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오감으로 소통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그럴싸하면서도 식상한, 상투적인 문장을 판에 박은 듯 옮긴 모양새지만 이건 정말 맞는 말이다. 어릴 적 먹었던 음식 냄새만 맡고도 그 시절의 일들을 고스란히 떠올릴 때가 많다. 굳이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리지 않아도 말이다. 내 경우는 어떨까? 군대 있을때 좋아하던 여자로부터 받았던 향수 뿌린 편지? (아내는 내 블로글 거의 보지 않는 걸로 알고 있지만... 꽤 불안한걸... 하지만 아내는 이미 내 일기를 통해 숨기고 싶은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비오는 날마다 들려오던 (영화가 아닌) '카사블랑카'란 팝송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예민하면서도 매우 둔감한 기묘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로써는 특별한 감흥을 갖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특히다른 모든 것은 포기해도 음악적 취향만은 같기를 간절히 바라던 아내에게 절망감을 안겨준 내가 아닌가. 하지만 어제부터 계속해서 듣고 있는 윈터플레이의 '집시 여인'(확인해보니 '집시걸'이었다 T.T)은 가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행복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때맞춰 읽고 있는 '마이 코리안 델리'의 경쾌하고 익살스런 문장들이 가속도를 더하고 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묘한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왜 쓰게 되었는지를 블로그 포스트의 제목을 보고 환기하게 되었지만... 이 주제대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냥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다. 무겁게 내리쓰는 만년필의 촉감에 의지한 다이어리의 글쓰기를 벗어난... 그러한 마음의 발동에 기여한 것이 윈터플레이의 '집시여인(확인하니 집시걸이다. 흐흑... 습관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이요 벤 라이더 하우의 애정어린 한국인 씹기 '마이 코리안 델리'라는 것이다.

8시 53분, 이제는 정말로 일을 준비할 때다.
오늘 만나는 모든 이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기쁨과 행복이 충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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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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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창사 3주년 기념으로, 그러지 않았으면 절대 볼 일이 없었을 영화를 보았다. '레터스 투 줄리엣'. 두 개의 영화 중 한 시간 빨리 끝난다는 이유로 선택한 영화인데 (감독에겐 매우 미안한 말이지만) 결과적으로 영화가 던진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포도 농장과 광장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의 풍경은 아무리 영화라지만 실사보다는 이미지에 너무 가까워 결과적으로 내 생각을 끄적일 엽서나 노트 표지같은 느낌을 주었고, 여주인공이 등장한 몇 신은 내가 '영화를 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환기시켜주곤 했다.

전반적인 스토리 전개는 뻔하고 식상하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란게 어차피 그렇지 않은가. 그 식상함을 '무엇'으로 포장해내는가가 가장 중요한 차별화 포인트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여주인공의 연기(할머니를 포함해서)와 풍경에 많이 기댄 영화다. 하지만 도입부의 단 한마디 대사에 나는 영화에 금새 빠져들 수 있었는데 주인공의 직업이 '뉴요커'지의 자료 조사원이다. '뉴요커'... 영어공부를 등한시한 것을 후회할 때가 종종 오는데 그 중 하나가 '뉴요커'지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서점에서 새삼 깨달을 때다. '뉴요커'가 어떤 잡지인가. 바로 말콤 글래드웰이 기고하는 최고 수준의 교양지? 아닌가. 영화 주인공은 그런 작가를 꿈꾸는 자료 조사원이다. 그런 그녀가 허니문(을 빙자한 밀월 여행)을 떠나면서 줄리엣에게 편지를 쓰면 답장을 해주는 이탈리아의 한 마을을 방문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울산에도 등대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엽서를 쓰는 어떤 곳이 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번 추석 때 갔다왔는데... 이건 좀 심한걸...)

혹 당신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어떤 일이나 직업이 있는가? 나의 경우는 있다. 이른바 '심층보도' 기사를 쓰며 자유롭게 여행하며 살아가는 전업작가다. 따귀 맞기 딱 좋은 고백이지만 사실이다. 아주 흥미로운 단서 하나를 발견하고, 때로는 자료조사원이 되어 사설탐정처럼 진실의 꼬리를 따라가다 가벼운?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때로는 호텔방이나 노천 카페에 앉아 방금 본 것들을 행여 놓칠새라 몰스킨을 끄적이거나 노트북에 코를 박고 있는... 나는 정말로 그런 일을 하는 나를 꿈꾸었었다. 그런데 말이다... 한국에는 뉴요커같은 잡지가 거의 없고, 설혹 있다 하더라도 심층 기사 취재를 위해 이탈리아를 여행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을 일단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글을 써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빌어먹을' 일이다. 그대가 김훈이나 이외수 정도의 독특한 필력을 가지거나 물려받은 유산이 자신의 한평생 정도는 책임질 수 있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사랑을 쫓는다'란 영화적 설정이 '영화처럼' 보이는 것처럼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비슷한 의미에서 판타지적이다.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느끼는 가장 큰 절박함은 그것이 '사실'임을 깨닫고 절망하는 순간이다. 적어도 20대 때는 그런 꿈이라도 꾸며 '방황'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방황조차도 서른이 넘어가면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오겠지만...

