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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책읽기 2006. 11. 3. 14:04
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생각의나무

나는 '칼의 노래'를 1권밖에 읽지 못했다. 재미없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최고의 영웅이 현실속으로 살아서 돌아왔을때, 그리고 그 삶이 질퍽이는 땀과 눈물로 점철되어 있음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꼈기 때문에 차마 2권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 '자전거 여행'을 잡았을 때는 나름대로 이 작품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그리고 기대를 했었다. 살과 피가 튀는 치열한 전쟁터가 아니라 일상의 삶속에서 과연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그것을 또 어떻게 표현해낼까 싶었다. 그리고 그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지금 내 꿈이 참으로 야무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분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곳곳마다 숨겨진, 혹은 낯선 이야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 나온다. 그 사람은 도산서원의 퇴계선생님이기도 하고, 남해바닷가의 이순신장군이기도 하다. 의상과 원효대사의 숨은 러브 스토리에 가슴 짠해지기도 하고 마지막 남은 가마에서 도기를 굽는 낯선 장인의 이야기에 자뭇 서글퍼지기도 한다. 한장의 사진이 상관없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인물과 풍경의 이미지로 그치겠지만, 그 사진속의 주인공들에게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 법이다. 작가 김훈은 그래서 단순한 여행기를 뛰어 넘는, 에세이라고 부르기에는 정말 미안한 이 한권의 책을 땅속에서 캐내고 물속에서 길어올렸다.

가벼운 책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이 사람의 책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나가는 한그루 나무에서도 의미를 찾고 한번 만나고 지나갈 촌부들에게서도 삶의 진지함을 끌어내려 하니,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의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을만큼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빠져드는 것은 그의 글이 가진 치열함만큼이나 공감의 울림이 큰 탓이기 때문이리라.

어느 책에선가 우리나라의 소설 주인공들이 왜 죄다 출판사 편집자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책은 젊은 소설가들이 취재없이 자기 주변의 경험만 가지고 쉽게 책을 쓴다고 그런 푸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김훈의 책은 이 한권의 책에서 수십개의 소설과 전기와 시집을 끌어낼 수 있을만큼 체험도 감동도 깊고 넓다.

한국문학에 내린 한줄기 축복이라는 평이 전혀 버겁게 느껴지지 않는 이 분이 모쪼록 더 많은 족적을 앞으로도 남길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래본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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