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일하는 회사는 ‘브랜드 전문지’를 만드는 회사다. 격월로 브랜드에 관한 매거북(잡지가 아닌 단행본, 더 정확하게는 중간 형태의)을 발행하며 그 명성을 바탕으로 ‘컨설팅’을 한다. 이 책의 나이는 6살, 내가 입사한 지는 5년 차에 접어든다. 하지만 사장님은 이미 이 전문지의 탄생 전에 약 7년 간 컨설팅의 경험을 쌓은 분이다. 이름도 없는 지방 기업에서 런칭한 브랜드를 수천 억 짜리 브랜드로 키웠을 만큼 능력 있으신 분이다.

문제는 나다. 언젠가 각계 전문가들이 모인 스터디 모임에서 ‘브랜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횡설수설했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가 ‘브랜드가 무엇인가요?’라고 물어올 때면 진땀이 난다. 하지만 더 겁나는 질문은 따로 있다. 바로 ‘그렇게 브랜드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당신은 과연 일상 생활 속에서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브랜드를 소비하고 있는가’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단 하나의 대형 마트만 있다. 시장도 없고 경쟁 마트도 없고 이렇다할 가게들도 없다. 그러니까 내가 번 돈의 삼분지 일 정도는 고스란히 마트에 갖다 바치는 셈이다. 그래서 대개는 이 마트에서 잘 알려진 상표를 찾아 가격 대비 성능이나 효능이 확인된 제품들을 구매할 뿐이다. 어쩌다 1+1이나 특별 할인 상품을 고르면 로또를 맞은 기분이 드는걸 어쩔 수 없다.

흠... 그것은 분명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앞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브랜드 전문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브랜드가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대신할 수 있으며, 좋은 브랜드를 발굴하고 이들을 도움으로써 브랜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회사이다. 그렇다면 나는 생각하고 고민하고 말하고 쓴 대로 살고 있지 못한 셈이다. 과연 나에게 브랜드란 무엇인가? 좋은 브랜드의 기준은 무엇인가? 좋은 브랜드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

얼마 전 네이버에 윤광준 씨의 글이 올라왔다. 생활 속 명품을 다룬 ‘윤광준의 생활명품’이란 책의 일부를 옮겨 싣고 있었다. 가격에 매이지 않은 브랜드에 대한 안목,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글솜씨에 매료되었던 분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올라온 덧글들이 보여주는 반응이 장난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환호가 아니었다. 욕설에 가까운 비아냥거림이 즐비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저자를 물건을 물신화하며 사치와 허영에 빠진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난감했다. 나를 감동시켰던 글들이, 좋은 브랜드에 대한 안목을 가르쳐주었던 글들이 길거리의 빈 콜라병처럼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더 당혹스러운 것은 그 덧글들이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다는 거였다.

“명품을 쓴다고 해서 쓰는 사람의 품격이 함께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싯가 85만원 짜리 파버 카스텔에 관해 쓴 이 글에 달린 덧글의 일부다. 덧글을 단 이는 1,000원짜리 연필로도 얼마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며 값싼 제품을 쓰는 사람이라 해서 품격이나 안목이 없는 사람으로 매도하지 말라는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윤광준씨가 쓴 글 역시 나름의 의도와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 간과하고 있었다. 그는 상품을 단순히 그것이 가진 원래의 효용과 용도로만 이해하지 않는 사람이다. 물건을 통해 그것을 만든 사람과 교감하기를 원했고 그 과정을 글로 남겼을 뿐이다. 그에게는 수 천만원짜리 오디오이든 1,000원짜리 막걸리이든 그것이 가진 가치와 의미가 충분하다면 모두 브랜드가 될 수 있다. 그는 심지어 물건이 인간 정신이 물건이라는 형태로 바뀐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 그에게 파버 카스텔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연필이 아니라 창조의 도구이며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을 체험하는 과정인 것이다.

