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정민/ 보림


옛날 화담 서경덕 선생이 길을 가다가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다섯살에 장님이 되어 20년을 살아왔는데 그 날 갑자기 눈이 떠져서 세상을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갑자기 뜨인 눈으로 세상을 보니 너무나 혼란스러워 집에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다는군요.
서경덕 선생이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눈을 다시 감고 오던 길을 되짚어가라. 집을 찾을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지고 편해진다고 해도 그로 인해 오히려 마음은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그럴 때는 옛것을 되짚어 옳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된다고 말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겐 영시보다도 생소한 '한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한시의 뜻풀이에 머무르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선현의 지혜들을 너무나 감동적이고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저자의 아들 벼리에게 '한시'를 가르쳐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쉽고 다정하게 '한시'의 내용들을 풀어줍니다.
그러나 그 내용만큼은 쉬이 읽을 수 없는 값진 보석과도 같아 읽고 있는 호흡을 가끔씩 멈춰 서서 가다듬게 됩니다.

언제나 진리는 통하게 마련인가 봅니다.
앤서니 라빈스의 책을 읽자마자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을 집어들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도 유사합니다.
옛 사람들은 뜻없이 한말이 말 그대로 된다 하여 나쁜 말을 삼가했다고 합니다.
앤서니 라빈스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말보다 나쁜 말에 훨씬 더 많이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긍정적인 말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까지 바꾸어준다고 말한 기억이 나는군요.
그러니 동서양의 표현방법은 다를 지언정 근본적인 진리와 원칙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다지게 됩니다.

장영희 교수가 영미시를 풀어쓴 '생일'때문에 몇개의 영시를 외운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기 모인 주옥같은 한시들이 다시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좋은 책은 정말이지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지 모를 일입니다.

빼곡히 채워 그린 서영화에 질린 사람이라면
여백으로 가득한 한시의 풍경에 저절로 그 마음이 환하여질것입니다.
이 여행에 함께 하신다면 저는 더 행복하겠습니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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