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쯤 퇴근하는 내게 아내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주인집이 한달내로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을 빼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같은 교회 집사님의 도움을 받아 그 주중에 좋은 집 세개를 봐두고 계약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인집이 자신의 집이 나가지 않아 돈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집이 나가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주인은 우리가 전세 대출을 받아 더 큰집으로 늘려갈 수 있다는 계산을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까운 새집을 눈앞에서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보고 온 집에 흥분하던 아내의 얼굴이 선합니다.

그로부터 한달후, 그러니까 지난주에 드디어 주인의 집이 나갔습니다. 그래서 계약금을 돌려받아 새 집을 구하러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전세금은 오르고 봐두었던 집은 사라졌습니다. 이집 저집 돌아다녀왔지만 이전에 봤던 집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집들 뿐입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걔중 나은 집을 계약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전에 부탁드렸던 집사님의 소개로 마지막 부동산을 찾아갔습니다.

사정설명을 하고 집을 알아봐달라 부탁드리자 그 부동산 주인이 펄쩍 뜁니다. 어떻게 한달도 안되는 말미를 주고 새집을 구하라 쫓아내느냐며 그 분이 더 흥분합니다. 5년 넘게 살았던 집의 주인이라 좋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 부동산주인이 우리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껴두었던 자신의 집을 소개시켜주었습니다.

그래서 소개받은 그 집은 황홀할 지경이었습니다. 방들은 이전 집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크고 햇볕이 들어와 채광도 좋았습니다. 이마트와 버스정류장까지는 이전집에 비해 두배나 가까웠고 화장실은 넓고 베란다까지 여유로웠습니다. 주인은 애가 있는 사람은 받으려 하지 않았으나 우리가 너무 착해보여서 방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합니다. 게다가 두달이나 그 집을 계약하려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더는 못 기다리고 우리와 계약하겠다고 말합니다. 속으로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의 기도를 올렸는지 모릅니다. 이 집을 달라고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결국 부동산주인이자 그 집의 주인이 마음을 정하고 계약하려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저희 바로 앞에서 그 집을 보았던 부부가 당장 계약하겠다고 합니다. 눈 앞에서 그 그림같은 집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다른 직원이 '10분만 일찍 오지...'하며 안타까워해줍니다. 눈앞에서 그 집을 계약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저는 눈에 불이 났습니다. 그때 또 다른 직원이 다른 집을 보여주겠다며 우리를 데리고 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2,3분 거리에 있는 다른 집을 소개합니다. 그 환상의 집보다는 약간 못했지만 좋은 집이었습니다. 아내는 이전에 놓쳤던 집에 비해 몇배는 더 좋은 집이라며 흥분합니다. 화장실과 베란다가 약간 좁고 채광이 안 좋은걸 빼고 나면 바로 전에 보았던 그 환상의 집만큼 좋은 집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날 그 집을 계약했습니다. 바로 어제의 일입니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집에 연연하는지 알것 같은 하루였습니다. 5년이 넘게 빛 잘 드는 옥탑방에 살다가 이제 2층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약수터 들어간 산의 길목에 있는 집에서 큰 길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마트도 가깝고 출근시간도 10분은 족히 당겨졌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훌륭한 집을 눈앞에서 놓쳐버리는 바람에 이전에 보았던 안 좋은 집들에 대한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불평이 스며드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낙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자신은 괜챦답니다. 오히려 숨막히게 깨끗한 그 집 보다는, 그리고 주인이 바로 아래 부동산을 하고 있어서 애들이 맘껏 뛰놀지도 못할 그 환상의 집보다는 계약한 지금의 집이 훨씬 낫다고 합니다. 아래가 식당이니 뛰어놀아도 뭐라 할리 없고, 주인이 다른 곳에 사니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더구나 이전에 보았던 집들을 떠올리며 아내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또 하나님께 감사하는듯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시간은 짧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을 살 것처럼 이 땅의 것들에 연연합니다. 비록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옥탑이었지만, 더구나 등기에는 올라있지도 않은 불법건물이었지만 우리는 그다지 불편함을 모르고 5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버젓한 2층집에 살게 되었는데 하마터면 이전보다 더 불행하다고 여길 뻔 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섞은 생각이었습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불행한 하루가 될 뻔 했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시간은 의외로 짧습니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것들을 좀 더 누리고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내게 닥치는 일상의 모든 일 가운데서 말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새집을 구하게 하셔서^^

'완벽한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이버 '오늘의 책'에 책 한권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1) 2006.10.24
오늘 새벽 이야기  (2) 2006.10.24
산세베리아  (0) 2006.10.20
택배 왔어요!  (2) 2006.10.19
공기 청정기  (0) 2006.10.19
Posted by 박요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