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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20 일상의 황홀 #21 친구의 결혼 3

지난 토요일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다지 친한 친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친한 친구의 친구란 점 때문에 안 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놈, 청첩장은커녕 결혼한다는 전화 한 통 없더니 결혼 당일까지 연락이 없다.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다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본인도 직접 물어봐서 알게 됐다고.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서너 통 전화를 넣고 문자까지 넣었었다. 그런데도 소식은 감감. 아내가 초대도 받지 않은 결혼식엘 왜 가냐고 물어오는데 할 말이 없다. 그냥 다른 친구들을 보러 가는 거라 둘러대고 집을 나섰다.

이 친구는 우리나라 전 국민들이 바라 마지 않는 서울대를 나온 친구다. 증권회사를 다니다 환멸을 느끼고 지금은 강남에서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데 연봉이 1억에 가깝다고 한다. 신부는 같은 교회에서 만난 6살 연하의 서울 아가씨. 결혼식은 무사히 잘 끝났고 간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이 즐거운 한 때 이후의 무시무시한 후기는 내일 올리기로 하겠다)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이 친구는 부산에서 같이 어울릴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친구들끼리 모인 곳에 온다고 하고서 약속을 어긴 경우도 많았고, 몇 년을 같이 어울려 다녔지만 따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본 경험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항상 '서울대' 출신이라는 후광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 이러한 단점이 크게 문제시 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 잊은 게 있다. 이 친구를 서울대로 가게 한 '수능시험’에서는 결코 인간관계에 대한 지식이나 사람을 대하는 방법 혹은 지혜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평가하고 싶어도 평가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 할 수록 이러한 '관계 맺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식이자 능력인지 새삼스레 깨닫게 될 때가 많다.

'일'하는 능력과 '인간관계' 맺는 능력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하는 일들이다. 기획, 마케팅, 전략, 경영에 이르기까지 이런 단순한 진리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아무리 관련 지식이 뛰어나도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동의를 끌어내지 못하면 일은 이뤄지지 않거나 어렵게 진행된다. 그래서 '경영이란 무엇인가'의 조안 마그레타는 '경영'이 오히려 인문학 쪽에 가까운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그 말에 많은 부분 공감하고 찬성하는 편이다.

물론 이 작은 일로 내 친구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런 실수를 무능력으로 따지자면야 나는 거의 인간 이하의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한번의 '수능시험'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서울대학교’라는 간판이 얼마나 지엽적인 능력평가의 결과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수능시험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주 다양한 재능들의 아주 일부분에 대해서만 평가가 가능한 시험이다. 그러니 어떤 대학출신인가, 혹은 대학을 나왔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최근에 같이 일할 분을 회사에서 뽑으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는 중이다. 결코 어떤 대학 출신이냐라는 한 줄 이력에 마음이 혹하지 않도록 할 것, 나와 마음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의 여부에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 둘 것,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사귀는 일에 능하며 그 자체를 일로 생각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인가를 유심히 볼 것.

이 친구는 앞으로 자주 연락하면서 교육을 좀 시켜야 할 듯 하다.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복되고 소중한 일인지, 그리고 가슴 벅찬 일인지를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 아니 보여주고 함께 누리고 싶은 것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결혼생화를 하는 동안 그런 필요성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아무튼 친구야, 결혼 축하한다!
앞으로 네 앞길에 오늘 같이 좋은 일들만 계속되기를 간절히 기도할께~



* 우리 동네 어떤 집 벽에 붙은 담쟁이 덩쿨... 세상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이 덩쿨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법이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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