나는 그 사람이 쓰는 글이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는지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은 어느 순간 크게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그 글을 얼마나 가슴 벅차하며 썼는지에 더 끌릴 때가 있다. 그것이 꼭 감상적인 에세이나 소설일 필요는 없다. 나는 논문 한 편에서도 그 발견과 발명의 기쁨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순간의 떨림'을 간직한 글을 만날 때마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종종 가슴 뿌듯해한다. 그건 모래 바람 속에서 가끔씩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신기루같다. 하지만 그 신기루가 신기루일까봐 가슴앓이를 겪는다. 다다르고 싶은 갈망이 클수록 현실의 벽은 높고, 그 벽을 넘기 위해서는 종종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선택의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속 사랑은 영화처럼 이루어졌다. 영화속 주인공이 쓴 글은 뉴요커지에 당당히 실리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그러나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는 오히려 더욱 모호해졌다. 내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정말로 이제는 오리무중이 되어버렸다. 알량한 글쓰기 재주를 넘어 한 순간마이라도 읽는 이의 가슴을 떨리게 할 수 있는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원고마감이 오늘이고 코 앞인데, 나는 이런 글이나 쓰고 있고...
10월 중순을 넘긴 가을은 창을 넘어 더운 공기를 뿜어내고 있다.
갑자기 노트북 타자 위에서 멜랑콜리한 냄새가 나서 버스터미널 코앞의 패스트 푸드처럼 약간 역겨워진다.
커피나 한잔 마셔야겠다.
젠장...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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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은 인류를 영원히 바꾼다(Some journeys change mankind forever)."

이 책은 200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간 지 40년을 기념하는 루이비통 광고로 끝을 맺는다. 달에 갔다온 3명의 우주비행사, 그리고 강렬한 카피 한 줄. 그리고 어쩌면 이 세 명 중의 한 명은 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참동안 광고를 들여다본다.

'진심어린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볼 수 없었던 것들, 또 보이지 않는 것들, 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이 생긴다.' p36

평범한 달, 그러나 갔다온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확신을 갖고 인생을 거는 사람을 만난다면 위의 사진처럼 '이미 그 곳에 다녀왔거나 미리 본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가 우주 비행사이든, 예술가이든, CEO이든 간에 말이다. 모짜르트에 관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그가 작곡을 했다기보다는 머릿 속의 악보를 그대로 베끼고 있었던게 아닌가하는. 최근에 만났던 럭셔리 브랜드의 CEO도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했다. '회사와 브랜드의 미래가 보인다'고 말이다. 이외수씨가 쓴 '글쓰기의 공중부양'도 바로 이러한 오감 훈련법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 '본다'는 것과 창조력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시인들은 보이지 않는 것,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상상력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황인원 선생과 대화를 하며 찾아낸 한 가지 답은 '의인화'다. 시인들은 꽃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으로 대상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낸다.' p42

대상에 대한 애정이 그것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이미 예술가들의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예술'을 통해 느끼는 가장 큰 유익이라면 작가의 손끝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우리가 모르던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능력이 점차 우리들의 라이프스타일에 깊숙이 스며들게 되었고 이러한 소통에 성공한 기업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이러한 사물과의 교감을 통한 창조력은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 잠깐 저자의 상상력 속으로 들어가보자.

