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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01 사랑후에 오는 것들 1
  2. 2006.07.01 [summary] 사랑후에 오는 것들 1


사랑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소담출판사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가
부시와 고이즈미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밥맛이 저만큼 날아가며 일순 욕짓거리가 차마 입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하고 우물거려지는 불쾌한 경험을 했다.
감정이란 이렇듯 도발적이다.

일본에 대한 감정은 이렇듯 조건반사적인 경험을 자주 만들어낸다.
'무조건 싫은'것이다.
그래서 자리를 두고 자근자근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고
몇십년을 두고 화해하고 이해하지 않고서는 풀어내기 힘든 것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의 노력은 다소 무모하고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다.

억지스럽다.
윤동주를 연구한다는 주인공의 설정도 그렇고,
역사적인 현실때문에 사랑을 접었다는 주인공 아버지와 일본 여자의 얘기도 그렇고,
성공한 작가가 되어 돌아와 사랑을 되찾는 일본 남자의 얘기에도 도무지 공감이 가질 않는다.

사랑이야기라면
사랑이야기로 끝났어야 했다.
그 얄팍한 사랑얘기에 몇십년,
아니 몇백년 묵은 감정의 찌꺼기를 어설프게 올려놓고 나니
아주 아주 개운치 않은
그런 마음으로 책을 덮게 되는 것이다.

그들과 화해해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을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주고 받는 소설 한권으로 될 일은 애초부터 아니었다.

이책을 읽은 후인데도
고이즈미가 신문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싸대기를 한대 올려주고 싶다.
언제까지 이래서는 안되지 하는 이성이
한권 책으로 읽은 감동을 가볍게 짓밟는 형국이다.

그러니 더더욱 어설퍼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누군가 십자가에 박히는 희생이 없이는
그런 희생속에서 모든 잘못을 내어놓는 진정한 화해와 용서없이는
그렇게 쉽게는
안되는 것이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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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소담출판사

* 숨을 헐떡이며 이층으로 올라가니까 민준이 언제나처럼 작은 문고판 책을 얼굴 가까에 들고 읽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시간을 보니 약속한 시간에서 이십오 분이나 지나 있었다.

내 자신이 싫어지는 때가 이런 때다. 늘 하던 실수를 늘 하는 내 자신을 바라볼 때, 그리고 심지어 그것에 뻔뻔해지지도 못할 때, 하지만 다음번에 그 순간이 온대도 내가 결국은 그 실수를 또 하고야 말 거라는 걸 알때.

머리에 끈을 동여매고 결심을 하거나 구호를 한 달쯤 외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거나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늘 데리고 살아야 하는 나의 결점들을 그렇게 보게 될 때. 그리고 내가 고작 거기까지의 인간이라는 걸 그래서 또 깨닫게 될 때. 85p.

* 지쿠로안에서 차를 마시며 아버지는 시즈코와 조용조용히 말을 나누었다. 별말도 아니었다. 말은 자주 끊겼고 가끔 시즈꼬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버지가 아빠가 아니라 그냥 한 남자로 보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아버지는 시즈코와 같이 있을 때 더 남자다웠고, 엄마와 함께였을 때보다 더 평화로워 보였다. 그리고 이건 정말로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냥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 같았다. 그 무렵 정체서으이 혼란 없이 내가 두 사람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때 내가 하나의 사람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었을까. 184.

* "홍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은 홍이의 잘못이 아니야. 그렇지만 누군가가 홍이를 한국인이라고 해서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이겠지."

거꾸로 이야기해서 준고가 일본인인 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일본인이라고 해서 네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 잘못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반대하신 건가요?"
시즈코는 조용히 웃었다.
"우리 아버지를 용서하실 수 있었어요?"
시즈코는 조용히 웃었다.
"아직도 아버지를 사랑하시나요? 세상에 그런 사랑이 있는 건가요?"
얼굴이 잠깐 어두워지더니 시즈코는 그냥 조용히 웃었다. 184,5p.

* 그후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지만 평소에 나는 그런 생각을 그리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같으면, 웬 역사 의식? 웬 애국심? 하고 웃어 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나의 존재가 가장 예민했던 바로 그 순간,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그렇게 어이없는 종말에 마지막 종지부를 찍어 주고 있었다.
참으로 비겁하고 훌륭한 명분이었다. 206p.

* "나는 갈래. 고향으로 가고 싶어. 여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거기가 좋아서. 큰 소리로 싸움도 잘하고, 큰 소리로 화해도 잘하고, 큰 소리로 웃기고 잘하고, 큰 소리로 울기도 잘하는 모두가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는 내 나라고 가고 싶어. 물어보지 않아도 김치도 더 주고, 노란 무도 더 주고 배고프다고 하면 밥도 한 그릇 더 주는 내 나라로 가고 싶어. 거기는 모두가 우리니까. 그리고 나는 별로 조용조용한 사람이 아니거든." 208p.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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