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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0 김길수의 난 9

김길수의 난

완벽한 하루 2008. 4. 10. 10:13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한동안 보지 않던 '인간극장'을 보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에서 목수로, 그것도 모자라 아예 집을 팔아버리고 온 가족이 길 위의 삶으로 나서버린 아주 '희한하고도 독특한' 삶을 살아가는 김길수라는 사람을 만났다.

사실 이 사람의 결단은 징글징글한 밥벌이에 환멸을 느끼는 직장인들에게는 마치 오아시스, 혹은 신기루처럼 여겨지는 삶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아시스로 보이든 신기루로 보이든 매력적이기는 매 한가지여서 내가 아주 별스런 사람이 아니라면 다들 나처럼 그 이야기에 촉각을 세웠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리라.

단순하게 보자면 TV화면을 통해 걸려 보여지는 낭만처럼 삶이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흥은 다음날이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살 수 없는 몇 가지 절박한 이유'들에 파묻혀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사람의 삶에 흥미를 느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아내는 이 사람처럼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남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그러한 용기와 자신감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극단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3편을 TV에서 보고 1,2편을 다운받아 보았는데 정말 예사롭지 않은 분이다. 나이는 나와 동갑인데... 하는 낙담이 들만큼.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느리지만 충만한' 삶의 방식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자세가 얼마나 오랫동안 축적되었는지 말 한마디, 동작 하나 하나에서 배여 나왔다. 언제나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포스(내공)랄까?

또 한가지는 그러한 삶을 낭만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현실의 바닥으로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그의 이번 여행, 혹은 삶은 매우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된 듯 했다. 오죽하면 재봉기술까지 미리 배워뒀을까? 철없는 한 두 사람이 이런 여행을 흉내낼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곧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은 그냥 휴가나 여행이 아닌 탓이다. 그것도 예측했다는 듯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을 팔아버리고 가재도구는 모두 이웃, 친척들에게 나눠줘버렸다고 한다.

이 분의  삶을 보면서 몇 가지를 배운다.

첫째는 우리의 삶이 굳이 정형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듯 학교와 직장과 결혼을 선택하고, 그 사이 사이 감내할 어려움들을 삶의 당연한 '문제'로 인식한 채 풀기는 커녕 온 몸으로 떼워가며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주 조금의 용기만 있다면 세상의 편견을 뒤로 한 채 자신에게 맞는 삶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누가 뭐라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자존감이리라.

둘째는 준비하는 삶이다. 낭만은 현실 앞에서 매우 나약하다. 하늘 위를 나는 용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배부른 돼지의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포기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용도 먹고 살아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삶이 어떤 희생과 부족을 감내해야 하는지 분명히 안다면 그는 자신의 삶을 좀 더 철저히 준비할 것이다. 김길수씨가 재봉틀을 사고 재봉기술을 배웠듯이 말이다.

나이가 한살 두살 먹을 수록 사람의 삶이 참 다양할 수 있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입학과 졸업, 취업과 결혼을 마치 삶의 공식처럼 착실히 따라온 이 후에 다시 한번 광야를 만난다. 내가 김길수 씨처럼 집을 팔고 여행을 떠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그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 하나로도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 한번 꼭 만나 얘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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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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