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책읽기 2011. 8. 17. 20:56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크리스천일 뿐이지 한번도 요란한 믿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소리쳐 기도해 본 적도 별로 없고 병고침보다는 병원으로 가는 것이 더 바른 신앙이라 믿고 있으며 길거리에서 강요하듯 전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불쾌감이나 머쓱함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싶다. 남에게 손벌리지 않는 평범한 수준의 부와 아울러 남을 도울 수 있거나 조금 너른 집과 풍요로운 생활에 대한 욕심도 갖고 있다. 이왕이면 성공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내게도 하나님께도 유익한 것이라 생각해왔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부를 가져다준다고 생각진 않지만 정직하고 신실한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성공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런 나의 생각과 꼭같은 김동호목사님의 '깨끗한 부자'를 새겨 읽기도 했다.

그러나 이분, 그러한 생각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왔다는 사실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과연 내가 가진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산에서 도를 닦는 수도자의 삶같은 것일까? 하버드대학을 나오신 분이 왜 몽골이라는 먼 나라까지 가서 그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바라는 전형적인, 그리고 올바른 순종의 모습일까? 그동안 어렴풋이 가져왔던 신앙과 세상의 삶 사이에 커다란 계곡이 생겨난 듯이, 그리고 그 계곡으로 폭포수같은 고민의 물길이 덮친 듯이 혼란스러웠다. 과연 이 문제와 고민에 대한 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고민은 팔복시리즈의 첫 작품이었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도 동일하게 품었던 것이자 질문이었다. 그러나 최춘선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하진 않았다. '사명은 각자각자요...'라는 말이 그래서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절대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지요."

그런 내게 책 가운데 나온 이 대화가 내 생각의 물꼬를 터놓았다. 사실 하나님의 우리더러 이용규선교사님처럼 살라고 명령하신 적은 없다. 즉 하버드까지 갔다가 몽골로 가라는 그런 구체적 명령을 내리신 적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곧잘 넘겨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생업이나 학업을 팽개치고 지금 당장 선교를 가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실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은 선교사님을 크게 쓰시기 위해서 본인이 가장 내려놓기 힘든 부분에 대한 순종을 요구했고 선교사님은 그것에 기쁨으로 순종했다. 그러나 우리 각자 각자에게는 순종할 영역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고 하나님이 내게 권고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깊이 고민해보기로 했다.

일단은 나의 달란트와 나의 욕심을 구분해보기로 했다. 하나님은 나의 달란트가 선하게 쓰이고 열매맺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욕심이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어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용규 선교사님을 하버드의 유명한 교수로 부르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님의 경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르신 것이다. 그 둘의 차이가 우리에겐 크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 나는 그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우리 시대에 행복이 주인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도 한다. 이때 행복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취급된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해지려는 열망과 행복해질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그러나 그 행복이 단순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목적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세상이 가르치는 지혜는 대부분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은 하나님께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유익하지가 않다. 진정한 행복은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며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며 크리스천인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란 그분이 태초에 나를 설계하는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규 선교사님 메시지는 고속도로에 난 표지판과 같다. 마구잡이로 액셀레이터를 밟으며 질주하는 우리에게 조금 속도를 줄이고 주위를 둘러 보라고, 그리고 이 길의 끝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낮지만 강하게 속삭여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또 들어보고 있다. 수많은 차들이 고속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진정으로 그들이 답을 찾기를 원한다. 이 책속에서 그리고 성경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다시 한번 곰곰히 곱씹어본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면 일단 나의 욕심과 분주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그런 '내려놓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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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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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선교사님 004, originally uploaded by parkyocheol.

요즘 기독교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을 만났다. 모회사의 규장에서 출판한 인연으로 아침강연을 하신 것이다.

채 1시간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부흥회라도 했냐고?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선교사님은 마치 극장안에서 바로 옆사람에게 속삭이듯이 말씀을 전하셨다. 그러나 그 말씀이 너무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었기 때문에 그 낮은 소리조차도 가슴속에 깊숙히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내 삶의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봤다. 그리고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내가 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물론 선교를 가겠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가진 달란트와 하나님의 계획이 제대로 만나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더 많이 기도하고 노력해야겠다는 말이다.

