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KTX에서 이 책을 원서로 보던 아가씨를 보면서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실력보다는 책읽기에 가장 좋은 곳 중의 하나가 달리는 기차이기 때문이었다.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사실 상금도 조금 욕심이 나긴 한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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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젊음에게 - 10점
구본형 지음/청림출판

이 책의 작가는 어느 날 첫째 딸로부터 인사를 받는다.
그러려니 하고 자신의 일에 빠져 있던 이 작가는 문득 딸의 출근 첫날임을 깨닫고 격려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약간을 망설이다 이런 문자를 남긴다.
"딸아, 바닥에서 박박 기어 확실하게 배워라. 많이 웃도록 해라. 웃음이 많은 날이 좋은 날이다. 축하한다."

만약 나의 둘째 딸 희원이가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면 나는 무슨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까?
이제 직장 생활 8년차, 박박 바닥을 기었는지 허망하게 허공을 치고 있었는지도 분간이 안 가는 서른 중반의 직장인에겐 다소 버거운 상상일까? 그러나 나의 문자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밥벌이의 지겨움' 하나는 온 몸에 사무치도록 겪어보았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또 다른 차원의 삶에 대한 기대는 끈질기게도 놓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라는 확신도 '네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진짜 인생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없는 아빠가 과연 무슨 말을 딸에게 할 수 있을까?

지난 주말 산책을 하던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고고하지만 배고픈 용이 되고 싶어, 아니면 우리에 갇혀 진흙탕을 밟지만 배만큼은 날마다 부른 돼지가 좋아?"
아내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배부른 돼지 쪽을 택했다. 늘 아내의 이런 분명한 태도와 삶의 자세를 높이 평가는 못해도 부러워하는 나는 아내가 되물었어도 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나를 위한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작가는 한편으로 자신의 일에 감사하고 만족하라 말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라'고 독자를 부추긴다. 결코 어떤 공식이나 답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선문답 나누기를 좋아하는 깊은 산 속의 도인 같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는 바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단한 '밥벌이'와 아웅다웅 다투는 땀 냄새 나는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다. 일과 나, 그리고 관계에 대한 독백, 혹은 대화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으러 가는 주말의 버스 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 핸드폰을 찾아준 버스 정류장의 사무소장님은 혹시 폰이 꺼질까봐 빵빵하게 충전까지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 일의 참된 의미를 찾고, 그 속에서 나를 찾고 그 나가 확장되어지는 관계를 배운다.
다행히 작가의 딸들은 한 사람의 의사로서, 학생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랫동안 책읽기를 끊었다가 다시 책 읽는 보람을 느낀다. 내 안에도 다시 삶에 대한 기대가 차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앞에 놓여진 삶의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박박 기어볼 것이다. 그러나 비굴하게 내 삶을 남에게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어코 내가 좋아하는, 내가 잘하는 일속에서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쁨을 아는 동료들을 찾아 참으로 살아가는 황홀함을 맛보고야 말 것이다.

"희원아, 네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찾아라. 아빠도 힘껏 도우마. 오늘의 어려움이 너를 단단하게 하고 내일의 성공이 너를 꽃피울 수 있도록 쉬지 않고 기도하마. 단지 너라는 이유로 기뻐하마.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마."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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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 10점
조신영 외 지음/위즈덤하우스


