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이용규, 규장

*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세요. 주님은 '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우리의 안테나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소리를 잡기에는 너무 약하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거에요. 안테나를 세우는 방법을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주님,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5,6p

*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16p.

*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뜻이 아니다. 그렇게 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둘 다 누리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양쪽에 걸치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십자가가 아닌 세상을 택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18p.

* 불교나 뉴에이지 사상도 우리에게 비우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은 비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비우라고 하시는 목적은 이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으로 것으로 채우기 위한 전 단계로 비우는 것이다. 21p.

* 우리 시대에 행복이 주인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도 한다. 이때 행복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ㅏ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취급된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해지려는 열망과 행복해질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23p.

* 동연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배려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연이의 성장을 보고 이렇게 감동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나의 성장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으실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성장하는 모습이 하나님의 감동이 되기를 소망한다. 24p.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선ㅁ루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내려놓기 전에는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없다. 영적으로 어린아이인 우리는 내려놓으면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움켜쥐려 하고, 결국 그렇게 잡고 있는 한 그것은 진정한 우리 것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가 움켜쥔 것이 우리를 옥죄게 된다. 27p.

* 당시 나는 학문의 길과 유학의 길에서 지도교수님의 입김이 결정적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왠지 부수적이고 간접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현실과 상황을 더 믿고 있었던 그 기간 동안 나는 늘 마음 한편에 불안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33p.

*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순종을 바라실 때 미래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다음에 선택하게 하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5p.

* 수요일이면 집 근처의 한인교회에서 찬양예배를 드렸는데, 찬양을 하며 목 놓아 울곤 했다. 돌아보건대 이 기간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숨어있는 성취욕, 세상을 향한 야심을 만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하나님 것과 내 것이 뒤섞여 있었는데, 그것들이 고난을 통해 정제되어 갔다. 그리고 내 능력이 한계에 대한 절망을 딛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이 자라갔다. 38p.

* 단, 우리는 이방인지만 복의 통로로 사용되기 위해 그 땅에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어 그 땅에서 복을 끼치는 삶을 사는 것이다. 43p.

*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것을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발 하나를 걸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코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마지못해 빼앗기기는 할지언정 자기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게 된다. 50p.

* 광야에서의 고난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 자신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더 쉬워진다. 어차피 내가 삶을 이끌어가는 것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56p.

* '나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가 그 사람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교수의 평가, 동료나 주위 사람의 시선, 상사의 반응, 이성 친구의 표정에 신경쓴다. 과연 우리는 그들의 경가보다 하나님의 반응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가? 누구의 평가에 관심을 쏟고 두려워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을 어디에 어떻게 쏟을지가 결정된다. 57p.

* "혹시 응답이 없을 때 그저 움직이지 않고 데드라인을 넘기기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다음에는 그렇게까지 기다려보세요. 그것이 신뢰이니다." 62p.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초원의 강이 가는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우리의 주변은 풍성해진다.

...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자에게 준비해두신 하나님의 축복은 그 길을 선택하기 전에는 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에 희생제물로 준비해두신 양은 아브라함이 순종하기로 결단한 이후에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를 내려놓는 순종이 결단을 하기 전까지는 철저히 가려져 있다. 70p.

* "하나님은 절대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지요." 76p

* 우리가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표만 붙잡고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면 우리의 삶은 두려움과 절망에 구속되고 만다. 반면에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 실패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평안함과 자유함 가운데 거할 수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라는 말씀이 그것을 잘 설명해준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실패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된다. 78p.

* 아무리 의로운 쪽에 서서 하는 판단이라도, 판단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상처가 생긴다. 그리고 마음이 단단해진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상처가 생길 때, 죄를 짓는 것은 상처 받는 쪽이라는 사실이다. 상처 준 사람은 대부분 상대방의 마음에 걸림 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넘어간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마음에 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악한 영은 대부분 분노나 미움으로 상처를 확대시킨다. 판단은 분노나 미움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148p.

* "네 모습에서 향유 옥합을 본다."
바로 그 다음 말씀이 나를 놀라움 가운데로 몰아가며 내 마음을 깊숙이 찔렀다.
"그런데 그 옥합이 예수의 발 앞에까지는 드려졌지만, 여전히 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려 하는구나."
그 말씀에서 깨어지지 않은 내 자아를 보게 되었다. 예수의 발 앞까지는 갔지만 정작 깨어져야 할 때 깨어지지 않으려는 나의 자존심을 본 것이다. 존중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때문에 다라는 사람의 말에 상처를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서 깊은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나는 애통해하며 하나님 앞에 다짐했다.
"하나님, 제 안에서 여전히 깨어지지 않은 부분들을 봅니다. 저의 옥합을 깨기를 원합니다." 168p.

*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여 질투하고 죽이려고 한 이유도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들로부터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삶이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볼 수 있다. 172p.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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