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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2008. 7. 8. 10:24


어제 처제 문제로 아내와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다.
언제나 느끼지만 부부관계는 타이밍이다. 책망과 인내, 배려와 솔직함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교차해야 한다. 그러나 그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순전히 오감의 영역이다. 화를 내다가도 어느 선까지만 뱉고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때가 아니면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관계라면 본능적으로, 혹은 학습된 효과로 그 선을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그때 멈춰서거나 분위기를 반전시키거나 다른 주제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어렵게 꼬아 버렸다. 아내가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아버렸다. 이미 때는 늦었다. 화해를 위해서는 내가 놓친 그 1분의 몇 십, 몇 백배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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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화가 나면 동굴로 들어가고 여자들은 수다를 통해 푼다지만 사람이 어디 그리 단순한가. 나의 아내 역시 자기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그 문은 그 쪽에서 먼저 열어주기 전까지는 쉽사리 열 수가 없다. 안에서 잠긴 문이고 바깥에는 문고리가 없다. 최선은 방법은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오감을 열고 상대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는 것이지만 이미 닫혀버렸다면 그 잠긴 문틈 새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전자가 '예방'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치료'의 영역이랄까?

사람 사이의 가장 큰 장애물은 어쩌면 익숙함, 혹은 무관심이다. 싸울 수 있다면 그건 아직 희망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고트먼 박사는 부부의 대화가 담긴 비디오만 보고도 이혼 여부와 시기까지 거의 정확하게 맞춘다고 한다. 여기서 핵심은 대화하는 내용보다 두 사람의 태도이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시종 일관 빈정거리며 상대방을 무시하는 말을 내뱉는 것, 그것이 두 사람 관계의 가장 큰 위기라고 박사는 말한다. 그 빈정거림은 어쩌면 무관심을 넘어선 자포자기의 단계여서가 아닐까? 법적인 이혼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심리적으로는 오래 전에 갈라선 그런 부부들이라면 이혼을 예측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내는 자신의 유일한 핏줄이랄 수 있는 처제의 어려움에 대한 나의 태도에 화를 낸 것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내가 처제를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하고 있으며 한 가족으로 여긴다는 진심을 전달하는 것인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왔는지 물어보고 자신이 없어졌다. 부부관계란 단순한 일차방정식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변수와 상수로 등장하는 고차원의 방정식이다.

답은 있지만 공식은 없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큰 어려움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살아가는 이유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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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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