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들고 컴백하던 날, 소녀시대는 정규 2집 앨범 'Oh!'를 출시했고 선주문만 15만장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전의 앨범들을 넘어서는 대단한 출발이다. 바야흐로 YG와 JYP, 그리고 SM의 아이돌 삼국지가 펼쳐지는 혼돈?의 시대에 다시 한번 '소시'의 존재감을 확인한 런칭이 아닌가 싶다.

'Oh!'의 티저, 음원, 뮤직 비디오, 앨범이 순차적으로 공개되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산했는지 어렵지 않게 예측해볼 수 있다. 이미 5년에서 10년 가까이 '준비된' 아이들이 아이돌이 된 셈이니 이 정도의 프로세스는 그들에게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다. 삼십대 후반의 필자 조차도 그들이 9명이며 태연, 티파니, 윤아, 유리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 중의 몇은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까지도 꿰고 있다는 사실이. 별스럽게 챙겨볼 정도의 팬이랄 것도 없고 인터넷 신문의 헤드라인 정도만 읽을 뿐인 평범한 직장인에게도 자신들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린 그들의 마케팅이, 그리고 브랜딩이.

한 마디로 얘기해서 '소시'는 판타지다. 10대들에게는 되고 싶은 우상이요, 20대들에게는 잡을 수 없는 꿈이며, 30대들에게는 가질 수 없는 (그러나 숨기고 싶은) 욕망이다. 그렇게 각각의 마음 속에 가려져 있던, 숨어 있던 욕망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시대의 아이콘이 아이돌이고, 그래서 그들의 노래가 , 춤이 지금과 같은 위력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은 이제 읽지 않는다'라고 말했지만, 현대인들을 읽지 않을 뿐더러 단순히 '듣지 않는다'. 뮤직 비디오 없는 아이돌의 음악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아이돌의 음악은 단순한 청각적 자극에 머무르지 않고 시각적인 충격과 온, 오프라인을 망라하는 체험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돌의 팬들은 옛날처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을 흉내내고 찾아다니고 때로는 그들을 능가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감으로' 듣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강력하고 중독성 있어서 보고 듣는 그 순간만큼은 오로지 그들의 음악과 춤에 매몰되어버릴 정도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여백이 없고 휘발성도 강하다.

'디지털 기억상실증'이라는 말이 있다. 디지털 기기처럼 우리의 기억을 대신해주는 기기와 미디어들이 늘어나면서 정작 우리의 기억력은 퇴화해버려서 이전 같으면 2,30여개는 외웠을 전화번호를 지금은 단축번호 정도로만 외우고 있다. 어쩌면 아이돌의 음악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시각과 청각의 비주얼와 비트로 끄집어내어버려서 정작 우리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아이돌의 음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한계를 말한다면 그건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것이리라. 모든 것을,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것은 과연 우리에게 득일까? 독일까?


잠시 비틀즈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 비틀즈가 해체되고 존 레논이 비명에 간 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언제나 최고의 팝송으로 꼽히는 곡은 언제나 그들의 곡 'yesterday'다.  'yesterday'는 전설이다. 음악이 아니라 역사이고 가수가 아니라 영웅들이다. 앞으로 100년의 시간이 흐른데도 그 사실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노래에는 수 많은 스토리와 역사가 담겨 있고, 그 곡을 듣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을 통해 또 다시 확대 재생산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스터데이를 들었던 어느 날의 추억, 그들이 남긴 이야기, 가사의 의미, 기타의 선율, 팝송의 역사, 멤버들의 개인사, 라디오의 사연들, LP와 CD를 넘어 음원까지 이르는 어마어마한 판매량... 그저 전설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백만 번을 들어도 여전한, 새로운 감동을 주는 그들의 음악은 각각의 사람들의 감정과 형언할 수 없는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때 유행하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상표'가 아닌 오래도록 기억되는 '브랜드'들처럼.

사람은 영생을 꿈꾸고 브랜드는 불명을 꿈꾼다. 사람과 브랜드가 닮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브랜드의 욕망이 사람의 그것처럼 무제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욕망을 다룬다 해도  만약 비틀즈가 전설이 되고 소시가 트렌드에 머물 수 밖에 없다면 비틀즈는 그 욕망에 사람들이 자신의 추억을 얹어놓을 빈틈을 만들어준 것이고 소시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비틀즈는 오래도록 우리들의 가슴에 남았고 소시의 음악은 바람처럼 '트렌드'란 이름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휘발되어버리는 것이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찰나의 음악도 그 존재의미가 충분히 있는 법이다. 그러나 정말 오래도록 사랑받는 노래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게 하고, 내일을 살아갈 새 힘을 얻게 하고,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촘촘히 엮인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곡이 아닐까? 바로 그 때문에 'gee'나 'oh'보다 'yesterday'란 노래가 더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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