못다 하신 말들이 새로운 책으로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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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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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이 내일 오전에 회사에서 강연을 하신다고 한다. 질문을 적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몇자 적어보았다.

1.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란 세상에 자랑할 수 있는 나의 것들(학벌, 명예, 재산)을 무조건 버리는 것이어야 할까요? 혹 하버드대의 교수로써 더 깊은 학문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나요?

- 관련구절: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것을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발 하나를 걸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코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마지못해 빼앗기기는 할지언정 자기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게 된다. 50p.

2. 요즘 사람들에게 '행복'이 우상과도 같습니다. 크리스천들도 남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책처럼 '깨끗한 부자'가 되거나 남들보다 행복해지는 것이 나쁜 것일까요? 행복해지려는 열망이나 권리를 버리는 것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일까요?

- 관련구절: 우리 시대에 행복이 주인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도 한다. 이때 행복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취급된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해지려는 열망과 행복해질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23p.

- 관련구절: 단, 우리는 이방인지만 복의 통로로 사용되기 위해 그 땅에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어 그 땅에서 복을 끼치는 삶을 사는 것이다. 43p.

3. 세상과 하나님을 선교사님의 책처럼 이원화시키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꼭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야만 하는지 궁금합니다.

- 관련구절: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뜻이 아니다. 그렇게 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둘 다 누리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양쪽에 걸치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십자가가 아닌 세상을 택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18p.

4. 기도하는 방법을 좀 더 자세히 알려주세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기도에 남다른 비결같은 것은 없을까요? 시간이라든지 방법이라든지 말입니다^^

- 관련구절 :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세요. 주님은 '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우리의 안테나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소리를 잡기에는 너무 약하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거에요. 안테나를 세우는 방법을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주님,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5,6p

- 관련구절: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순종을 바라실 때 미래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다음에 선택하게 하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5p.

- 관련구절: "혹시 응답이 없을 때 그저 움직이지 않고 데드라인을 넘기기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다음에는 그렇게까지 기다려보세요. 그것이 신뢰입니다." 62p.

5. 선교사님이 말씀하신 배려, 판단하지 않는 마음, 질투하지 않음 말고도 현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또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 관련구절: 동연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배려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연이의 성장을 보고 이렇게 감동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나의 성장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으실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성장하는 모습이 하나님의 감동이 되기를 소망한다. 24p.

- 관련구절: 아무리 의론 쪽에 서서 하는 판단이라도, 판단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상처가 생긴다. 그리고 마음이 단단해진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상처가 생길 때, 죄를 짓는 것은 상처 받는 쪽이라는 사실이다. 상처 준 사람은 대부분 상대방의 마음에 걸림 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넘어간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마음에 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악한 영은 대부분 분노나 미움으로 상처를 확대시킨다. 판단은 분노나 미움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148p.

- 관련구절: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여 질투하고 죽이려고 한 이유도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들로부터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삶이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볼 수 있다. 1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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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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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이용규, 규장

*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세요. 주님은 '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우리의 안테나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소리를 잡기에는 너무 약하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거에요. 안테나를 세우는 방법을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주님,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5,6p

*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16p.

*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뜻이 아니다. 그렇게 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둘 다 누리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양쪽에 걸치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십자가가 아닌 세상을 택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18p.

* 불교나 뉴에이지 사상도 우리에게 비우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은 비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비우라고 하시는 목적은 이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으로 것으로 채우기 위한 전 단계로 비우는 것이다. 21p.

* 우리 시대에 행복이 주인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도 한다. 이때 행복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ㅏ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취급된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해지려는 열망과 행복해질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23p.

* 동연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배려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연이의 성장을 보고 이렇게 감동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나의 성장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으실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성장하는 모습이 하나님의 감동이 되기를 소망한다. 24p.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선ㅁ루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내려놓기 전에는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없다. 영적으로 어린아이인 우리는 내려놓으면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움켜쥐려 하고, 결국 그렇게 잡고 있는 한 그것은 진정한 우리 것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가 움켜쥔 것이 우리를 옥죄게 된다. 27p.

