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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부유한 노예로 살고 있는가?

Author : 박요철 / Date : 2012.09.18 15:14 / Category : 책읽기



저자 로버트 라이시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그 스스로가 워커홀릭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그 일을 사랑한 모양이다. 그렇게 일했으니 인정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장관직을 내려놓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이런 스토리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니나 책의 서두에 밝히는 그 이유를 읽어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가 여느 날처럼 출근을 서두르던 어느 날 아침, 아들이 그를 붙잡고 자신의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마음씨 착한, 그러나 바쁜 아빠는 솔직하게 아마도 내일 아침이 되어서야 널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아이를 달랜다. 하지만 아들은 반드시 오늘이어야 한다고 아빠를 조른다. 그 이유를 묻자 아들이 이렇게 답한다. '아빠가 오늘 나와 함께 있었다'라는 사실을 눈으로 보아야만, 그러니까 밤에 자신과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 실제로 아빠가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라고 말한 것이다. 저자는 이 말에 충격을 받고 그 날로 사표를 쓴다.


어쩌면 사적일 수도 있는 저자의 경험담을 맨 앞에 쓰는 이유는 그가 이 책에 쓰고 있는 '신경제' 시대의 변화가 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 생각되어서다. 매끄러운 번역 탓인지, 아니면 저자 특유의 스토리 텔링이 진정성 있어서 그런 것인지 이 책은 내용의 무게게 비해 의외로 잘 읽힌다. 특히 미국의 과거사로부터 현재, 미래를 통찰해서 설명해주는 그의 안목은 마치 이륙 후 땅 아래를 내려다보던 아찔하고 놀랍던 첫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눈 앞의 현실을 붙잡기 위해, 발등에 떨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일반적인 책들과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 그것이 혹자에게는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또한 브랜드의 기원 혹은 태생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말한다. 자급자족의 경제에서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를 거쳐 양과 질의 끝없는 혁신을 요구하는 '신경제'시대에 왜 브랜드가 중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2000년 대 초에 쓰여진 책이지만 워낙 거시적으로 바라본 탓인지 십 수년이 지난 책인지 금방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였다. 브랜드의 기원에 대한 통찰이 중요한 이유는 조금 더 긴 안목으로 브랜드의 미래를 읽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안겨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뭔가'를 기대한 이에게는 다소 맥 풀리는 '미국식 긍정'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맺는다. 따지고 보면 어떤 답을 제시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라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반추를 통한 '오늘의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저자의 깊은 성찰 과정을 보여준 것이니 딱히 불만이라고 말할 것은 없다. 더구나 미국의 과거와 오늘은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대입하기엔 더 없이 좋은 모델이 아니던가. 급행 열차가 아닌 완행 열차를 타고 가는 여행의 느긋한 즐거움을 떠올린다면, 게다가 입에 착착 감기는 훌륭한 번역의 묘미를 떠올려 봤을 때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 이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서 읽어야겠다.

가능하면 같은 출판사, 혹은 번역가가 옮긴 책으로.


p.s. 이 남자의 키가 150이 채 안된다는 사실을 독서 중에 우연히 알았다. 그가 더 당당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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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로버트 라이시, 부유한 노예,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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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존중감

Author : 박요철 / Date : 2011.08.22 23:50 / Category : 책읽기

근래들어 나의 최고의 관심사는 '자기다움'에 대한 고민이다. 지금까지 나의 고민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였다면 지금부터는 '나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키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는 '나'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타인의 시선이나 비교,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기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르침은 나의 말로 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간 삶을 통해서 아이들이 배운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로 이 고민의 농도가 달라졌다. 그 답이 바로 '자기다운' 삶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자기다움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과 타인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 그러나 그 영향력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용기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장단점을 발견하기 위한 고단한 여정, 끝이 보이지 않는 인내, 깊이를 알 수 없는 좌절을 몇 번이고 헤쳐나올 때 생겨나는 것임을 안다. 왕도는 없다. 그러나 똑같은 여정을 거치고 껍데기만 남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화려하지는 않아도 '자기다움'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며, 내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며, 나의 아이들이 그들로부터 그러한 삶을, 나로부터 그러한 삶을 배우기 원한다.

그렇다면 그 출발점은 무얼까? 그 답 중의 하나로 찾은 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자아존중감, 즉 자존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며, 어떤 성과를 이뤄낼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또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다.


