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생각의나무

얼마전 추석때 처갓집에서 하루밤을 잔 적이 있다. 애들을 어렵게 재우고 잠을 청했다가 새벽에 잠을 깼다. 몇시나 되었나 해서 시간을 보려니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다. 내 핸드폰은 집에 두고 왔다. 아내 핸드폰을 찾으려니 괜스레 깨울 듯 해서 관두었다. 대략 4,5시쯤 되었겠거니 하고 시집오기 전 썼던 아내방을 찾았다.

이럴 줄 알고 처제방에서 책을 세권이나 찾아두었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던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리고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이렇게 세권을 찾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펴고 읽으려니 자꾸만 잠이 쏟아진다. 이상한데... 책이 재미없어서 그런가 싶어서 이책 저책을 전전한다. 그러나 도저히 쏟아지는 잠을 피해갈 수 없어서 그대로 침대위에 잠이 들어버렸다.

다시 잠을 깼을때 비로소 새벽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도 새벽 1,2시에 깨었던 모양이다. 과거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명절날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보다니...

지난 2년동안 이런 비슷한 열정으로 약 370권의 책을 읽어왔다. 읽었을 뿐 아니라 밑줄 치고 기록하고 남에게 전해왔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딱 1년동안 '독서큐'란 이름으로 매일 읽은 책들의 한 구절씩을 나눠왔다. 그러나 의무감으로 했던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매일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익히고 나누는 일이 이렇게 신나는 일이구나를 나 스스로도 매번 감탄하며 그 일을 했다.

뿐만 아니다. 책에 관한 한 전문가들을 자꾸만 만나게 되고, 회사에서는 '사내(社內) 공병호'로 불린다. 다음이나 네이버에 서평을 올리고 상품권을 받는 일이 늘었다. 개인 블로그의 방문자수는 하루 4,000명에 육박해서 별 수 없이 트래픽을 두배로 늘려야 했다. 조만간 IT전문가 모임에서 독서법에 관한 발표도 예정되어 있다. 사내 강연도 연말쯤엔 하게 될 것 같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
바로 이 한권의 책 때문이다.

우화형식의 가벼운 자기계발서들이 넘쳐나지만 걔중에서 진국으로 칠 수 있는 책들은 몇 권 되지 않는다. 거기서 구본형이란 이름은 그 이름만으로도 그의 책들을 신뢰하게 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매력있는 개인 브랜드이다. 20여년의 직장생활에서 나온 경험과 인문학적 감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그의 필력, 그리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각과 배운걸 나누려는 그의 열정이 어우러져 나는 이 분의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사고 본다. 절판된 책이 아니고서는 거의 다 읽었다. 그것도 여러번씩.

책은 생명력 있는 지혜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분의 책이 이토록 매력있는 것은 이 두가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말들의 배열이 아니라 자신이 몸소 경험한 것에 기초해 일반적인 지식에 머무를 만한 내용들을 전혀 새로운 영양분으로 재생산해낸다. 이 분의 책을 읽으면 가슴이 뛴다. 이대로 살아선 안 될 것 같은 불꽃이 튄다. 그것은 바로 평범한 일상을 다시 살게 하는 동기부여의 힘이다.

나는 구본형씨를 통해 '하루를 잘 사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배우고 깨달았고 또 실천으로까지 연결시켰다. 구본형씨의 가르침?대로 매일 새벽의 두시간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그러나 기쁨으로 가득찬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어나 글을 쓰면서 하루를 준비한다. 네살짜리와 6개월된 아이의 아버지가 새벽을 깨우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러나 나 혼자 나라는 육체와 정신의 칼을 갈 수 있는 이 새벽시간을 나는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다. 이 꿀맛같은 시간을 맛본 뒤에 삶의 다른 즐거움들은 포기한지 오래다.

책을 그저 읽는데만 머무르면 크게 의미가 없다. 책읽기가 가정과 직장생활에서 의미있는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내게는 시간낭비일 뿐이다.(물론 틈틈히 소설과 에세이도 자주 읽지만^^) 이러한 변화가 한권의 책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앞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나눠주고 싶다.

책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내가 그 증거가 되고 싶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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