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꾸는 땅끝

책읽기 2006. 11. 11. 12:39

꿈꾸는 땅끝
조명숙 지음/규장(규장문화사)

이 책을 읽으며 출근하던 토요일 아침, 회사 근처 at센터 앞에서 코스프레에 참가하기 위해 걸어가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 중 몇몇은 일본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로 분장하고는 깔깔거리며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순간 처절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너무 생생하게 읽은 탓인지 그 아이들의 모습이 잠깐이나마 한없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저 아이들은 회충약을 받아 든 채 그 약 한 알을 먹지 못해 죽어간 자식을 생각하며 오열하는 어떤 북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모녀가 같이 탈북했지만 같은 연변 동포에게 각각 따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어 버린 이들의 고통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죽을 고비를 넘겨 자유의 땅으로 넘어 왔지만, 되려 그 자유가 걸림돌이 되어 방황하는 수많은 탈북자들의 삶은 저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에겐 저마다의 주어진 삶이 있다. 또한 그 삶들은 나름대로 고달픔과 어려움들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당장 목숨이나 생계와 관련이 없을 뿐 저 아이들도 나름대로 숨막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만화 속 꿈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일 뿐이다. 내가 회사와 가정이라는 일상에서 날마다 쳇바퀴 도는 삶을 사는 것과 도무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걸 나무라고 탓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하늘 아래 전혀 다른 세상이 또 하나 있음에 눈을 뜨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것이 정말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일인가 몇 번이나 의심하게 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모두는 지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숱한 언론과 목격담들이 부족해서 믿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밑도 끝도 없는 절망의 삶에 몸을 던진 한 여선생님의 이야기를 실제로 만나고 보니 과연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가치 있는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야릇한 의문과 죄책감에 휩싸이고 있다.

어차피 읽은 책의 감동은 며칠을 가지 못할 테고, 또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텐데 너무 마음 쓰지 말자고 읽는 동안 다짐했지만 한 번 잡으니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내가 이들을 위해서 도울 수 있는 건 과연 뭘까?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후원을 결심했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유야무야 되었던 기억이 또 다시 빼꼼 고개를 내민다.

서점과 신문 지면을 보니 정말이지 행복을 주제로 한 책들로 넘쳐나는 것 같다. 이제 배고픔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고 삶의 질과 행복을 찾아서 방황하는 사람들로 인산 인해다. 그런 사람들에게 몸도 마음도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과연 얼마나 읽힐 수 있을까 생각하니 다만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찌 되었든 생각으로만 책을 맺을 수가 없어서 책 말미에 소개한 자유터여명학교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지 깨진 소스도 보이고 올라온 글들도 옛날 글들이다. 홈페이지 관리를 돕거나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목숨 걸고 탈북자들을 도운 저자의 열정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그래도 두 번 거짓말은 안 되겠다 싶어서 아예 홈페이지에 나온 번호를 전화를 걸었다. 아쉽게도 통화할 상황은 아닌지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으신다. 뭔가 도와드릴 일이 있었으면 정말 좋으련만...

부디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 땅에 우리가 모르는 세상은 왜 이렇게 넓고도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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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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