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 10점
조신영 외 지음/위즈덤하우스


두자 짜리 제목, 교감을 나누는 사람 이미지, 그리고 스토리 텔링...
불과 얼마 전 베스트셀러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형식을 두루 갖춘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코웃음을 쳤었다.
게다가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도 아니지 않은가.
(배려를 썼던) 박현찬이라는 탁월한 스토리텔러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러한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울었노라는 두 여직원의 고백이 있기 전엔 그저 또 한권의 베스트셀러에 불과한 책이 이 책이었다.
스토리 텔러에 대한 관심, 그리고 너무나도 진지한 두 사람의 서평을 귀로 듣고서 이 책을 (빌려) 읽었던 그 날, 차마 책장을 덮지 못하고 집을 코앞에 둔 동네 벤치에 앉아 한참을 생각에 잠기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작가의 진정을 중시한다.
아무리 탁월한 가상의 이야기, 혹은 예화라 해도 삶의 진정성이 듬뿍 담긴 서툰 실화가 더욱 가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왔다. (물론 이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단편영화처럼 잘 짜인 플롯의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과연 그러한가'하는 의문에 빠진다. 가상의 이야기도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흔들 수 있구나 하는 유독 나에게만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닳고 닳은 서른다섯이다.
어떤 예화는 각각 다른 책에서 대여섯 번이나 만났을 만큼 책도 읽었다.
하지만 정확한 설계도에 따라 지어진 집처럼, 네비게이션을 따라 움직이는 자동차처럼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눈물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렸다.
얼마든지 내게 일어났던 일, 내게 일어날 수 도 있는 일, 어쩌면 나의 또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공감대 앞에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그야말로 단순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경청'만이 이 세상의 다른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메시지. 더 효율적이고 더 성공적인 삶을 위한 여느 다른 자기계발서 같은 부담을 이 책은 주지 않는다.
대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아버지 혹은 어머니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올 한올 실타래처럼 엮어가다가 마지막 순간 신파극처럼 눈물샘을 마구 터뜨려 놓는다.
그러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바로 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며칠 전 '당신과 얘기하다 보면 마치 필름이 뚝뚝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 하고 지나가듯 아내가 내뱉던 말이 생각난다. 첫째 아이는 종종 두 번, 세 번 같은 이야기를 묻다가 짜증을 내곤 한다. 그렇다. 나는 그 때 아내와 아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문제, 회사 문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들도 이 같은 '소통의 부재'에서 온 산물들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책을 읽고도 곧 시들해질 걸 알면서 다시 악착같이 이 같은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나에게 말을 걸어줄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살아있음'의 가장 큰 증거라는 것.
경청은 그 수많은 방법 중 '하나'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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