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란 분명히 무의식의 저 깊은 곳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과 같은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관한 그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또렷히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투명한 비료포대에 얹혀진 채로 두 사람의 인부에 의해 실려 가던 조그만 아이에 관한 기억이었다. 그는 그 때 할머니의 등에 업힌 채로였고 화장실의 인분에 의해 그 작은 몸뚱아리가 갈색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던 기억은 정말로 너무나 강렬한 것이어서 30년하고 또 몇 년을 살아오면서도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기억에 관련된 어떤 작은 단서라도 내 귀에 들릴라치면 그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모션으로 그의 기억 속을 훑고 지나갔다. 2살일까 3살일까. 그 때의 그는 그 장면을 인지할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장면이 혹 다른 곳에서 어떤 곳에서 본 그림이나 사진, 영화의 잔상이 아닐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적어도 의식속의 그에겐  그런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직접 보지 않았다면 스스로 창조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장면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그 일이 있었던 장소와 배경도 비교적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만약 그 장면을 실제로 보았다고 가정했을 때, 뭔가 알 수 없는 충격을 받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건 왜 그런것일까? 그 장면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데 왜 충격을 받았고, 또 왜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두 세살짜리 남자 아이가 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본 그 장면은 어떤 감정의 여과과정을 통해 그의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되었을까? 그것은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공포였을까.

그가 조금 더 자라서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그 ‘두려움’은 어떤 장면이나 상황보다는 관계라는 것을 통해 조금씩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학교’라는 곳에 가게 되는 나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때의 기억도 사실 완전치 않은 것이어서 막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낯설음에 대해서는 약간의 유추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가 어린 시절 살았던 그 섬으로 이사간 것은 남아 있는 사진의 기록으로 보아서는 정말이지 아주 어렸을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왜 내가 입학했던 그 시점에 만나는 친구들은 그렇게 낯설기만 한 것일까?
관계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모든 상황과 방식, 습관, 그리고 교감에 관한 이야기를 통칭하는 말이다. 굳이 전문지식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한 줄의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임을 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 관계를 조금 더 쉽게 맺으며 즐길 줄 알고 또 그와 같은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마치 수학공식처럼 난해하고 익숙치 않으며 불편한 것으로 다가온다. 아무튼 그에게 아주 어린 초등학교의 시절은 유쾌하지 못한 몇몇의 기억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일과 관련해 맨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초등학교 1,2학년 쯤 되었을 무렵의 하교길이었다. 누구인지 왜인지 정확히 기억해낼 수 없지만 그는 심한 놀림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를 낯설어했고 경계했다. 그의 고향이 서울이었므로 오랫동안 그 텃세가 도심지에서 이사 온 아이에 대한 시기나 질투,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서울이란 곳을 떠나온 지가 아무리 못해도 5,6년은 되었을 무렵이었다.

작은 섬이었지만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섬이라 동네와 동네를 잇는 산은 높이가 있었고 그래서 마을 간의 이동은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아이들 간에는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그 섬에 막 도착해서 살았던 동네와 학교를 다닐 무렵의 동네는 다른 곳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그는 그 동네에서는 이방인이었고 낯선 존재였으며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는 매일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바지에다 똥을 산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놀림은 아이들이 성적에 눈 뜨고 또 그가 공부에 눈을 뜨게 되는 날 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그 놀림이 아주 끝나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아이들은 무리를 짓게 마련이고 그 무리에는 보이지 않는 우두머리가 생기게 되는 법이다. 사실 이것은 비단 아이들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사람이 존재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이상은 마치 이 땅의 모든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이다. 그 작은 섬, 그리고 또 더 작은 그 마을에도 이 법칙은 아주 분명하고도 확실한 것이어서 친구 길우와 그 형이 그 동네에서는 보이지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그가 살던 마을은 다리 두개를 통해 이어진 개천을 사이에 두고 작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앞산을 조금 가로 질러 올라가면 생기는 평지를 두고 드문 드문 집들이 있는 작은 마을이 또 하나 있었고 바닷가와 맞닿아 있는 높다란 산까지 이어지는 시내를 따라 또 하나의 작은 부락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의 기억으로는 이 모두가 하나의 마을로 불리지 않았나 싶다. 바다와 화산으로 이루어진 분지, 그리고 비탈을 깍아 만든 밭이 마을 사람들의 생계 터전이었는데 그가 아주 어린 시절 이 곳으로 이사 온 아버지는 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옷 장사 일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자잘한 이질감이 그러한 작은 고난의 어떤 원인을 제공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그 마을의 무리에서 약간은 비켜선 주변인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 길우의 형이 어느 날 오후 자기 집 앞 마당으로 그를 불렀다.

그가 그 집 앞 마당 근처의 골목길로 갔을 때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길우, 그리고 길우의 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고 불려간 그에게 권투 장갑을 내밀었다. 이 형제들은 어찌나 호기심으로 충만한지 어디선가 구한 발명에 관한 책을 보고 손수 솜사탕 기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비록 솜사탕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지만 그러한 호기심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서, 전등 타이머를 개발하거나 아무튼 일일이 기억할 수조차 없는 자잘한 발명품들을 곧잘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나 그날의 호기심은 그러한 발명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과연 그가 얼마나 이 무리 속에서 약한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그런 실험의 시간이었다.

그가 권투 장갑을 들고 영문을 몰라 하자 무리 속에서 갸름한 곱쓸머리 하나가 권투 장갑의 줄을 희고 고르게 드러난 이로 묶으며 등장했다. 나름 강인한 인상을 주려는 듯 그 작고 단단한 이빨로 장갑끈을 묶어 매며 치켜 뜬 눈에서는 아주 기분 나쁜 미소가 언뜻 언뜻 비쳤다. 그는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나이도 한 살 어렸고 아주 큰 덩치도 아니었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빠르게 대처하는, 그리고 강자와 약자를 본능적으로 인지하는 그 아이 앞에서 그는 싸우기도 전에 이미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무리를 둘러싼 모든 아이들이 한참 동안 웃어재꼈다. 그는 그 순간만큼은 우주 속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동생에게 맞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장면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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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