'자기다움'의 발견에 우선하는 것은 '자아존중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 고통에 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과의 비교, 경쟁을 통한 열패감으로 숱한 인생의 루저로 전락하는가. 하지만 자아존중감은 자신감을 빙자한 자기애로 똘똘 뭉친 사람들과의 근본부터 다른 것이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무조건 자신은 최고이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자신의 장점만을 수용하기 때문에 누가 자신의 뒤에서 험담이라도 하면 기분이 나쁘고 그 단점을 인정하기가 버겁다. 진정한 자존감은 다른 사람의 평가를 수용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감 있는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누군가 자신을 비난하거나 무시해도 감정적 동요가 적다.


이 짧은 한 마디에 '살만한 세상의 비밀'의 숨어 있는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남의 존재를 인정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꺼운 마음. 아이들에게 단 하나의 지혜(성경이 아닌)를 말해줄 수 있다면 이 자존감의 비밀에 대해 말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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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탄크레디

Author : 박요철 / Date : 2011.08.22 23:39 / Category : 책읽기


탄크레디는 서른여섯 살에 죽었다. 이 시대에는 결코 너무 이른 죽음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상의 탄크레디는 이상하게도 젊음의 상징처럼 간주되어 왔다.
...지금도 유럽인들, 특히 남유럽 사람들은 탄크레디라는 이름을 들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신의가 두텁고 생기 넘치는, 영원한 젊은이를 떠올린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는 엄청난 카피로 시작되는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는, 그러나 정작 내게는 별 울림을 주지 못했다. 기대가 너무 커서일까? 집중해서 읽지 못한 탓일까 고민을 해봤지만 뾰족한 이유는 찾을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짐작가는 것은 그들의 그 장대한 전투, 혹은 살육의 여정을 가능케한 이유가 너무나도 '세속적'이었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다만 한 사람의 이름은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탄크레디. 그의 이름이 그토록 오래도록, 그리고 명예롭게 기억되는 이유를 되짚어볼 만하다. 이름을 남기기 위한 삶이 아닌, 자기다움으로 충만했던 한 사람의 삶이 남긴 훈장같은 이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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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Author : 박요철 / Date : 2011.08.17 20:56 / Category : 책읽기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크리스천일 뿐이지 한번도 요란한 믿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소리쳐 기도해 본 적도 별로 없고 병고침보다는 병원으로 가는 것이 더 바른 신앙이라 믿고 있으며 길거리에서 강요하듯 전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불쾌감이나 머쓱함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싶다. 남에게 손벌리지 않는 평범한 수준의 부와 아울러 남을 도울 수 있거나 조금 너른 집과 풍요로운 생활에 대한 욕심도 갖고 있다. 이왕이면 성공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내게도 하나님께도 유익한 것이라 생각해왔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부를 가져다준다고 생각진 않지만 정직하고 신실한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성공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런 나의 생각과 꼭같은 김동호목사님의 '깨끗한 부자'를 새겨 읽기도 했다.

그러나 이분, 그러한 생각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왔다는 사실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과연 내가 가진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산에서 도를 닦는 수도자의 삶같은 것일까? 하버드대학을 나오신 분이 왜 몽골이라는 먼 나라까지 가서 그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바라는 전형적인, 그리고 올바른 순종의 모습일까? 그동안 어렴풋이 가져왔던 신앙과 세상의 삶 사이에 커다란 계곡이 생겨난 듯이, 그리고 그 계곡으로 폭포수같은 고민의 물길이 덮친 듯이 혼란스러웠다. 과연 이 문제와 고민에 대한 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고민은 팔복시리즈의 첫 작품이었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도 동일하게 품었던 것이자 질문이었다. 그러나 최춘선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하진 않았다. '사명은 각자각자요...'라는 말이 그래서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절대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지요."

그런 내게 책 가운데 나온 이 대화가 내 생각의 물꼬를 터놓았다. 사실 하나님의 우리더러 이용규선교사님처럼 살라고 명령하신 적은 없다. 즉 하버드까지 갔다가 몽골로 가라는 그런 구체적 명령을 내리신 적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곧잘 넘겨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생업이나 학업을 팽개치고 지금 당장 선교를 가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실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은 선교사님을 크게 쓰시기 위해서 본인이 가장 내려놓기 힘든 부분에 대한 순종을 요구했고 선교사님은 그것에 기쁨으로 순종했다. 그러나 우리 각자 각자에게는 순종할 영역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고 하나님이 내게 권고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깊이 고민해보기로 했다.

