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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화요일, 오래된 습관

Author : 박요철 / Date : 2007.08.27 14:55 / Category : 부흥

오래된 습관

토요일 밤에 같은 목장의 형제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다녀왔습니다. 80년대 이 땅에서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역사인 5.18을 영화로 옮긴 내용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영화를 보고 나오는 대부분의 형제들이 말이 없었습니다. 간만에 맞은 토요일 저녁의 망중 한을 보내는 방법 치고는 썩 지혜로운 선택은 아니었나 봅니다. (물론 언제 보아도 봐야만 하는 영 화였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 좋은 영화였음은 분명합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잠 못 든 채로 아이들과 함께 누워 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 은 항상 이런 여유에 목마릅니다. 특히나 혼자 있기 좋아하는 우리 두 부부의 성향 때문에라도 이렇 게 아이들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은 항상 큰 유혹의 대상입니다. 주일을 생각하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지만 10시 영화를 보고 났더니 시간이 벌써 1시가 다 되어갑니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컴퓨터를 켰다가 3시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삶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나를 갖다둡니다. 항상 어렴풋이라도 옳은 선택이 뭔지는 알고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다른 선택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 날처럼 말입니다. 후회할 줄 잘 알면서도 나는 종종 내 마음과 내 육체의 욕심을 좇아 개운치 않은 선택을 종종 합니다. 아주 오래된 습관입 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합니다. 삶을 초등학생이 여름방학 시간표처럼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인간적인 욕심을 따르는 것은 내가 너무나 평범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지 정죄받 을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때도 있습니다. 나는 성인(聖人)이 아닙니다. 주일 날 늦잠을 자 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야단맞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아마 야단칠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의 한 켠은 불편합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내 삶의 목마름

어머니가 주일 저녁에 전화를 하셨습니다. 전화를 하셔서는 대뜸 '아들은 전화 한통 하지 않고 다 필요없다. 서원이나 바꿔라'라고 얘기하십니다. 뭔가 서운하신겝니다. 순식간에 또 나쁜 아빠가 됩 니다. 아빠를 바꿔주지도 않고 전화를 끊는 서원이를 보면서 당장 전화를 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은 선택이다 싶어서 굳이 집으로 다시 전화를 하지 않습니다.

더운 여름날, 아내는 속이 좋지 않다며 위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병원엘 다녀왔습니다. 유난히 더위 를 많이 타는 희원가 칭얼대는 바람에 서원이는 혼자 방바닥을 뒹굴며 색칠공부나 블록으로 더위보다 더 지독한 심심함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희원이만 재우면 신나게 놀아주고 싶지만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밥을 찾습니다. 평소에 밥상을 차려주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오늘같은 날은 사람의 도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심심한 서원이는 이제 컴퓨터에 붙어 앉았습니다. 이럴 때면 참 착한 아들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안쓰럽기도 합니다. 가끔씩 희원이가 일찍 잠자리에 들기라도 하면 그 동안 받은 설움?을 한 순간에 털어내려는 듯 엄마, 아빠의 등짝에 매달립니다. 그런 서원이가 주일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니 또 한번 미안 함이 밀려듭니다. 왜 나는 더 신나게 놀아주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러보니 토요일 오후에 동네 뒷산 계곡에 놀러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내시경 검사로 지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좀 놀다 오래서 간만에 한식집 '희우래'가 있는 동네 계곡을 찾았습니다. 가는 길에 잠든 희원이를 눕히고 나니 욕 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서원이는 혼자 놀게 두고 나는 필립 얀시의 책 한권을 꺼내 읽습니다.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책을 읽자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서원이가 놀아달라고 조릅니다 . 나 역시 이런 천국같은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자꾸만 '나중에'라든가 '잠시만'이라는 말로 아 이의 간절한 목소리를 애써 외면합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불편하지만 사실 그 때 는 저도 저 나름대로 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니 다시금 그 기억이 떠오릅니다 . 참 미안합니다. 왜 나의 주말은 이렇게 부족함과 후회로 가득차 버린 것일까요? 제가 좀 게으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매번 돌아오는 주말마다 부지런히 살아가려고 애쓰는데 말입니다.

이전보다 조금 더 기도를 하게 되니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매번 기도를 통해 되새김질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이 들어 이제는 진부해질 정도의 표현이긴 하지만 나는 '나의 삶' 속에 내가 너무나 많이 있다는 사실을 기도를 통해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나'는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나입니다. '남'에게 간절히 인정받고 싶어하 는 나입니다. 일과 사람에 대한 성취가 내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도우미이지 조언자이자 멘토일 뿐입니다. 내 삶의 조력자일 수는 있어도 내 삶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하는 동안 끊임없이 내 삶의 주인 자리를 요구하셨습니다.

내 삶에 있어서의 목마름은 대부분 욕심에서 기인합니다. 성공하고 싶은 열망, 쉬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갈망... 우리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그 간절함에 대해 변명하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시간 그렇게 배워왔고 또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물속 고기처럼, 하늘을 나는 새처럼 우리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목마름의 습관입니다. 다만 그 욕망의 크기와 대상이 조금씩 틀릴 따름입니다.


답을 찾아서

그래서 한번 실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어리섞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무모한 도전입니다. 아주 거창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내 삶의 작은 울타리안에서 하나님을 주인의 자리에 올려놓는 아주 소심한 결정들을 하나 둘씩 실제로 실천해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우선은 내가 하는 일에 미치도록 집중하는 훈련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 일을 하는 그 시간만큼은 나의 온 에너지를 쏟아붇도록 애써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야근을 하지 않고도 탈진하도록,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일의 영역만은 아닙니다. 그 일을 함께 해야만 하는 모든 사람에게까지 해당되는 영역입니다.

그리고 일에 있어서 내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 발버둥쳤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의 주인공이 나일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다가올 영광을 기꺼이 허락하도록 애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인정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할만큼의 에너지가 소모됨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 자체에 심각한 상처를 주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내가 낫다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30여년의 세월의 단 며칠의 결심으로 이뤄질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뼛속 깊이 또 하나의 나로 자라온 자존감을 흔들었기에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산이자 거쳐야할 관문이었습니다.

또한 사소한 시간에 집중하기를 애썼습니다. 피곤한 몸일지라도 건성으로 놀아주는 일이 없도록 아이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이런 사소하지만 소중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짧은 유희의 시간들은 내 삶속에서 지워야 했습니다. TV를 끊었고 글 쓰기 위한 PC사용 이외에는 컴퓨터도 자제해야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충분한 시간은 없음을 스스로 끊임없이 말하고 또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루 이틀의 훈련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가치 있는 시간을 위한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였습니다.

삶은 고단한 것입니다. 진정한 쉼과 평안과 만족은 천국에 있음을 잘 압니다. 그러나 왜 이런 고난한 삶으로 나를 부르셨는지는 조금 나중에 따져야 하겠습니다. 당장은 열심히, 그리고 가치있는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 더 시급한 필요이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의 결과는 몇 달 후면 그 가시적인 결과들을 보여줄 것입니다. 나는 그 결과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대한 답들은 숱한 사람들과 책들이 제시하였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내가 직접 경험한 답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경험한 나의 답을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답을 열망합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내 삶의 작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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