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아존중감 (491) | 2011.08.22 |
---|---|
십자군 탄크레디 (452) | 2011.08.22 |
마이 코리안 델리 (794) | 2011.08.08 |
오리진이 되라, 강신장 (769) | 2010.06.23 |
미친 척하고 성경대로 살아봐? (773) | 2008.09.04 |
자아존중감 (491) | 2011.08.22 |
---|---|
십자군 탄크레디 (452) | 2011.08.22 |
마이 코리안 델리 (794) | 2011.08.08 |
오리진이 되라, 강신장 (769) | 2010.06.23 |
미친 척하고 성경대로 살아봐? (773) | 2008.09.04 |
며칠 전 '시제'때문에 시골에 내려갔다고 올라오는 길에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있는 '영풍문고'에 들렀습니다. 장거리 이동을 할 때면 꼭 책을 가져가야 안심이 되는 '부커홀릭'이라서 책 파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예전처럼 쉽게 잘 안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찾다찾다 터미널 끝까지 갔는데 영풍문고가 보이는 겁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리고 그곳에서 즐거운 방황을 하던 중에 베스트셀러 5위에 올라 있는 '내려놓음'을 발견했습니다. 참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사실 '긍정의 힘'도 목사님이 쓴 종교서적이라 할 수 있지만 베스트셀러에 그토록 오래 올라 있어도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그 내용 자체가 일반인도 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이어서 크게 종교색 있는 책처럼 여겨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내려놓음'은 전혀 다른, 어쩌면 정반대쪽에 서 있는 책입니다. '긍정의 힘'이 줄기차게 '성공'한 인생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면 '내려놓음'은 그 '성공'을 내려놓는 이야기를 줄기차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람들은 목이 마릅니다. 넘쳐나는 자기계발과 재테크 책들을 보십시오. '인생수업'은 그 내용보다는 '이미지'만으로도 사람을 유혹합니다. 우리에겐 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마치 목마른 사람들이 바닷물을 마시지만 더 큰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빈자리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려놓음'은 게임의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모두가 채우는 이야기를 할 때 '버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열광한 책은 아니었지만 정 반대의 길에서 '진리'를 발견한 사람들이 입소문을 낳고 또 낳아 20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결국 '내려놓음'의 길로 인도했군요.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 가진 것을 '내어놓는' 그런 단순한 메시지를 담은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법정의 '무소유'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책이 됩니다. 저자도 이러한 곡해 아닌 곡해를 가장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어쩌면 '성공'을 쫓는 사람들이 그 반대의 길에서 만족을 찾으려는 오해를 가장 경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팔복'의 최춘선 할아버지가 남긴 '사명은 각자각자요'라는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하나님은 획일화된 방식으로 절대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내려놓음'이 진리가 된다면 다윗과 솔로몬의 부유한 삶은 결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유한가 아닌가, 내려놓을 것인가 올려놓을 것인가로 우리를 부르시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소리를 가장 올바르게 따라간 자를 기뻐하셨습니다.
진리를 아는 우리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내려놓을 것은 '우리의 욕심'이고 올려드릴 것은 '하나님의 뜻하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하심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려놓는' 사람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군요.
예기치 않게 얘기가 길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의 뜻에 목마른 사람이 있고, 책이 있고, 그 책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 흐뭇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삶으로 녹여내는 그런 분들, 그런 분들을 이 곳에서 더 많이 만났으면 정말 좋겠군요^^
(혹 읽으셨다면)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1) | 2006.12.22 |
---|---|
2006 네이버 파워유저 '책 리뷰'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289) | 2006.12.21 |
[일상의 황홀 #27] 세 가지 동화 (12) | 2006.12.06 |
[일상의 황홀 #26] 중고 냉장고를 찾습니다~ (4) | 2006.12.04 |
[일상의 황홀 #25] 싫은 사람, 내키지 않는 일, 짜증나는 하루 (1) | 2006.12.01 |
공기 청정기 (2) | 2006.10.19 |
---|---|
아베가 이승엽에게 보낸 한국어 메시지 (6) | 2006.10.18 |
사랑은 관심이다 (15) | 2006.10.17 |
샘물교회 새 예배당 (5) | 2006.10.16 |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나들이 (7) | 2006.10.16 |
*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이 내일 오전에 회사에서 강연을 하신다고 한다. 질문을 적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몇자 적어보았다.
