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 년전, 처음으로 네이버 도서관을 찾았을 때 느낀 감정은 단연 부러움이었다. 햇빛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는 녹색 블라인드가 수백 평의 드넓은 공간에 시시각각 다른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안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건물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운 마음이 가득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최근 리뉴얼을 마친 ‘네이버 라이브러리’를 다시 찾았을 때 ‘더 이상 좋아질 무엇’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네이버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는 공간이 사람을 어떻게 배려하고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다음의 인터뷰는 그 ‘좋아진 무엇’에 관한 이야기다.

 

- The Interviewed with 네이버 CX 브랜딩팀 강새봄 수석 마케터, 오인숙 선임 마케터 

 

 

Q. 네이버 도서관을 연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다시 만든 이유가 뭔가?

 

네이버는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가 아니다.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블로그를 만드는 건 네이버지만 그 나머지 절반을 컨텐츠로 채우는 건 사용자다. 그래서 사용자의 본질, 즉 사람을 탐구하는 게 중요하다. 서비스의 형태와 디바이스는 달라지지만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는 직원과 지역사회를 위한 서비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행동의 본질을 찾아 서비스에 적용하고 싶었다.

 

Q.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다시 말하지만 네이버는 사용자 경험, 즉 UX를 고민하는 회사다. 사용자의 필요가 잘 반영된 도서관과 서가를 직원과 지역주민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검색이나 '네이버 캐스트'와 같은 서비스들을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는 컨셉이다. 그래서 크게 매거진과 디자인, 백과사전이라는 세 개의 테마를 잡고 각각에 맞는 공간을 별도로 구성했다.

 

매거진은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가로수길을 걸으며 쉽게 보기 힘든 잡지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디자인 테마는 생화가 심어진 책의 숲을 미로처럼 드나들며 자유롭게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 컨셉이다. 백과사전 코너는 다락방 깊숙한 곳에서 좋아하는 책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Q. 이러한 시도가 필요한 시장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3년 전만 해도 네이버 캐스트와 같은 서비스에 사람들이 반응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깊은 호흡의 잘 만들어진 컨텐츠에도 니즈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예, 스포츠 뉴스나 '오늘의 유머'와 같은 서비스에 열광하는 사람도 있지만, 음악이나 웹툰처럼 특정 영역에 미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전문적인 컨텐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따라서 직원들이 가장 먼저 이러한 변화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퇴근이나 점심시간처럼 직원들이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네이버 도서관을 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Q. 일종의 내부 브랜딩처럼 들린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혹 있었나?

 

내가 속한 CX팀에서 '키카드(key card)'라는 것을 만든 적이 있었다. 네이버가 원하는 인재상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직원들 각자가 상사와 동료, 부하 직원들을 리뷰했다. 경영자가 탑다운의 방식으로 점수를 매기는 평가가 아니라 '너는 이 점이 좋고, 저 사람은 이 점이 좋다'라는 식으로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나온 몇만 개의 리뷰들을 마흔여섯 개의 키워드로 다시 정리했다. 자연스럽게 네이버의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인재상을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면 이를 활용한 서비스는 물론 채용과 같은 인사 방식에까지 적용할 수 있다. 가장 네이버다운 사람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뽑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네이버다운 사람이 네이버다운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네이버다운'게 무어라 생각하나?

 

네이버는 24시간 계속되는 온라인 서비스다. 사용자의 니즈도, 그에 따른 시장 변화도 빠를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 스토리처럼 새롭고 다양한 서비스들이 쉴새 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조직개편이 계속되다 보니 직원들이 짐을 풀지 않을 정도다. 모든 사무 가구들에 바퀴가 달려있고, 심지어 임원들의 방도 손쉽게 뜯거나 옮길 수 있게 되어 있다. 심지어 빌딩 한 층의 구조가 통째로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수시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 전체가 유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구성원들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많다. 따라서 빠르지만(speedy) 유연하게(flexible) 남다르게(smart)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서비스로서의 네이버가 아닌 네이버를 만드는 사람과 문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세 단어가 네이버다움이 아닐까 싶다.

 

Q. 네이버 라이브러리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뭐였나?

 

도서관을 찾아 꼬박 이틀 동안을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일부러 노트북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마다 책을 고르고 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인문학책을 보는 사람들은 원하는 책을 발견하면 자리로 가져가 숙독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디자이너들은 찾는 책도 다양할뿐더러 그 책들을 바로 자리로 가져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펼쳐보는 경우가 많았다.

