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08.08.26 두 얼굴의 야누스, 결혼
  2. 2008.08.26 행복해지려면 결혼을 하라?
  3. 2008.08.06 5일 동안
  4. 2008.08.05 영혼의 호흡
  5. 2008.08.01 UnclePhobia, 아저씨로 산다는 것

두 개의 뉴욕

'결혼'과 관련한 특집을 준비하면서 편집자들은 심각한 내홍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들은 타겟 시장이 주로 '미혼 여성'이란 점을 들어 그들이 공감하는 기사를 싣고자 했다. 기혼자들이 쓴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는 이러이러해야한다'라는 기사에는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정들이었다. 결혼과 삶, 그리고 자신들의 인생을 '정답'이라는 잣대로 저울질하는 시도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작동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기혼자들 입장에서도 미혼 편집자들의 글이 달갑지 않았다. '늬들이 결혼을 알아?'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살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기사 톤에는 약간의 화도 치미는 모양이었다. 한번 살아보라지... 그러면서도 주독자 층을 감안하면 리얼한 결혼생활의 실체를 알려주는 것 역시 현명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생활의 실상을 얘기할라치면 어디선가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와서는 '저도 그런 결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미혼 앞에서 자존심이 상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결혼이라는 것의 실체는 도대체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것일까?

  똑같은 한 마리의 코끼리를 앞에 두고 서로 다른 부위를 붙잡고 늘어지는 꼴이라면 독자들은 두 종류의 글 모두에 대해 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경험'의 중요성을 얘기하자면 왜 그 수 많은 일본 연구서들 중에서 유독 '국화와 칼'이 인정을 받고 있는 점을 설명하기 (불가능하진 않지만)어렵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에 단 한 번도 다녀오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결혼에 대한 '문제제기' 정도로 끝내는 책이라면 결혼준비로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 예비 신랑, 신부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들이 '결혼'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아마도 애를 하나이상은 키워 본, 삶의 쓴 맛을 체험하거나 '이혼'을 심각하게 마음속으로 고려해보는 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는 쪽도 듣는 쪽도 모호하기만 한 시장이다. 이건 마치 '눈으로 본 뉴욕'과 '이야기로 들은 뉴욕'의 차이만큼이나 커서 본 쪽은 들은 판타지를 이해하기 어렵고, 들은 쪽은 눈으로 확인한 리얼리티가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다.

  썀 쌍둥이는 행복하지 않다?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그의 책에서 샴 쌍둥이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꼬집어 이야기한다. 즉 두 사람의 몸이 붙은 상태라면 우리는 결코 행복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그들(이 책에서는 로리와 레바)은 행복하다고 말하며 실제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로리와 레바만이 경험할 수 있는 동반자로서의 사랑, 더 없이 행복한 일치감, 아가페적 사랑 등을 우리는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몹시 기쁘다고 말한다 해도 그들의 행복 경험보다는 한 수 아래일 수도 있다. 같은 논리로 당신이나 나 그리고 로리와 레바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결혼에 대해 어떤 기대감과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기혼자들이 함부로 그들의 꿈에 대해 뭐라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결혼에 대한 환상이 클수록 더 행복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이룰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환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충분히 안정적인 재정적 필요와 함께 수 십년간 다른 문화과 배경속에서 살아온 두 이기심이 만나 깍여 나가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각오가 없는 결혼생활은 그야말로 한 여름밤의 꿈 이야기에 불과하다.

결론은 이렇게 마무리 되어야 할 것 같다. 결혼을 인생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이자 선택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결혼' 자체에 지나치게 큰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행복한 결혼생활도 알고 보면 건강한 자아를 가진 두 개의 성숙한 인격체가 만났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주변사람들과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굳이 '마더 테레사'를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많이 만날 수 있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며, 더 행복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얘기이다.

만일 이 책을 통해 미혼과 기혼이 말하는 결혼의 다양한 모습들을 모두 담으려는 욕심에 누군가 딴지를 건다면, 나는 대답 대신 길버트 교수의 아래 말을 인용할 것이다. 삶의 진정한 기술이란 그 사람이 비로소 삶에 대해 '겸손'해졌을 때 온 몸으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법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나서는 예전에 했던 자신의 말이 빈약한 경험에서 나온 짧은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예전에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판단 역시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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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결혼을 할까?

과학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천생연분을 찾도록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에 결혼한다고 말한다. 즉 인간이란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감정을 '친밀감'이라고 부른다.

의사들은 건강해지려면 결혼하라고 말한다. 혼자서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하는 것보다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고혈압, 당뇨병 같은 성인병과 각종 암을 예방해 주고 마음의 건강에도 더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친밀한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된 부부는 포유류의 뇌가 안정을 찾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강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지며 정서적으로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즉 결혼하면 더 건강해진다고 말한다(단 행복한 결혼생활일 경우에 한해서지만).

좀 더 단적으로 통계가 결혼의 유익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시카고 대학의 국민의견조사센터는 3만 5,0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지난 30년 동안의 인생에 대해서 물었는데, 기혼자의 40퍼센트가 '매우 행복하다'고 대답한 반면 결혼 경험이 없는 사람은 단지 23%만이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단적으로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결혼을 하라'고.

