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법칙

책읽기 2006. 11. 21. 13:40

거울의 법칙
노구치 요시노리 지음, 김혜숙 옮김/나무한그루


아버지가 처음으로 암 선고를 받으셨을 때 나는 오열하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병원에 남겨두고 후문 근처 뒷뜰로 나왔다. 아버지는 자신을 암에 걸리게 한 주범 중의 하나인 담배를 문 채로 "맞지?" 하며 내 눈치를 살피셨다. 암은 이미 간 전체로 퍼져 있어서 수술은 별 의미가 없을 듯 싶었다. 나도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소설 같은 일이, 그렇게도 우려했던 일이 칼날 같은 현실로 아버지와 나, 그리고 우리 가족에 다가온 것이다.

두어 달간의 긴 투병생활을 마치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집으로 돌아온 그날, 암 선고를 받으신 날로부터 꾸준히 심어온 꽃씨는 땅 속에 묻힌 채로 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우리 아파트 뒷동산은 아버지가 심어 놓으신 갖가지 꽃들로 찬란하게 빛났다. 아파트 출입로를 걸어나올 때마다 마주치는 아버지의 흔적은 때로는 감동이었고 때로는 아픔이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더구나 첫째는 나를 심할 정도로 닮아버렸다. 생김새도 체형도 입맛도 습관도, 심지어는 앉는 자세와 예민한 성격, 엄청나게 모자라는 수리력과 남달리 뛰어난 어휘력까지... 마치 학교 다닐 때 배운 데칼코마니를 연상시킬 정도로 그렇게 닮은 아이다.

여린 이 아이는 그래서 다루기 조심스런 유리그릇 같다. 그래서 얼마 전 친구로부터 '얼레리 꼴레리'를 들었다고 아빠한테 이르는 순간 머릿속에 불꽃 같은 게 튀는 경험이 했었다. 놀리는 그 애에게 더 크게 놀려주라고 따로 교육까지 시켰다^^ 지나고 보니 우습기 그지 없는 얘기지만 부모란 그런 것이다. 작은 칭찬에 우쭐해지고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온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하물며 왕따나 이지메를 당한다면...

이 책은 실화가 주는 작은 긴장감과 아울러 한 아이의 아빠로써 깊은 공감을 가지고 쉽게 빠져든 책이었다. 설혹 이 책에서 말하는 '거울의 법칙'이나 '필연의 법칙' 같은 원칙들이 조금은 일반화된 이론이라 할지라도 현실은 힘을 갖게 마련이다. 내 일처럼 이 책을 읽었고 또 공감했다. 그렇다. 어떤 문제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게 마련이며, 그 이유를 외부에 찾기보다 자신에게서 찾으려 할 때 신기하게도 그 문제는 풀려나가는 경험을 한다. 이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찾아갔더라면 결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명한 아이 엄마는 오랫동안 눌려왔던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부터 회복시킨 뒤 아이를 찾아갔다. 다소 비약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허구처럼 들리진 않는다. 가족과의 관계만 온전하다면 이 세상의 큰 파고들과도 싸울 힘을 얻을 수 있다.

나에게 아버지는 항상 두려움과 원망의 대상이었다. 한번도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해 본 적이 없었다. 밤늦게 집에 돌아갈 때면 항상 큰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부터 확인하곤 했었다. 만약 불이 켜져 있다면 그 날은 편히 잠들기 어려운 날이 오곤 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힘든 삶을 맨 몸으로 부딪히신 분이셨다. 술과 담배에 의지했던 삶이지만 가족을 향한 책임감은 그 누구보다 크신 분이셨다. 아무리 힘드셔도 다음 날 일을 쉬신 적이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아파트 뒷동산에 꽃씨를 심으면서 나와 가족들에게 사죄의 말을 되풀이하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드리던 새벽기도의 기억을 도무지 지울 수 없다. 왜 우리 가족은 좀 더 일찍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아들을 본다. 아마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도움의 손길을 주지 못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설사 도울 수 있다 해도 가만히 있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가 뒤늦게 깨달았던 것들을 조금은 일찍 보여주고 가르쳐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 그러나 꼭 공평치는 않다.
거울을 보렴. 절대 먼저 웃는 법이 없다.
남이 네게 불이익을 주거든 그 사람을 축복해버려라. 미워하고 되갚아 주는 것보다 그것이 너에게 더 유익이 될 것이다.
어떤 것보다도 가족을 소중히 여겨라. 가족은 이 세상에서 위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그리고 유일한 휴식처이다.
좀 더 세상과 사람을 사랑해라. 당장은 손해 볼 듯 여겨질지 모르나 그들이 너를 분명 도울 것이다.
살며 사랑하고 배워라. 그리고 유산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남겨라.

그리고 무엇보다 너를 만드신 조물주를 생각하고 네가 이 세상에 온 이유에 대해서 묻고 스스로 답할 수 있도록 해라.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리 살도록 지금부터라도 더 노력할 참이다.

네가 함께 해줬으면 정말 고맙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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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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