 

네이버 라이브러리의 공간과 인테리어는 모두 이런 사용자 관찰의 결과를 바탕으로 디자인되었다. 만약 예쁘고 멋지게 지으려고 했다면 오히려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관찰하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게 결과적으로 훨씬 쉽고 효과적이었다.

 

Q. 그러한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웠나?

 

도서관을 가장 일찍 찾고 오래 이용하는 사람들은 책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원래의 취지와 다른 사용자들이지만 이들의 출입이나 공부를 막을 순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패턴을 바꾸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예를 들어 탁자를 책 한 권만 겨우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로 만들었다. 책 읽기에는 불편함이 없지만 여러 권의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들이 여러 권의 책을 이동하면서 고를 수 있도록 북카트를 만들고, 큰 책을 굳이 자리로 가져가지 않고 펼쳐볼 수 있도록 책장 사이에 공간을 별도로 만들었다. 원래의 목적에 맞는 필요는 살리되 불필요한 행동은 가구와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한 것이다. 진정한 UX 디자인을 현장에서 배운 셈이다.

 

Q. 넛지를 연상시킨다. 스마트하다.

 

얼마 전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팀원들과 갑론을박이 있었다. 다큐의 내용은 질문이 사라진 대학 문화였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들었다. 질문하지 않는 것이 꼭 나쁜가 하는 거였다. 동양은 어떤 질문에 대해 바로 답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교육방식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선문답이다. 하지만 서양은 치열한 논쟁을 통해 답을 찾는 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 네이버와 라인을 위한 연수원을 짓고 있는데 이곳에 '비우는 공간'과 '채우는 공간'을 별도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인위적인 강제 없이 도서관 문화를 바꾼 것처럼 직원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사용자의 경험, 사람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간의 배치와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에 응용할 생각이다. 이게 네이버답게 일하는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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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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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워서였다.
2년 꼬박 아이폰 3GS를 썼다.
추호도 의심없이 아이폰5로 옮겨가리라 믿었다.
그러다 우연히 옵티머스 뷰2를 만났을 때 문득 그런 ‘자각’이 일었다.
스티브 잡스도 세상을 떠난 마당에
길어지고 빨리진 것 말고는 도무지 달라진 게 없을 것 같은 아이폰5로 왜 갈아타야하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딱 2달이었다.
5인치의 화면, 안드로이드폰의 생경함이 신선함으로 작동하기까지는.
이유야 많다.
출근길과 퇴근길, 5인치의 화면에 커버까지 여닫는 과정이 몹시도 걸리적거렸다.
굳이 볼륨을 모두 줄여야 진동으로 바뀐다거나,
살짝만 눌러도 작동하는 버튼에다 메뉴 버튼까지 피하느라 손에 걷돌기 일쑤인 점,
뭔가 2% 부족한 아이콘과 UI의 어설픔이 무뎌지기는 커녕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2달이 지났을 때 폰을 갈아탈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고,
나는 미련없이 안드로이드를 버리고 좁고 길쭉한 아이폰5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폰으로 돌아온 이유를 단 한 가지로 말해야만 한다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것도 어렵지 않다.
솔직히 앞의 이유들은 정말로 사소한 것들이다.
아이폰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아이폰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폰이 아름답다니...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전제를 달고도 멋쩍은 이유다.
전화를 하고,
웹서핑을 하고,
은행일을 보고,
또 그 외에 몇 가지의 앱들을 쓰고...
그런데 폰이 아름답다니.
아름다워서 쓰고 있다니.
그런데 사실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알루미늄의 테두리 마감과
차가운 질감을 즐기기 위해
케이스를 몇 개를 샀다가 벗기고,
필름을 몇 번을 씌웠다가 떼내버리는 모양새가 그렇다.
그 증거다.
그런데 이유는 정말 그것 뿐인가?

시보레는 차 이름이 아니다.
하일권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졸업 작품을 장편으로 연재한
‘3단 변신 김창남’이라는 웹툰의 주인공 이름이다.
좀 더 정확히는 로봇의 이름이다.

이 웹툰은 뭐랄까...
식상한 소재와 식상한 주제의 조합물에 가깝다.
학원물에 왕따,
성긴 구성에 SF 흉내를 낸 어설픈 퓨전음식 같달까?
하지만 대단한 흡입력이 있고,
생뚱맞지만 지리함으로 늘어지지 않는 오버스러운 유머가
이제 그만 봐야지 할 때쯤 감칠맛을 낸다.
그러다 서서히 몰입으로 이끌고 끝내는 마음 속 작은 오열을 끌어내고 만다.
아...
이건 뭐지?


