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부터 청년부까지 거의 10여년을 교회에 다니며 나는 정말로 많은 걸 배웠다. 한창 지적 호기심이 충만할 때는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문화론과 신상언 집사님의 대중문화론에 흠뻑 빠져보기도 했다. 그때의 내게 교회는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세상 전부를 만나고 바라보는 문이고 창이었다. 그런데 취업과 동시에 교회가 넓은 세상의 한 부분으로 바뀌면서 적지 않은 혼란스러움과 무기력을 맛봐야만 했다.

가장 큰 낙담은 선배들의 변절?이었다. 적어도 대학부와 청년부에선 세상을 바로 바라볼 수 있는 바로미터요 모델이었던 그들이 이상하게 취업을 하고 사업을 하면서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변해갔다는 점이다. 그토록 비판하고 안타까웠던 했던 세상을 닮아가거나 때로는 더한 모습으로 타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기력하고 무능하기는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철씨는 크리스천치고는 일을 잘 하는 것 같애"
이 말은 '교회에 출석만 하는' 이전 직장의 상사가 진심으로 내게 던진 말이다. 과연 이 간극은 뭘까? 왜 교회에서 그토록 훈련받은 젊은이들이 세상에선 무력한가?

월요일 스터디가 있어서 화요일 교보문고를 찾았다.
인터넷 서점과 비교해보면 적립금을 따지더라도 오프 서점에서 사는게 훨씬 손해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책이나 신간인 경우 온라인으로 확인해보는데는 한계가 있다. 적어도 한 챕터 정도는 읽어야 책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큰 서점은 여러모로 유익하다. 공기밥에 라면을 3000원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큰 부담도 아니다. 제일 먼저 잡은 책은 '프랭클린 플래너'로 유명한 하이럼 스미스의 책,


성공하는 시간관리와 인생관리를 위한 10가지 자연법칙
하이럼 스미스/ 김경섭, 이경재 옮김
김영사

많은 사람들이 자기개발이나 '성공'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들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종종 본다. 처세술의 얄팍함과 가벼움이 먼저 떠오르는 모양이다.
물론 그런 책들도 많다. 하지만 스티븐 코비나 구본형씨의 책은 근본적으로 처세와 거리가 있다. 기업에 혁신과 경영이 필요하듯이 개인에게도 같은 맥락의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근본적인 삶의 원칙들이 공통적으로 요구된다.

최근에 회사 사람들에게 보낸 독서큐를 정리하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위한 20가지 자기결정'이라는 주제문를 뽑아보았다. 얼핏 보면 서점에 그토록 넘쳐나는 성공서적의 내용들의 집합으로 보인다. 긍정적으로 살아라, 목표를 가져라, 매일 학습하라... 그리고 이 내용들의 결과는 말쑥한 차림의, 그러나 이기적인 한 직장인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아침예배때 '팔복'의 주제가처럼 불리는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를 들으며 최춘선 할아버지의 삶과 이 원칙들이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지 곰곰히 곱씹어 보았다.

일단 최춘선 할아버지는 '복음'과 '통일'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살고 계셨다. 그 삶은 '기도와 말씀'에서 나온 것이며 삶 전체가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재산과 명성에 연연치 않음으로 '시간'과 '돈'을 지배하셨다. 그리고 그가 기억하는 모든 말씀과 다짐을 글로 '기록'하였고 그것들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셨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 동기부여한' 삶이며 그 모든 삶이 습관으로 완성되어졌고 그 얼굴엔 항상 '웃음'과 '감사'가 넘쳐났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부지런'하셨고 부인을 천사로 부를만큼 '가족을 사랑'하셨다. 그 가족들에게 남긴 할아버지의 교훈은 우리가 느낀 것보다 몇배가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그의 삶은 철저히 남을 위하여 '공헌'하는 삶이었다.

나는 왜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교회안에서만 성령충만한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의 머리는 주님의 은혜로 가득차 있는지 모르지만 세상사람들도 아는 분명한 '삶의 원칙'들에 대해서는 '실천의 훈련'을 못받았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은혜는 지극히 '수동적'인 것들 뿐이지 않은가. 그 누구보다 말씀이나 수련회의 감동이 며칠을 못가는 경험을 했던 나부터 그렇다.

이 책의 저자 하이럼 스미스는 대기업 고위 임원의 자리를 뿌리치고 '전도자'의 삶을 3년동안 살았다고 고백한다. 나는 대한민국에 이런 크리스천 라이프 컨설턴트도 필요한 시기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신앙과 세상의 삶을 직접 이어줄 사람은 목사님보다도 직장의 선배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주위에 그런 선배나 멘토를 두고 있다면 그보다 더 축복받은 직장생활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구본형/ 휴머니스트

약 1시간만 집중하면 이 책 한권을 읽을 수 있다. 구본형씨의 마력은 비단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경영학과 인문학 사이에 살짝 다리를 걸친듯한, 그러나 사실의 전달보다는 공감을 통한 설득이 돋보이는 이 저자의 책을 나는 무척이나 즐기고 아낀다. 이 사람의 책을 대여섯권 읽었고 또 서너권이 남아있다. 나는 무슨 다람쥐 도토리 꺼내 먹듯이 이 사람의 책을 읽는다. 아니 읽고 쓰고 되새김질하며 내 삶 속으로 끌어들이려 애쓴다.

주제는 사실 평범하다. 평범하게 살지 말고 괴짜가 되라, 책과 웃음을 즐기고 연습하라, 여성이 가진 장점을 배우라, 행복하게 살라... 그러나 이렇게 철자로 옮기면 죽어버리는 내용들이 책속에서는 살아서 펄떡거리며 다가온다. 삶이 무의미하고 무료하게 느껴질때면 그의 책을 꺼내 읽어본다. 이 분이 크리스천이어서 이 삶의 원칙들을 성경과 연결해 해석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선왕 독살사건
이덕일/ 다산초당

이 책은 27명의 조선왕 중 무려 8명에 대해 거론되는 독살설을 추적하고 분석한 책이다. 그 첫장은 중종의 아들 인종과 왕후 문정왕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첫번째 부인이었던 폐비 신씨의 아들 인종을 문정왕후가 독살했다는 '설'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문정왕후가 인종을 독살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주장한다. 그 당시 대윤과 소윤, 사림파의 권력구조 속에서 문정왕후가 그의 아들 원자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인종을 독살했다는 여러 정황들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학식과 덕망이 높았던 인종은 그런 어머니를 위해 효도를 아끼지 않지만 문정왕후의 권력에 대한 욕심은 그보다 훨씬 컸다. 중국의 사신이 인종을 보고 '조선은 이토록 훌륭한 선인을 왕으로 두었으나 나라가 작아 오래 살지 못하겠다'고 개탄했다 한다.

사대주의적 발상인지는 모르나 나라는 작은데 권력에 대한 욕심은 왜 이리 컸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왕'이나 '대통령'같은 권력은 먼 나라의 일일지 모르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인정받지 못하고 출세하지 못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삶을 돌아본다면 조선의 왕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조선왕 독살사건'을 마지막으로 화요일 북헌팅을 마쳤다. 그동안 쌓아둔 적립금으로 '10가지 자연법칙'을 사서는 버스안에서 절반가까이 읽어버렸다. 많이 읽는다고 지혜로워지지는 않겠으나 아직도 나는 많이 읽어야할 독서의 초보이다.
언젠가 더 많이 생각하고 또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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