1.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란 세상에 자랑할 수 있는 나의 것들(학벌, 명예, 재산)을 무조건 버리는 것이어야 할까요? 혹 하버드대의 교수로써 더 깊은 학문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나요?
- 관련구절: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것을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발 하나를 걸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코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마지못해 빼앗기기는 할지언정 자기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게 된다. 50p.
2. 요즘 사람들에게 '행복'이 우상과도 같습니다. 크리스천들도 남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책처럼 '깨끗한 부자'가 되거나 남들보다 행복해지는 것이 나쁜 것일까요? 행복해지려는 열망이나 권리를 버리는 것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일까요?
- 관련구절: 우리 시대에 행복이 주인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도 한다. 이때 행복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취급된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해지려는 열망과 행복해질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23p.
- 관련구절: 단, 우리는 이방인지만 복의 통로로 사용되기 위해 그 땅에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어 그 땅에서 복을 끼치는 삶을 사는 것이다. 43p.
3. 세상과 하나님을 선교사님의 책처럼 이원화시키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꼭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야만 하는지 궁금합니다.
- 관련구절: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뜻이 아니다. 그렇게 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둘 다 누리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양쪽에 걸치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십자가가 아닌 세상을 택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18p.
4. 기도하는 방법을 좀 더 자세히 알려주세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기도에 남다른 비결같은 것은 없을까요? 시간이라든지 방법이라든지 말입니다^^
- 관련구절 :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세요. 주님은 '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우리의 안테나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소리를 잡기에는 너무 약하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거에요. 안테나를 세우는 방법을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주님,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5,6p
- 관련구절: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순종을 바라실 때 미래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다음에 선택하게 하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5p.
- 관련구절: "혹시 응답이 없을 때 그저 움직이지 않고 데드라인을 넘기기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다음에는 그렇게까지 기다려보세요. 그것이 신뢰입니다." 62p.
5. 선교사님이 말씀하신 배려, 판단하지 않는 마음, 질투하지 않음 말고도 현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또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 관련구절: 동연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배려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연이의 성장을 보고 이렇게 감동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나의 성장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으실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성장하는 모습이 하나님의 감동이 되기를 소망한다. 24p.
- 관련구절: 아무리 의론 쪽에 서서 하는 판단이라도, 판단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상처가 생긴다. 그리고 마음이 단단해진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상처가 생길 때, 죄를 짓는 것은 상처 받는 쪽이라는 사실이다. 상처 준 사람은 대부분 상대방의 마음에 걸림 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넘어간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마음에 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악한 영은 대부분 분노나 미움으로 상처를 확대시킨다. 판단은 분노나 미움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148p.
- 관련구절: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여 질투하고 죽이려고 한 이유도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들로부터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삶이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볼 수 있다. 172p.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나들이 (7) | 2006.10.16 |
---|---|
야끼도리^^ (5) | 2006.10.16 |
당신에게 관심있어요^^ (469) | 2006.10.14 |
Blessed is the man... (4) | 2006.10.14 |
은영씨 (8) | 2006.10.13 |
내려놓음
이용규, 규장
*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세요. 주님은 '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우리의 안테나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소리를 잡기에는 너무 약하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거에요. 안테나를 세우는 방법을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주님,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5,6p
*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그분으로부터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16p.
*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뜻이 아니다. 그렇게 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둘 다 누리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양쪽에 걸치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십자가가 아닌 세상을 택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18p.
* 불교나 뉴에이지 사상도 우리에게 비우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은 비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비우라고 하시는 목적은 이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으로 것으로 채우기 위한 전 단계로 비우는 것이다. 21p.
* 우리 시대에 행복이 주인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도 한다. 이때 행복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ㅏ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취급된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해지려는 열망과 행복해질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23p.
* 동연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배려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연이의 성장을 보고 이렇게 감동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나의 성장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으실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성장하는 모습이 하나님의 감동이 되기를 소망한다. 24p.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선ㅁ루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내려놓기 전에는 진정한 것을 얻을 수 없다. 영적으로 어린아이인 우리는 내려놓으면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움켜쥐려 하고, 결국 그렇게 잡고 있는 한 그것은 진정한 우리 것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가 움켜쥔 것이 우리를 옥죄게 된다. 27p.