로봇이 있다.
이 로봇은 여학생의 외모를 그대로 재현해냈을 뿐
말투도 동작도 기계적이다.
다만 아주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인격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 점이 포인트다.
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왕따로 고통받는 한 소년의 설익은 감정이 쉴 자리를 만들어준다.
계산치 않고,
거짓이 없으며,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이 작동하자
작은 변화들이 일기 시작한다.
그 끝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가 만들었다.
이 둘을 서로 떼어놓고 말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3단 합체 김창남’이라는 웹툰을 보면서
웬지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이 자꾸 오버랩되었다.
어쩌면 스티브 잡스가 만든 건 전화기도 스마트폰도 아닌,
시보레 같은 로봇이 아닌가 하는,
외롭고 힘들 때 꺼내어 쓰다듬을 수 있는,
기계적이긴 해도 가끔씩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시보레와 시리...
뭔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브랜드를 구성한 기본적인 조건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실제의 필요를 채워주는 ‘기능적인 편익’이 있는가 하면
그런 유용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서적인 편익’도 있다.
이 정서적인 편익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 영향력 만큼은 막강하다.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을 쓰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들었던 친밀감과 소속감을 누릴 수 있으니까.
이는 모든 브랜드들이 다다르기 원하는 궁극의 경지다.
이 단계에 이른 브랜드는 마케팅도 프로모션도 필요없다.
기능적인 불편함도 유니크한 개성이 된다.
심지어 창업자가 죽고 주인이 바뀌어도 브랜드는 영속한다.
이른바 영생하는 브랜드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웹툰 ‘3단 합체 김창남’의 제목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로봇 시보레는 친구 자전거 이름에서, 로봇 번호는 군번에서 따왔다고 한다.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이 ‘호구’이다.
약간의 상상, 혹은 해석의 여지도 없는 직설적이고 무성의한 이름,
하지만 의도치 않게 던져진 메시지는 묵직하다.
왜 우리는 사람이 아닌 로봇의 인격에 감동하게 된 걸까.
만화 속 현실은 사실 과장이랄 것도 없는 그야말로 현실이다.
그 속에서 아주 기본적인 인격, 인간적인 관계에 대한 목마름을 발견한다.
이 만화에 마음이 움직인 학생들이라면,
사람들이라면,
그런 기본적인 인력,
그러니까 진정성에 목마른 것이다.

얘기를 맺자.
삼류 웹툰에 마음이 울컥했다는 사실을 떠벌리는 것도 개운치 않지만
웬만한 소설이 주는 감동 못지 않다는 고백 또한 사실이니까.
말하고 싶은 건 한 가지다.
우리에겐 점점 더 깊어지는 결핍의 우물이 있다.
그건 아주 작은 격려,
혹은 관심,
그리고 희망일지 모른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도 선뜻 하지 않는 손 내밀기,
자신이 피해자나 루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맛설 수 있는 적지 않은 용기.

어쩌면 스티브 잡스는
한 손에 꼬옥 감기는
그런 로봇 하나를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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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스터

브랜드 2012. 9. 7. 11:04

홀리스터...

미국의 유명 의류 브랜드인 '아베크롬비 앤 피치'의 계열 브랜드입니다. 나름 우월한 신체 조건을 가진 서양인의 체형에 꼭 맞춘 브랜드로 예전부터 '인종차별'에 관련된 논란이 적지 않았죠. 동양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 바탕에 깔린 탓입니다. 그런 브랜드가 왠일로  여의도에 새로 개장한 서울국제금융센터의 IFC몰에 상륙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픈 행사의 하나로 경복궁에서 촬영을 했던 모델 하나가 '찢어진 눈'으로 사진을 찍은 탓이죠. 이 포즈는 전형적인 '동양인 비하' 메시지로 유명합니다. 미국에서는 동양인으로부터 주문을 받은 스타벅스 직원이 컵에 이 찢어진 눈의 그림을 그려 넣어서 적지 않은 잡음이 일기도 했습니다.


아베크롬비 앤 피치, 홀리스터 모두 브랜드 정체성의 근간에 '우월한 신체에 대한 동경'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매장엔 언제나 '우월한' 신체를 가진 남자 모델들이 해상 구조원처럼 상의를 탈의하고 호각을 건 채 손님들을 맞죠. 그것이 이 브랜드를 '차별화'시킨 가장 큰 이유인 것만은 분명한 듯 합니다.