두자 짜리 제목, 교감을 나누는 사람 이미지, 그리고 스토리 텔링...
불과 얼마 전 베스트셀러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형식을 두루 갖춘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코웃음을 쳤었다.
게다가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도 아니지 않은가.
(배려를 썼던) 박현찬이라는 탁월한 스토리텔러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러한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울었노라는 두 여직원의 고백이 있기 전엔 그저 또 한권의 베스트셀러에 불과한 책이 이 책이었다.
스토리 텔러에 대한 관심, 그리고 너무나도 진지한 두 사람의 서평을 귀로 듣고서 이 책을 (빌려) 읽었던 그 날, 차마 책장을 덮지 못하고 집을 코앞에 둔 동네 벤치에 앉아 한참을 생각에 잠기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작가의 진정을 중시한다.
아무리 탁월한 가상의 이야기, 혹은 예화라 해도 삶의 진정성이 듬뿍 담긴 서툰 실화가 더욱 가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왔다. (물론 이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단편영화처럼 잘 짜인 플롯의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과연 그러한가'하는 의문에 빠진다. 가상의 이야기도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흔들 수 있구나 하는 유독 나에게만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닳고 닳은 서른다섯이다.
어떤 예화는 각각 다른 책에서 대여섯 번이나 만났을 만큼 책도 읽었다.
하지만 정확한 설계도에 따라 지어진 집처럼, 네비게이션을 따라 움직이는 자동차처럼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눈물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렸다.
얼마든지 내게 일어났던 일, 내게 일어날 수 도 있는 일, 어쩌면 나의 또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공감대 앞에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그야말로 단순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경청'만이 이 세상의 다른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메시지. 더 효율적이고 더 성공적인 삶을 위한 여느 다른 자기계발서 같은 부담을 이 책은 주지 않는다.
대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아버지 혹은 어머니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올 한올 실타래처럼 엮어가다가 마지막 순간 신파극처럼 눈물샘을 마구 터뜨려 놓는다.
그러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바로 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며칠 전 '당신과 얘기하다 보면 마치 필름이 뚝뚝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 하고 지나가듯 아내가 내뱉던 말이 생각난다. 첫째 아이는 종종 두 번, 세 번 같은 이야기를 묻다가 짜증을 내곤 한다. 그렇다. 나는 그 때 아내와 아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문제, 회사 문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들도 이 같은 '소통의 부재'에서 온 산물들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책을 읽고도 곧 시들해질 걸 알면서 다시 악착같이 이 같은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나에게 말을 걸어줄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살아있음'의 가장 큰 증거라는 것.
경청은 그 수많은 방법 중 '하나'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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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의 비밀

책읽기 2008. 4. 7. 13:49

'시크릿'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에 계속 올라 있다는 것 자체가 '시크릿'이다.
뭔가 비밀스런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불가사의하달밖에...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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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휴가를 냈다.
몸의 모든 에너지가 방전된 기분,
월요일 출근해서 하루 종일 집중 못하고 헤매다가 덜컥 연차를 쓰고 원없이 쉬었다.
오후 느즈막히 일어나 정말로 몇달만에 영화를 보고,
아쉬운 마음에 서점으로 가 당기는 책 몇권을 읽고 돌아왔다.
사는 것 같다.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 10점
박경철 지음/리더스북

우리 와이프의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시골의사 박경철씨의 새 책이 나왔다.
대부분 말기 암환자의 얘기들인데 그 사연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애달파서 책 읽는 내내 계속 읽어야 하나 하는 질문을 쉴 수 없었다.
그런 기분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이야기 하나하나는 아쉽다 싶을 정도로 짧게 짧게 읽힌다.
그래서 세번째 장을 넘기면 1/5 정도 책장을 채운게 마치 DVD의 보너스트랙같다.
짧아도 아쉽지 않은 묘한 책읽기의 경험이었다.

삶은 참 공평하지 않고,
삶은 참 고달프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만약 내가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다음 세상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요즘처럼 교회가 욕 먹는 시절이 또 있을까 싶은 시절에 위험한 발언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없이 사는 사람들이 조금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해피어 - 10점
탈 벤 샤하르 지음, 노혜숙 옮김/위즈덤하우스

그 다음 읽은 책은 '해피어'.
이 책을 읽다보면 익숙한 이름들이 여럿 나온다.
마틴 셀리그먼,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세상은 여전히 '성공'과 '행복'이 화두다.
그리고 그 행복학의 정점에 '긍정 심리학'이 우뚝 솟아있다.

기존의 행복 관련 서적들이 사례와 예화를 근간으로 했다면
이 책이 나온 배경이 하버드대의 한 강의였다는 점이 말해주듯이
학문적인 배경을 근거로 익숙한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곱씹어 주는 책이다.
그래서 관련 책들을 여러번 읽은 나로써는 새로운 감흥은 약한 책이었다.
그래도 굳이 한 권을 소장해야 한다면 이 책도 그 후보가 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한껏 우울한 기분으로 서점을 들어섰다가
다시 반쯤 충전된 기분으로 서점을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또 실망하듯이
책읽기가 행복이나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다만 위로나 격려, 새로운 희망을 얻는다.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위대한 책도 사람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을 수 있는 자유마저 허락한 것도
시험이라기보다는 지극한 사랑에 가깝다.
혼자 사고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
그것이 때로는 엄청난 파국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이러한 선택의 자유는 명백한 인간만의 특권이다.

다만 안타까운 건 여전히 베스트셀러 언저리만을 돌고 있는 내 책 읽기의 편협함이다.
많이 깊이 읽어야 선택의 범위도 넓어질텐데
어제도 어렵게 어렵게 얻은 두어시간의 자유시간을 쏟아부은 터라...

이제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
많이 보다는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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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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