 좁고 길쭉한 아이폰5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폰으로 돌아온 이유를 단 한 가지로 말해야만 한다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것도 어렵지 않다.
솔직히 앞의 이유들은 정말로 사소한 것들이다.
아이폰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아이폰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폰이 아름답다니...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전제를 달고도 멋쩍은 이유다.
전화를 하고,
웹서핑을 하고,
은행일을 보고,
또 그 외에 몇 가지의 앱들을 쓰고...
그런데 폰이 아름답다니.
아름다워서 쓰고 있다니.
그런데 사실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알루미늄의 테두리 마감과
차가운 질감을 즐기기 위해
케이스를 몇 개를 샀다가 벗기고,
필름을 몇 번을 씌웠다가 떼내버리는 모양새가 그렇다.
그 증거다.
그런데 이유는 정말 그것 뿐인가?

시보레는 차 이름이 아니다.
하일권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졸업 작품을 장편으로 연재한
‘3단 변신 김창남’이라는 웹툰의 주인공 이름이다.
좀 더 정확히는 로봇의 이름이다.

이 웹툰은 뭐랄까...
식상한 소재와 식상한 주제의 조합물에 가깝다.
학원물에 왕따,
성긴 구성에 SF 흉내를 낸 어설픈 퓨전음식 같달까?
하지만 대단한 흡입력이 있고,
생뚱맞지만 지리함으로 늘어지지 않는 오버스러운 유머가
이제 그만 봐야지 할 때쯤 감칠맛을 낸다.
그러다 서서히 몰입으로 이끌고 끝내는 마음 속 작은 오열을 끌어내고 만다.
아...
이건 뭐지?


로봇이 있다.
이 로봇은 여학생의 외모를 그대로 재현해냈을 뿐
말투도 동작도 기계적이다.
다만 아주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인격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 점이 포인트다.
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왕따로 고통받는 한 소년의 설익은 감정이 쉴 자리를 만들어준다.
계산치 않고,
거짓이 없으며,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이 작동하자
작은 변화들이 일기 시작한다.
그 끝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가 만들었다.
이 둘을 서로 떼어놓고 말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3단 합체 김창남’이라는 웹툰을 보면서
웬지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이 자꾸 오버랩되었다.
어쩌면 스티브 잡스가 만든 건 전화기도 스마트폰도 아닌,
시보레 같은 로봇이 아닌가 하는,
외롭고 힘들 때 꺼내어 쓰다듬을 수 있는,
기계적이긴 해도 가끔씩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시보레와 시리...
뭔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브랜드를 구성한 기본적인 조건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실제의 필요를 채워주는 ‘기능적인 편익’이 있는가 하면
그런 유용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서적인 편익’도 있다.
이 정서적인 편익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 영향력 만큼은 막강하다.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을 쓰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들었던 친밀감과 소속감을 누릴 수 있으니까.
이는 모든 브랜드들이 다다르기 원하는 궁극의 경지다.
이 단계에 이른 브랜드는 마케팅도 프로모션도 필요없다.
기능적인 불편함도 유니크한 개성이 된다.
심지어 창업자가 죽고 주인이 바뀌어도 브랜드는 영속한다.
이른바 영생하는 브랜드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웹툰 ‘3단 합체 김창남’의 제목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로봇 시보레는 친구 자전거 이름에서, 로봇 번호는 군번에서 따왔다고 한다.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이 ‘호구’이다.
약간의 상상, 혹은 해석의 여지도 없는 직설적이고 무성의한 이름,
하지만 의도치 않게 던져진 메시지는 묵직하다.
왜 우리는 사람이 아닌 로봇의 인격에 감동하게 된 걸까.
만화 속 현실은 사실 과장이랄 것도 없는 그야말로 현실이다.
그 속에서 아주 기본적인 인격, 인간적인 관계에 대한 목마름을 발견한다.
이 만화에 마음이 움직인 학생들이라면,
사람들이라면,
그런 기본적인 인력,
그러니까 진정성에 목마른 것이다.

얘기를 맺자.
삼류 웹툰에 마음이 울컥했다는 사실을 떠벌리는 것도 개운치 않지만
웬만한 소설이 주는 감동 못지 않다는 고백 또한 사실이니까.
말하고 싶은 건 한 가지다.
우리에겐 점점 더 깊어지는 결핍의 우물이 있다.
그건 아주 작은 격려,
혹은 관심,
그리고 희망일지 모른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도 선뜻 하지 않는 손 내밀기,
자신이 피해자나 루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맛설 수 있는 적지 않은 용기.

어쩌면 스티브 잡스는
한 손에 꼬옥 감기는
그런 로봇 하나를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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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버트 라이시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그 스스로가 워커홀릭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그 일을 사랑한 모양이다. 그렇게 일했으니 인정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장관직을 내려놓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이런 스토리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니나 책의 서두에 밝히는 그 이유를 읽어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가 여느 날처럼 출근을 서두르던 어느 날 아침, 아들이 그를 붙잡고 자신의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마음씨 착한, 그러나 바쁜 아빠는 솔직하게 아마도 내일 아침이 되어서야 널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아이를 달랜다. 하지만 아들은 반드시 오늘이어야 한다고 아빠를 조른다. 그 이유를 묻자 아들이 이렇게 답한다. '아빠가 오늘 나와 함께 있었다'라는 사실을 눈으로 보아야만, 그러니까 밤에 자신과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 실제로 아빠가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라고 말한 것이다. 저자는 이 말에 충격을 받고 그 날로 사표를 쓴다.


어쩌면 사적일 수도 있는 저자의 경험담을 맨 앞에 쓰는 이유는 그가 이 책에 쓰고 있는 '신경제' 시대의 변화가 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 생각되어서다. 매끄러운 번역 탓인지, 아니면 저자 특유의 스토리 텔링이 진정성 있어서 그런 것인지 이 책은 내용의 무게게 비해 의외로 잘 읽힌다. 특히 미국의 과거사로부터 현재, 미래를 통찰해서 설명해주는 그의 안목은 마치 이륙 후 땅 아래를 내려다보던 아찔하고 놀랍던 첫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눈 앞의 현실을 붙잡기 위해, 발등에 떨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일반적인 책들과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 그것이 혹자에게는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또한 브랜드의 기원 혹은 태생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말한다. 자급자족의 경제에서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를 거쳐 양과 질의 끝없는 혁신을 요구하는 '신경제'시대에 왜 브랜드가 중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2000년 대 초에 쓰여진 책이지만 워낙 거시적으로 바라본 탓인지 십 수년이 지난 책인지 금방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였다. 브랜드의 기원에 대한 통찰이 중요한 이유는 조금 더 긴 안목으로 브랜드의 미래를 읽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안겨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뭔가'를 기대한 이에게는 다소 맥 풀리는 '미국식 긍정'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맺는다. 따지고 보면 어떤 답을 제시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라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반추를 통한 '오늘의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저자의 깊은 성찰 과정을 보여준 것이니 딱히 불만이라고 말할 것은 없다. 더구나 미국의 과거와 오늘은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대입하기엔 더 없이 좋은 모델이 아니던가. 급행 열차가 아닌 완행 열차를 타고 가는 여행의 느긋한 즐거움을 떠올린다면, 게다가 입에 착착 감기는 훌륭한 번역의 묘미를 떠올려 봤을 때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 이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서 읽어야겠다.

가능하면 같은 출판사, 혹은 번역가가 옮긴 책으로.


p.s. 이 남자의 키가 150이 채 안된다는 사실을 독서 중에 우연히 알았다. 그가 더 당당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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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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