* 미국 애틀랜타에 위치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음료를 주문한 한인에게 백인 종업원이 '찢어진 눈' 을 그려넣어 주어 논란이 되었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2111544561001)


하지만 의문이네요. 무조건 '차별화'에만 성공해도 좋은 것인지. 그 메시지가 잘못된 신념이나 가치에 근거한 것이어도 홍보와 매출에만 도움이 되어도 상관없는 것인지. 독일 민족에 대한 우월감으로 전 세계를 유례없는 참혹한 전쟁과 희생으로 몰아넣은 히틀러의 사례를 꼭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이런 생각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자기만의 생각'을 제품에 담아 이에 동의하는 소비자들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는 것은 모든 브랜드의 염원이자 소망이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품질과 기능만으로 승부하지 않아도 되고 타 브랜드와의 경쟁을 통한 생존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그 출발은 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꼭 여기에 장황하게 써야 할 필요는 없을테지요?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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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danbis.net/12557)


요즘 이런 풍경 자주 봅니다^^

바로 '훼미리마트'가 'CU'로 이름을 바꿨기 때문인데요.
많이들 아시겠지만 '훼미리마트'는 1973년 탄생한 대표적인 일본 편의점 브랜드입니다.
(참고로 같은 일본 브랜드인 '세븐일레븐'은 원래 미국에서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격화되는 편의점 시장에서 로열티도 부담스러웠을테고, 20년 넘게 쌓은 노하우에서 오는 자신감도 있었겠죠?
아무튼 딱히 입에 붙는 이름은 아니지만 자체 브랜드에 대한 욕심을 용기있게 실천했다는 점은 높이 사주고 싶습니다.

다만...
점주들의 불만이 큰 모양입니다.
동의를 얻어 시작한 브랜드 개편이라지만 '훼미리마트'의 브랜드명을 믿고 편의점을 시작한 점주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네요.
사람이든 기업이든 그만큼 '이름'이, 아니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반증도 되겠구요.

문득 김애란 작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라는 단편이 떠오릅니다.
여기서 여자 주인공은 편의점의 멋진 알바가 혹이라도 자신의 모든 라이프 스타일을 꿰고 있지 않을까 해서 불안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구매하는 곳이고 보니 조금만 유추해도 자신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콘X을 구매하는 장면에서 여주인공은 식은 땀을 흘립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반전이 있습니다.
알바 남자가 주인공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었음을 알려주는 작은 사건이 일어나거든요...

대략 통 유리 안의 진열대만 보아도 '편의점'인 줄 짐작 가능한 상황에서
고개 들어 브랜드명까지 확인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네요.
자체 브랜드의 삼각김밥과 아이스크림, 컵라면의 판매가 꽤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제게는 '편의점'일 뿐이지 '훼미리마트'는 아닌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CU라...
저는 왜 자꾸 포도씨유가 생각나죠?)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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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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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연필을 써 본 지가 과연 언제였을까?
기억의 끝자락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연필보다는 샤프 펜슬이 먼저 잡힌다.
제도 샤프가 가장 흔했고 중학교 무렵엔 흔들어 샤프의 대유행이 있었으나 잠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무엇으로 쓰는가가 중요하지 않았다(오직 성적이 중요했다).
펜에 대한 기억은 거기서 멈춘다.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상을 파고들면서 연필과 펜을 떠나 뭔가를 ‘쓴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어져버렸다.
그래서 책상에서 이 연필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정말로 이 '연필'이란 것이 신기해서 한참을 만져보았다.

파버 카스텔,
무려 250년의 역사를 가진 회사다.
구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육각형 연필을 최초로 만들었으며, 필기구의 브랜드화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HB, 2B와 같은 연필의 규격을 스스로 표준화했고 지금은 세계 표준이 되었다.
연간 20억 개 이상의 연필과 색연필을 생산하며 120여 개국에 수출한다.
2009년 매출만 4억 5천만 유로에 달한다.
한 마디로 ‘연필의 원형’이라 할 만한 회사다.

하지만 연필은 연필일 뿐이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테디셀러 카스텔 9000 역시 낱개 가격이 1000원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하나의 명품을 만날 수 있는 제품군이 연필 말고 또 있을까?
호기심으로 아들이 가지고 다니는 동아연필, 문화연필도 함께 깎았다.
연필업계의 양대 브랜드로 알려진 스태들러와 톰보우도 함께 샀다.
녹색의 파버, 파란색의 스태들러, 검은색의 톰보우 그리고...
캐릭터가 그려진 동아연필... 흠.

