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학원 일자리를 알아본다고 한다.
주 3일 수업인데 내 연봉을 가뿐히 넘는 모양이다. (참고로 내가 사는 곳은 분당이다.)
생각이 복잡해져 있는데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얼마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제약회사에 다시는 한 친구 와이프가 출산을 앞두고 학원에 취직을 했다는 것이다.
외국계 회사라 그가 받는 연봉을 짐작하는 나로써는 궁금한 것이 당연했다.
돌아온 대답인 즉은 이렇다.
해마다 '당신은 X맨입니다'라고 날아오는 퇴직공지 팩스...
올해도 운좋게 살아남았지만
그 피말리는 경험을 한 친구의 와이프가 최소한의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려운 취직 결정을 한 것이다.
얼마전 결혼후 재취업한 어떤 주부의 삶을 TV로 보고는
죽어도 저렇게는 못살겠다고 그날따라 살갑게 대하던 아내 얼굴이 떠올라서 마음이 내내 무겁다.

사실 어지간한 연봉으로는 애 둘 키우는 서울생활을 감당하기 힘들다.
특히나 조그만 기독교 IT 기업에서 특출날 것도 없는 웹기획일을 하는 나같은 사람이야 오죽할까.
30대 후반까지는 그래도 열정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가뭄속 논바닥처럼 열정조차 말라버린 30대 후반의 가장에게 대한민국은 '조금' 잔인한 나라이다.
아내가 일하러 가면 서원이는 유치원 종일반에 들어가야 할테고,
이제 막 3살이 된 두돐짜리 희원이는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까?
요즘같이 매일 야근모든 회사생활 가운데 주 3일을 꼼짝없이 칼퇴근해야하게 생겼다.
과연 누가 애 낳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누리겠다는 젊은 부부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맡긴 아이들이 언제 발가벗겨져 어린이집 문고리를 움켜쥐고 울게 될지 모르는데...

어제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실제로 몸도 마음도 아팠지만)
오후 늦게 들어선 극장에서 무리지어 영화를 기다리는 중년의 아줌마들을 보았다.
얼마나 잘 살면 저런 여유를 흉내라고 내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지금의 계산으로서는 매우 매우 요원할 일일 뿐이다.

가진 자들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바지 내리기를 강요당했던 나훈아가 '꿈을 잃어버렸다'며 호텔문을 박차고 나가는데
상황도 심정도 틀리겠지만 왜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는지 나같은 평범한 30대 가장들은 조금은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다.

희망을 허하라.
여유를 허하라.
풍족하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하라.
아빠가 열심히 일하면 아내와 아이들은 조금은 행복하게, 남이 보기에 너무 비루하지 않은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하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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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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