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보이

책읽기 2008. 4. 24. 22:37
리버 보이 - 6점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다산책방


사실 이 책을 처음부터 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급하게 부산으로 출장 갈 일이 생기면서 기차역 개찰구를 통과하기 직전 몇 안되는 책들 가운데서 기억속에 있고 얇은 책(노트북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우니까)으로 고른 책이 이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광고란 것이 이렇게 사람들의 뇌리속에 각인시키는 마력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되기도 한다.


아무튼...

이 책은 이른바 ‘성장소설’이다.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와 이제 막 삶이란 것의 의미를 고민하게 되는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

충분히 익숙하다 못해 상투적인 이 이야기의 무엇이 해리포터를 제치고 카네기 메달 상을 받게 만들었을까.

그래도 소설 초반의 매끄럽고 따뜻하고 유려한 문체 때문에 이야기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소설, 처음부터 끝을 예상케하는 평범한 구성이 자꾸만 걸렸다.

임종을 얼마 앞두지 않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그 여행지가 할아버지의 고향인데 주인공 소녀는 강에서 수영을 하다 검은색 머리를 하고 검은색 바지를 입은 한 소년을 만난다. 이쯤되면 이 아이가 곧 이 세상을 떠나게 될 할아버지의 분신이라는 것쯤은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얘기가 이렇게 진행된다면 극적인 반전이나 스토리 자체의 매력을 기대하긴 힘들다. 역시나 소설이 중반부에 이르자 지루함이 일어 책을 덮었다. 아주 재미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3시간짜리 기차여행을 잊게 해 줄 정도로 다이나믹한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이 필요해지는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출장 온 부산의 벡스코 안에선 더 깊은 지루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광안대교를 지나 다다른 해운대는 수십개의 타워팰리스로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동양최대의 백화점이 지어지고 있는 중이고 넓은 도로와 높은 빌딩, 그리고 그 회색빛을 틈틈히 매운 야자수와 이름 모를 푸른 나무들. 다시 꺼내들었을 때 오늘로 이 책을 다 을 수 있게 되리란 걸 직감했다.


나는 쉽게 이야기의 상투성을 말하지만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또한 없다. 인생을 어떻게 책 한권으로 배우겠는가 하겠지만 살아놓고도 깨닫기 어려운 것이 또한 삶의 의미 아니던가. 일견 지루한 이 이야기를 조금만 참을성 있게 따라가다 보면 작은 감동을 만나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소녀는 할아버지의 분신인 리버보이와 대화를 시작하고 또 둘만의 경험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경험의 끝에서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숙명의 슬픔과 두려움을 비켜가게 하는 매력이 소설안에 있다. 그리고 한가지 지혜를 깨닫는다. 우리 모두의 삶이 언젠가 다다르게 되는 넓고 평온한 바다와 같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결국 주인공 가족이 할아버지와 함께 한 여행은 그들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그러나 소녀에게는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만약 이 책의 독자가 나이가 많다면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쓰였을 테고, 좀 어리다면 소녀의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갔을테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그 여행은 결국 한 곳에서 끝나는 것을.


잠 안 오는 여름날 밤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덜 지루하게 이 소녀의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니 이 책을 일고 싶다면 먼저 긴 호흡으로 책 한권을 읽을 수 있는 시간부터 먼저 만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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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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