* 당시 나는 학문의 길과 유학의 길에서 지도교수님의 입김이 결정적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왠지 부수적이고 간접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현실과 상황을 더 믿고 있었던 그 기간 동안 나는 늘 마음 한편에 불안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33p.

*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순종을 바라실 때 미래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다음에 선택하게 하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5p.

* 수요일이면 집 근처의 한인교회에서 찬양예배를 드렸는데, 찬양을 하며 목 놓아 울곤 했다. 돌아보건대 이 기간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숨어있는 성취욕, 세상을 향한 야심을 만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하나님 것과 내 것이 뒤섞여 있었는데, 그것들이 고난을 통해 정제되어 갔다. 그리고 내 능력이 한계에 대한 절망을 딛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이 자라갔다. 38p.

* 단, 우리는 이방인지만 복의 통로로 사용되기 위해 그 땅에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어 그 땅에서 복을 끼치는 삶을 사는 것이다. 43p.

*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것을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발 하나를 걸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코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마지못해 빼앗기기는 할지언정 자기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게 된다. 50p.

* 광야에서의 고난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 자신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더 쉬워진다. 어차피 내가 삶을 이끌어가는 것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56p.

* '나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가 그 사람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교수의 평가, 동료나 주위 사람의 시선, 상사의 반응, 이성 친구의 표정에 신경쓴다. 과연 우리는 그들의 경가보다 하나님의 반응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가? 누구의 평가에 관심을 쏟고 두려워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을 어디에 어떻게 쏟을지가 결정된다. 57p.

* "혹시 응답이 없을 때 그저 움직이지 않고 데드라인을 넘기기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다음에는 그렇게까지 기다려보세요. 그것이 신뢰이니다." 62p.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초원의 강이 가는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우리의 주변은 풍성해진다.

...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자에게 준비해두신 하나님의 축복은 그 길을 선택하기 전에는 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에 희생제물로 준비해두신 양은 아브라함이 순종하기로 결단한 이후에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를 내려놓는 순종이 결단을 하기 전까지는 철저히 가려져 있다. 70p.

* "하나님은 절대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지요." 76p

* 우리가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표만 붙잡고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면 우리의 삶은 두려움과 절망에 구속되고 만다. 반면에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 실패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평안함과 자유함 가운데 거할 수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라는 말씀이 그것을 잘 설명해준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실패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된다. 78p.

* 아무리 의로운 쪽에 서서 하는 판단이라도, 판단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상처가 생긴다. 그리고 마음이 단단해진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상처가 생길 때, 죄를 짓는 것은 상처 받는 쪽이라는 사실이다. 상처 준 사람은 대부분 상대방의 마음에 걸림 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넘어간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마음에 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악한 영은 대부분 분노나 미움으로 상처를 확대시킨다. 판단은 분노나 미움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148p.

* "네 모습에서 향유 옥합을 본다."
바로 그 다음 말씀이 나를 놀라움 가운데로 몰아가며 내 마음을 깊숙이 찔렀다.
"그런데 그 옥합이 예수의 발 앞에까지는 드려졌지만, 여전히 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려 하는구나."
그 말씀에서 깨어지지 않은 내 자아를 보게 되었다. 예수의 발 앞까지는 갔지만 정작 깨어져야 할 때 깨어지지 않으려는 나의 자존심을 본 것이다. 존중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때문에 다라는 사람의 말에 상처를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서 깊은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나는 애통해하며 하나님 앞에 다짐했다.
"하나님, 제 안에서 여전히 깨어지지 않은 부분들을 봅니다. 저의 옥합을 깨기를 원합니다." 168p.

*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여 질투하고 죽이려고 한 이유도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들로부터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삶이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볼 수 있다. 172p.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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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종종 열심히 잠을 줄이고 쉬는 시간을 줄이면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방향을 향해,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쓰는가이다. 어떤 사람이 시간을 쓰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사는지 아니면 그의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사시는지를 분별할 수 있다.
<68p. 내려놓음, 이용규>

* 그 사람이 돈과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나의 하루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고 있는지 점검해봐야겠습니다.
멋진 월요일입니다^^
오늘도 화이팅하세요~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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