나름 키보드의 키감에 민감한 편이다.
‘타닥’거리는 키감에 반해 가격 대비 성능에 의문을 품은 채로 소니 노트북을 오랫동안 써왔다.
중국산으로 전락한 씽크패드를 고민 끝에 회사 노트북으로 결정한 것도 바로 그 ‘쫀득쫀득’하다는 키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몇 번 써보면 이들 연필의 미묘한 필기감을 구분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파버 카스텔은 카스텔 9000 말고도 보난자를 골랐다.
스테들러는 노리스와 마스 루모그라프가 유명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나름 연필계의 스테디셀러이자 명품으로 불리는 애들이었다.
일본연필의 대표모델은 톰보우의 모노J,
그런데 동아연필은 모델명을 읽고 순간 놀랐다.
‘** 태권도’
한 번 더 읽어보고서야 태권도장에서 나눠준 공짜 연필임을 알았다.
문화는 ‘더존’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
… 그리고 상당히 많은 글을 써보았다.
손목이 아파질 때까지.
과연 최고의 연필은 어떤 녀석이었을까?

솔직히 나는 너무 물러서 버터로 불린다는 일본연필 톰보우가 싫었다.
같은 HB인데도 카스텔 9000은 지나치게 단단해 흐린 글씨가 이어졌다.
놀랍게도 내가 기대한 ‘사각거림’을 보여준 연필은 다름 아닌 태권도 연필, ‘동아연필’이었다.

결코 작위적인 설정이나 반전을 기대하고 이렇게 쓴게 아니다.
진심으로 나는 동아연필의 거친 필기감이 마음에 들었다.
(파버 카스텔의 회장이 연필의 물성은 원래 거칠다고 두둔했던 기사가 떠올랐다)
100년 전통, 250년의 역사, 연필의 원형 따위는 그저 역사일 따름이다.
연필은 그저 연필이지 브랜드란 이름으로 압도적인 필기감을 기대한 내가 어리섞었는지 모른다.
물론 카스텔 9000은 그 특별한 작업 공정으로 2,3배에 이르는 필기거리와 부러지지 않는 품질을 자랑한다.
톰보우는 세제곱 밀리미터당 100억개에 달하는 입자로 전문가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연필이 되었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드리프트를 하지 않는 이상 수퍼카가 필요하지 않듯이 연필은 그저 연필 본연의 임무만 다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적당한 품질, 저렴한 가격으로 글씨만 쓸 수 있다면...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우리나라 문구 시장은 현재 거의 고사 상태다.
필기구 매장의 대부분은 일본 펜들이 차지하고 있고, 독일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별도 매장을 가지고 손님을 맞는다.
국산 연필의 품질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는 평이고, 맏형 격인 동아연필은 IMF를 지나면서 그나마 국내 시장의 70%를 잃은 경험이 있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국산 브랜드 자체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연필을 만드는 공정이 까다롭다고는 하지만 연필은 연필일 뿐이다.
국산 연필이 오로지 떨어지는 품질 때문에 이런 현실을 맞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답은 어떨까?
독일과 일본 연필들은 ‘브랜드’가 되었지만 국산 연필은 여전히 그저 ‘연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연필이 연필인 것이 무슨 죄일까?
하지만 브랜드가 된 연필은 85만 원에 팔리지만 그렇지 않은 연필은 1000원을 받기 힘들다.
브랜드가 된 연필은 스스로를 ‘창조성의 도구’로 미화하지만 연필을 만드는 사장님은 몇 백원짜리 연필을 만들고 있다며 스스로를 푸념한다.
그리고 이 위치는 아주 오랫동안, 혹은 영원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네이버 캐스트에 오른 윤광준 씨의 ‘파버 카스텔에 관한 글’에 수 백개의 덧글이 달렸다.
많은 이들이 수십 만원짜리 연필에 대한 저자의 감동을 물신화에 빠졌다며 성토하고 있었다.
혹자는 비싼 펜이 사람의 품격을 만들지 않는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산 연필이 외국에 수십 만원의 가격을 팔린다 해도 여전히 같은 비난을 할까?
비난하는 그들은 가격 대비 성능에 만족하며 명품백을 외면할까?
수십 만원짜리 노스 페이스 잠바를 절대로 입지 않을까?

좋은 브랜드는 기술과 전통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브랜드는 만드는 이의 고집과 철학에 의해 시작되지만,
정말로 꽃을 피우는 것은 그것을 쓰는 이들이 그 가치를 알아줄 때이다.
250년 파버 카스텔의 역사는 어쩌면 이것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장인에 대한 예우가 유난히 깍듯한 독일과 일본에서 최고의 자동차와 연필이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파버카스텔 UFO 퍼펙트펜슬 브라운,
첫 째의 책상에서 몰래 가져온 4만원 짜리 이 연필의 필기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이까지 짧아 훨씬 더 빨리 닳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연필을 쓰는 순간만큼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진다.
나는 동아가, 문화가 이런 경험을 외국 친구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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