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로버트 라이시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그 스스로가 워커홀릭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그 일을 사랑한 모양이다. 그렇게 일했으니 인정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장관직을 내려놓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이런 스토리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니나 책의 서두에 밝히는 그 이유를 읽어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가 여느 날처럼 출근을 서두르던 어느 날 아침, 아들이 그를 붙잡고 자신의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마음씨 착한, 그러나 바쁜 아빠는 솔직하게 아마도 내일 아침이 되어서야 널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아이를 달랜다. 하지만 아들은 반드시 오늘이어야 한다고 아빠를 조른다. 그 이유를 묻자 아들이 이렇게 답한다. '아빠가 오늘 나와 함께 있었다'라는 사실을 눈으로 보아야만, 그러니까 밤에 자신과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 실제로 아빠가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라고 말한 것이다. 저자는 이 말에 충격을 받고 그 날로 사표를 쓴다.


어쩌면 사적일 수도 있는 저자의 경험담을 맨 앞에 쓰는 이유는 그가 이 책에 쓰고 있는 '신경제' 시대의 변화가 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 생각되어서다. 매끄러운 번역 탓인지, 아니면 저자 특유의 스토리 텔링이 진정성 있어서 그런 것인지 이 책은 내용의 무게게 비해 의외로 잘 읽힌다. 특히 미국의 과거사로부터 현재, 미래를 통찰해서 설명해주는 그의 안목은 마치 이륙 후 땅 아래를 내려다보던 아찔하고 놀랍던 첫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눈 앞의 현실을 붙잡기 위해, 발등에 떨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일반적인 책들과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 그것이 혹자에게는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또한 브랜드의 기원 혹은 태생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말한다. 자급자족의 경제에서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를 거쳐 양과 질의 끝없는 혁신을 요구하는 '신경제'시대에 왜 브랜드가 중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2000년 대 초에 쓰여진 책이지만 워낙 거시적으로 바라본 탓인지 십 수년이 지난 책인지 금방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였다. 브랜드의 기원에 대한 통찰이 중요한 이유는 조금 더 긴 안목으로 브랜드의 미래를 읽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안겨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뭔가'를 기대한 이에게는 다소 맥 풀리는 '미국식 긍정'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맺는다. 따지고 보면 어떤 답을 제시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라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반추를 통한 '오늘의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저자의 깊은 성찰 과정을 보여준 것이니 딱히 불만이라고 말할 것은 없다. 더구나 미국의 과거와 오늘은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대입하기엔 더 없이 좋은 모델이 아니던가. 급행 열차가 아닌 완행 열차를 타고 가는 여행의 느긋한 즐거움을 떠올린다면, 게다가 입에 착착 감기는 훌륭한 번역의 묘미를 떠올려 봤을 때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 이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서 읽어야겠다.

가능하면 같은 출판사, 혹은 번역가가 옮긴 책으로.


p.s. 이 남자의 키가 150이 채 안된다는 사실을 독서 중에 우연히 알았다. 그가 더 당당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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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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