"제가 담배를 만든다면, 담배 개비마다 이름을 붙일 겁니다. 어떤 것은 '추억memory', 또 어떤 것은 '열정passion', 또 어떤 것은 '고독loneness'등으로 말이죠. 그렇게 되면 저는 담배를 피울 때마다 선택을 하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엔 추억을, 또 다음에는 열정을, 또 어떤 때는 고독을.... 그럼으로써 담배는 단순한 기호품에서 벗어나, 하나의 감성상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p37

마침 어제 아이폰4와 갤럭시S가 동시에 런칭행사를 가졌다. 모든 언론이 이 빅매치를 대서특필하고 트위터를 비롯한 온라인상의 메시지들은 이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의 목소리로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삼성이 분명 애플에 고전하고 있다. '이순신폰'이라는 애국심을 들고 나올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고 보면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저자는 특정 기업이 아닌 한국기업 전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전처럼 선진기업들이 따라 할 아이템이 많을 때는 그것을 배워 활용하기만 해도 어느 정도 유지가 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 기업들이 업그레이드의 귀재이다 보니, 모든 분야를 다 따라잡아 이제는 더 이상 따라할 대상이 없다. 절대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가진 무엇인가를 창조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p66

이 말에 공감한다면 이 책의 탄생 배경이 조금 더 명확해진다. 이제 창조력과 상상력은 더이상 예술가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며 뜬 구름 잡는 소리도 아니다. 이제 기업과 제품을 넘어 한 인간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다음의 글은 경영자들이 느끼는 절박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고 베끼는 경영이 절대 불가능한 현실에서 경영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오리진'이 되는 것이다. 남들의 모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가치를 지닌 무엇인가를 창조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이것이 많은 이들이 말하는 '창조경영'의 본질이다. p67

이 책의 뒷부분은 바로 이러한 창조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기업들에 대한 살아 있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한 번은 전에도 들었을 법한 사례들이 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점은 아마도 그 해석의 틀과 관점이 여타의 책들과 차별화되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러한 '창조력'에 대해 저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른바 '창조에 대한 정의'말이다.

모든 창조의 바탕에는 바로 이러한 생각들이 있다. 그 생각들은 남다른 것이며, 신념이 녹아 있는 것이며, 강렬한 의지가 담긴 '가치 있는 생각'이다. 나는 이처럼 특별한 생각은 특별하게 불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한 그것의 이름은 바로 '소울Soul'이다. p178

이 책의 부제인 '운명을 바꾸는 창조의 기술'이라는 표현은 사실에 책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진부하다. 그러나 '더 나은 것이 아닌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라'는 카피는 생생하게 와닿는다. 그 이유가 뭐냐고?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마케팅'의 현장을 비록 동영상이지만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이상 진부할 수 없지만 그 대상은 바로 애플과 아이폰, 그리고 스티브 잡스이다. 그가 남긴 다음의 말은 이 책 한 권이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단 한 마디인지도 모른다.

"미칠 정도로 멋진 제품을 창조하라, 아니면 우주를 감동시켜라!" - 스티브 잡스


* 이 책이 소개하는 살아있는 창조 경영의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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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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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성공했다고 말해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듯 하다.
남이 뭐라든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은 말로 행동으로 리더십으로, 다양한 형태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곤 한다.
물론 그 와중에 '미친 놈''편집증 환자''지 잘난 맛에'라는 욕도 듣는다.

한여름에 긴 팔을 입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팔에 난 흉터가 부끄러워 숨기는 사람, 긴 팔 옷이 좋아 더위와 주위 시선을 무릎쓰고 그 옷을 입는 사람.
같은 상황이라도 그 옷 속에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자신이 있는 사람과 자신이 없는 사람.
자아가 없는 사람과 자아가 충만한 사람.
존재감이 있는 사람과 존재감이 넘치는 사람.
당신은 과연 어느 쪽인가?

자신감과 고집은 전혀 다르다.
자신감은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고 철학이 있지만 고집은 오로지 상대방에 반하기 위해서이다.
그 상대가 사라지면 그 행동의 의미도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 바로 고집이 아닐까?
그러나 고집은 순간에도 만들어지지만 자신감은 절대로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만든 원칙과 이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훈련과 그에 따르는 고통을 이겨낸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 자신감이다.
그래서 아무런 노력 없이 얻은 우쭐함과 과시와는 또 다른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나는 누구인가?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 사람을 대하는 방법,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에는 어떤 원칙과 가치가 있는가?
다른 어느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가?
훌륭한 브랜드는 아이덴티티가 분명하듯 값진 인생은 분명한 신념이 캐릭터와 퍼스낼러티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를 위해 치룬 댓가는 무엇이고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인가?

여러 사람들 속에서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오로지 혼자 있는 시간, 고독 속에서만 이 질문에 진실한 대답을 할 수가 있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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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들고 컴백하던 날, 소녀시대는 정규 2집 앨범 'Oh!'를 출시했고 선주문만 15만장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전의 앨범들을 넘어서는 대단한 출발이다. 바야흐로 YG와 JYP, 그리고 SM의 아이돌 삼국지가 펼쳐지는 혼돈?의 시대에 다시 한번 '소시'의 존재감을 확인한 런칭이 아닌가 싶다.