* 당시 나는 학문의 길과 유학의 길에서 지도교수님의 입김이 결정적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왠지 부수적이고 간접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현실과 상황을 더 믿고 있었던 그 기간 동안 나는 늘 마음 한편에 불안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33p.
*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순종을 바라실 때 미래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다음에 선택하게 하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5p.
* 수요일이면 집 근처의 한인교회에서 찬양예배를 드렸는데, 찬양을 하며 목 놓아 울곤 했다. 돌아보건대 이 기간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숨어있는 성취욕, 세상을 향한 야심을 만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하나님 것과 내 것이 뒤섞여 있었는데, 그것들이 고난을 통해 정제되어 갔다. 그리고 내 능력이 한계에 대한 절망을 딛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이 자라갔다. 38p.
* 단, 우리는 이방인지만 복의 통로로 사용되기 위해 그 땅에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어 그 땅에서 복을 끼치는 삶을 사는 것이다. 43p.
*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것을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발 하나를 걸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코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마지못해 빼앗기기는 할지언정 자기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게 된다. 50p.
* 광야에서의 고난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 자신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더 쉬워진다. 어차피 내가 삶을 이끌어가는 것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56p.
* '나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가 그 사람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교수의 평가, 동료나 주위 사람의 시선, 상사의 반응, 이성 친구의 표정에 신경쓴다. 과연 우리는 그들의 경가보다 하나님의 반응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가? 누구의 평가에 관심을 쏟고 두려워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을 어디에 어떻게 쏟을지가 결정된다. 57p.
* "혹시 응답이 없을 때 그저 움직이지 않고 데드라인을 넘기기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다음에는 그렇게까지 기다려보세요. 그것이 신뢰이니다." 62p.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초원의 강이 가는 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우리의 주변은 풍성해진다.
...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자에게 준비해두신 하나님의 축복은 그 길을 선택하기 전에는 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에 희생제물로 준비해두신 양은 아브라함이 순종하기로 결단한 이후에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를 내려놓는 순종이 결단을 하기 전까지는 철저히 가려져 있다. 70p.
* "하나님은 절대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지요." 76p
* 우리가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표만 붙잡고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면 우리의 삶은 두려움과 절망에 구속되고 만다. 반면에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 실패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평안함과 자유함 가운데 거할 수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라는 말씀이 그것을 잘 설명해준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실패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된다. 78p.
* 아무리 의로운 쪽에 서서 하는 판단이라도, 판단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상처가 생긴다. 그리고 마음이 단단해진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상처가 생길 때, 죄를 짓는 것은 상처 받는 쪽이라는 사실이다. 상처 준 사람은 대부분 상대방의 마음에 걸림 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넘어간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마음에 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악한 영은 대부분 분노나 미움으로 상처를 확대시킨다. 판단은 분노나 미움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148p.
* "네 모습에서 향유 옥합을 본다."
바로 그 다음 말씀이 나를 놀라움 가운데로 몰아가며 내 마음을 깊숙이 찔렀다.
"그런데 그 옥합이 예수의 발 앞에까지는 드려졌지만, 여전히 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려 하는구나."
그 말씀에서 깨어지지 않은 내 자아를 보게 되었다. 예수의 발 앞까지는 갔지만 정작 깨어져야 할 때 깨어지지 않으려는 나의 자존심을 본 것이다. 존중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때문에 다라는 사람의 말에 상처를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서 깊은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나는 애통해하며 하나님 앞에 다짐했다.
"하나님, 제 안에서 여전히 깨어지지 않은 부분들을 봅니다. 저의 옥합을 깨기를 원합니다." 168p.
*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여 질투하고 죽이려고 한 이유도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들로부터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인정을 추구하는 삶이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볼 수 있다. 172p.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혁신 (1) | 2006.10.19 |
---|---|
길을 헤매다 만난 나의 북극성 (3) | 2006.10.17 |
2006년 10월 16일 월요일, 오늘의 밑줄긋기 #258 (478) | 2006.10.16 |
2006년 10월 13일 금요일, 오늘의 밑줄긋기 #257 (1) | 2006.10.13 |
익숙한 것과의 결별 (447) | 2006.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