일단은 나의 달란트와 나의 욕심을 구분해보기로 했다. 하나님은 나의 달란트가 선하게 쓰이고 열매맺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욕심이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어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용규 선교사님을 하버드의 유명한 교수로 부르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님의 경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르신 것이다. 그 둘의 차이가 우리에겐 크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 나는 그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우리 시대에 행복이 주인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도 한다. 이때 행복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취급된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해지려는 열망과 행복해질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러나 그 행복이 단순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목적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세상이 가르치는 지혜는 대부분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은 하나님께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유익하지가 않다. 진정한 행복은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며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며 크리스천인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란 그분이 태초에 나를 설계하는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규 선교사님 메시지는 고속도로에 난 표지판과 같다. 마구잡이로 액셀레이터를 밟으며 질주하는 우리에게 조금 속도를 줄이고 주위를 둘러 보라고, 그리고 이 길의 끝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낮지만 강하게 속삭여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또 들어보고 있다. 수많은 차들이 고속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진정으로 그들이 답을 찾기를 원한다. 이 책속에서 그리고 성경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다시 한번 곰곰히 곱씹어본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면 일단 나의 욕심과 분주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그런 '내려놓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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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코리안 델리

Author : 박요철 / Date : 2011.08.08 23:15 / Category : 책읽기


미친 듯이 이 책을 소개하고 다녔지만 반응은 별로였다. 적어도 회사 안에서는 말이다(사람들이 유머가 없어!!!). 아무튼 좀처럼 '흥이 난' 내 모습을 보지 못하는 아내는 달랐던 것 같다. 아직 한두 시간은 읽을만한 분량을 책날개로 표시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이 책을 동시에 읽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씻기는 손에 나와 같은 흥을 담아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재밌다'고 말한다. '잘 쓴 글은 아니지만...'이라는 사족을 달긴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을 막 다 읽었다. 그리고선 생뚱맞게도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 흥미있어 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충돌'임을 새삼 깨닫는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 '충돌' 때문이다. 전쟁 3부작과 로마인이야기 2부 '한니발 이야기'가 읽은 책의 전부이긴 하지만 그녀의 출중한, 생생한 글쓰기 능력만큼이나 그 소재 자체에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 두 문화의 충돌, 바로 그것이다.

'마이 코리안 델리'는 그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책과 비슷한 감흥을 준다. 그 무슨 어거지냐며(특히 시오노 나나미의 광팬이라면)따질 분이 혹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 이주민의 새로운 역사를 썼던 한국인 장모와 함께 델리를 운영했던 이야기를 그야말로 미주알 고주알 써내려가는 '샌님(아내의 표현대로라면)'의 충돌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흔적이 아닌 현실로 만난 청교도 출신의 글쟁이 사위의 푸념과 호소와 애정어린 고자질이 눈 앞에 보일 듯 생생하게 살아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문학과 사람, 어쩌면 뉴요커의 삶 자체를 사랑한 듯 보이는 조지와 가게 점원 드웨인, 그리고 그 주변의 이야기는 생생하다 못해 눈물겹다. 그래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명언, 혹은 격언을 기어이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글 비슷한 것을 써서 먹고 사는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단 한 가지다. 글을 재밌어야 한다는 것, 심장의 박동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사는 것, 그리고 읽는 것은 즐거운 일임을 읽는 독자들에게 환기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주말 아들이 읽던 로알드 달의 소설(우리의 챔피언 대니)을 펼쳐들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썼길래 아홉살 짜리가 일요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서너 시간을 숨도 안 쉬고 책을 읽게 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포스트로 올릴까 한다).

아무튼 책장을 막 덮는 순간, 아내에게 이 말만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팬티 바람으로 편집실을 서성이던, 저자가 오픈한 델리의 점원으로 일해보기를 진심으로 흥분해마지 않으며 바랬던 '파리 리뷰'의 편집장이자 보스였던 조지가 어느 날 아침 심장 마비로 일어나지 못했으며, 하이네켄 12개를 매일 마시며 작가의 유일한 친구로 표지 모델을 장식했던 드웨인 역시 동맥류로 짧았던 이 생의 마지막을 장식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400여 페이지를 가뿐히 넘기는 이 책의 촘촘한 활자 속에서, 넘을 듯 말 듯 넘실대던 웃음과 울음, 희극과 비극의 교차점 사이에서의 아쉬운 여행을 마무리하며 오랫만에 서평 하나를 끝까지 써본다.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코리안 델리의 소박함, 절박함, 간절함과 다른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스스로 자문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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