'Oh!'의 티저, 음원, 뮤직 비디오, 앨범이 순차적으로 공개되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산했는지 어렵지 않게 예측해볼 수 있다. 이미 5년에서 10년 가까이 '준비된' 아이들이 아이돌이 된 셈이니 이 정도의 프로세스는 그들에게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다. 삼십대 후반의 필자 조차도 그들이 9명이며 태연, 티파니, 윤아, 유리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 중의 몇은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까지도 꿰고 있다는 사실이. 별스럽게 챙겨볼 정도의 팬이랄 것도 없고 인터넷 신문의 헤드라인 정도만 읽을 뿐인 평범한 직장인에게도 자신들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린 그들의 마케팅이, 그리고 브랜딩이.

한 마디로 얘기해서 '소시'는 판타지다. 10대들에게는 되고 싶은 우상이요, 20대들에게는 잡을 수 없는 꿈이며, 30대들에게는 가질 수 없는 (그러나 숨기고 싶은) 욕망이다. 그렇게 각각의 마음 속에 가려져 있던, 숨어 있던 욕망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시대의 아이콘이 아이돌이고, 그래서 그들의 노래가 , 춤이 지금과 같은 위력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은 이제 읽지 않는다'라고 말했지만, 현대인들을 읽지 않을 뿐더러 단순히 '듣지 않는다'. 뮤직 비디오 없는 아이돌의 음악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아이돌의 음악은 단순한 청각적 자극에 머무르지 않고 시각적인 충격과 온, 오프라인을 망라하는 체험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돌의 팬들은 옛날처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을 흉내내고 찾아다니고 때로는 그들을 능가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감으로' 듣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강력하고 중독성 있어서 보고 듣는 그 순간만큼은 오로지 그들의 음악과 춤에 매몰되어버릴 정도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여백이 없고 휘발성도 강하다.

'디지털 기억상실증'이라는 말이 있다. 디지털 기기처럼 우리의 기억을 대신해주는 기기와 미디어들이 늘어나면서 정작 우리의 기억력은 퇴화해버려서 이전 같으면 2,30여개는 외웠을 전화번호를 지금은 단축번호 정도로만 외우고 있다. 어쩌면 아이돌의 음악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시각과 청각의 비주얼와 비트로 끄집어내어버려서 정작 우리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아이돌의 음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한계를 말한다면 그건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것이리라. 모든 것을,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것은 과연 우리에게 득일까? 독일까?


잠시 비틀즈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 비틀즈가 해체되고 존 레논이 비명에 간 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언제나 최고의 팝송으로 꼽히는 곡은 언제나 그들의 곡 'yesterday'다.  'yesterday'는 전설이다. 음악이 아니라 역사이고 가수가 아니라 영웅들이다. 앞으로 100년의 시간이 흐른데도 그 사실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노래에는 수 많은 스토리와 역사가 담겨 있고, 그 곡을 듣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을 통해 또 다시 확대 재생산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스터데이를 들었던 어느 날의 추억, 그들이 남긴 이야기, 가사의 의미, 기타의 선율, 팝송의 역사, 멤버들의 개인사, 라디오의 사연들, LP와 CD를 넘어 음원까지 이르는 어마어마한 판매량... 그저 전설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백만 번을 들어도 여전한, 새로운 감동을 주는 그들의 음악은 각각의 사람들의 감정과 형언할 수 없는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때 유행하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상표'가 아닌 오래도록 기억되는 '브랜드'들처럼.

사람은 영생을 꿈꾸고 브랜드는 불명을 꿈꾼다. 사람과 브랜드가 닮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브랜드의 욕망이 사람의 그것처럼 무제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욕망을 다룬다 해도  만약 비틀즈가 전설이 되고 소시가 트렌드에 머물 수 밖에 없다면 비틀즈는 그 욕망에 사람들이 자신의 추억을 얹어놓을 빈틈을 만들어준 것이고 소시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비틀즈는 오래도록 우리들의 가슴에 남았고 소시의 음악은 바람처럼 '트렌드'란 이름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휘발되어버리는 것이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찰나의 음악도 그 존재의미가 충분히 있는 법이다. 그러나 정말 오래도록 사랑받는 노래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게 하고, 내일을 살아갈 새 힘을 얻게 하고,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촘촘히 엮인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곡이 아닐까? 바로 그 때문에 'gee'나 'oh'보다 'yesterday'란 노래가 더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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