오해없기를...
적어도 나는, 브랜드 전문지에서 4년 넘게 일하고 있다고는 하나 하나의 물건으로 교감까지 나눌만큼의 내공은 쌓지 못했다. 물론 애플과 스타벅스와 같은 예외는 있다(이들이 단순한 스마트폰, 혹은 커피숍 이상의 그 무엇임을 이미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 두 가지만 넘어서면 아뜩해진다. 과연 나는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일상용품들을 단순한 소모품 이상의 브랜드로 인식하고 소비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남긴 덧글들에도 할 말은 있다. 300원짜리 모나미로도 충분하다고 목소리 높이는 덧글의 주인공이 2,30대의 직장 여성이라면 과연 가격 대비 성능만으로 가방을 고르고 있을까? 그가 만일 고등학생이라면 노스 페이스가 아닌 국산 오리털 파카만을 입는 친구일까? 모를 일이다. 과연 그들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실용과 합리성에 기반한 소비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만약 덧글을 단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면 적어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는 이들이니 나이를 막론하고  존경받아 마땅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끌린다. 브랜드를 단순히 사치와 허영, 물신화의 결과로만 매도하기에는 그것이 가진 매력이 너무 선명하다. 실제로 그것은 핸드폰 시장을 커피 시장을 송두리채 바꿔놓지 않았는가. 그 많던 다방들이 사라지고 스타벅스는 커피숍이라는 새로운 문화 생활의 진앙지가 되었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수천 만대가 팔리던 핸드폰들이 피처폰으로 전락해버렸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바로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낸 암호의 해독을 위해 6년에 걸쳐 26권의 책을 만들었고 적어도 브랜드에 관한 최초의 전문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브랜드에 대해 다양한  정의를 내렸다. 그러나 브랜드가 그렇게 실재하는 것이라면 더이상 형이상학적인 수사의 뒤에 숨어 그것에 대한 정의를 회피해선 안된다. 적어도 내가 직접 경험해보고 체험해보고 오감으로 그것의 실재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이 주는 가치를 모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아들을 수 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그것이 내가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가장 큰 명분이니까). 그래서 브랜드를 특정 마니아나 학자 혹은 전문가의 영역에서 나같이 막눈을 가진 보통 아저씨의 영역으로 옮겨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직접 그 과정을 경험해보고 글로 옮겨보기로 했다.


3.

문제는 대상이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즐비한 1회성 소비재부터 누구나 인정하는 명품까지 모두 경험해보고 비교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제품들이 ‘브랜드는 이것이다’라고 증명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줄 수 있을까? 또 하나의 문제는 돈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우리가 브랜드라 부르는 많은 제품들이 성능 대비 가격대가 비싼 것이 현실이니까. 그렇다면 누구나 인정하는 브랜드이면서 손쉽게 경험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한 제품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때 문득 연필이 떠올랐다. 파버 카스텔에 윤광준씨가 소개한 85만원 짜리 그라폰 모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100년의 전통을 가진 카스텔 9000의 가격은 단돈 1,000원이다.

게다가 나는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연필 끝의 촉감, 키보드의 키감, 만년필의 사각거림을 따져 쓸만큼 보통 사람보다 쓰는 경험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소설이나 시를 옮겨 쓰고 틈만 나면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악다구니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당장 교보문고의 핫트랙스를 찾아 다양한 종류의 연필을 구입했다. 한 번도 연필을 브랜드로 구매해본 경험이 없는터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양한 사전 정보를 얻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가이드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연필들의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는가가 더 중요했다.

과연 브랜드라 불리우는 연필은 어떤 면에서 다를까? 우리가 굳이 그것을 구분해가면서 써야할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격 대비 성능으로만 따질 수 없는, 그래서 많게는 몇 배의 가격 차이를 만들어내는 브랜드의 핵심적인 가치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다음의 이야기는 그 차이를 다양한 상품을 통해 발견해가는 1년 간의 여정을 담은 기록이다.

Posted by 박요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