  그러나 정작 결혼한 사람들은 이런 과학적, 통계적 근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결혼했다고 대답한다. 즉, 결혼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결혼했다는 것이다. 결혼이 이토록 골치 아프고 힘들며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희생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결혼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사람들의 일부 의견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행복한 부부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1년에 35만 쌍이 넘는 신혼부부가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지만 대개는 커다란 이유 없이 때가 되었으니 가야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배우자를 고르고 만나고 결혼한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싸우고 헤어지고 심지어는 이혼을 결심하기도 한다(한해 3명이 결혼하면 1명은 이혼한다). 그리고 오스티엄은 그런 분들에게 좀 더 행복한 결혼과 인생에 대해 함께 배워보자고 제안한다. 정말로 결혼을 하면 행복해지는지.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하는지. 다른 선택의 가능성은 없는 것인지 그런 문제들의 답을 함께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결혼을 배운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배우는 것이고, 인간관계를 배운다는 것은 인생 그 자체를 배우는 것과 같다. 거기에서 수학공식과 같은 답을 기대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살아가서는 더더욱 안된다. 당신의 삶은 두 번 되풀이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더욱 당신의 반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결정하는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결혼에 대해 말하는 우리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라. 대부분 아는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미처 몰랐거나 알았어도 실천하지 못한 지식과 지혜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마디의 조언이 당신의 결혼에, 혹은 삶에 조그마한 유익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하려는 얘기는 바로 이러한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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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동안

습작 2008. 8. 6. 10:01

주말을 제외한 5일 동안 17편의 글을 썼다.
내일로 마감이 연장되었고 20편을 맞춰 써야 하는데 머릿 속이 하얗다.

저를 아시는 분들은 마음으로 격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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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호흡

습작 2008. 8. 5. 14:11
아일랜드에서 재복이가 시연이 뒤에서 혼자 중얼거린 대사
"휘유...쟤랑은 영혼의 호흡이 안 맞아..."
가뜩이나 기분 꿀꿀한데, 영감이 메신저로 이승환 노래 "심장병"을 보내준다.
들어보니, 청승과 꿀꿀함이 업뎃되서 땅속에 코라도 파묻고 싶은 기분이 되버렸다.
영감이랑은 영혼의 호흡이 안 맞어...쯧.....

- 와이프 블로그 글 중에서


큰일 났다.
이 글이 2004년 10월에 쓰여진 글이니...
거의 4년을 호흡 없이 살아 왔다.

켁.켁.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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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었다. 작은 수고들은 이런 기쁨을 위해 동반되는 선물의 포장지거나 아름다운 포장 끈이나 리본 같은 것들이다.
- 구본형, 나의 변화 이야기


‘노인과 바다’를 다시 꺼내 읽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언젠가 수학공부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와이프가 과외 하던 ‘수학정석’을 들춰 본 적이 있었고, 너무나 인상적인 블로그 글로 인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하드커버판을 직접 서점에서 산 기억도 있었지만 그 때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오래된, 하지만 그 당시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대상들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하지만 ‘노인과 바다’를 들춰본 건 그런 목적 때문이라기보다 만만하게 얇은 책의 분량과 애매하게 남은 서너 시간의 뜬 시간 때문이었다. 오히려 헤밍웨이가 등장한 커피 광고가 더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이가 서른 중반이 넘어 집어든 ‘노인과 바다’를 읽게 된 건 이 책의 결말만큼이나 큰 여백을 만드는 경험이었다. 분명히 이런 저런 이유로 서너 번을 읽고 영화까지 보았지만 끔찍하다 싶을 정도의 공허함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그 때의 기억에 비해 확실히 지금 이 소설을 받아들이는 나의 의식세계는 달라져 있었다. 소설 속의 노인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노인처럼 사자의 꿈을 꿀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애틋한 소년의 우정이 노인에게는 사진 한 장으로 남았던 부인의 존재보다 더욱 친밀하게 느껴진 것도 그렇거니와, 뼈만 앙상하게 남아 돈 한 푼 되지 않는 전설이 되어버린 그 처절한 삶의 투쟁의 기록이 절절히 와 닿게 된 건 ‘작은’ 깨달음이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숙했다’는 긍정의 의미도 있지만 ‘나이듦’의 숨길 수 없는 증거이기도 했다.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가볍진 않더라도 조금은 더 익숙해진 것이다.

아줌마들의 하소연은 숱하게 들어온 것 같지만 정작 아저씨들의 자발적인 고백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아저씨는 언제나 삶의 조연이다. 자신의 삶과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아줌마들의 이야기에 언제나 묻혀버린다. 문제의 발원지, 해결의 대상, 더 깊은 관심에 대한 끝없는 요구로써 ‘아저씨’들은 해석된다. 여자들의 바람은 웬지 조금 더 낭만적으로 보이고 설득력 있어 보이는데도 아저씨들의 바람은 그저 음습한 본능적 욕구로 더 많이 읽히는 것 같다. 두둔하자는 말이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저씨들은 언제나 초라하다. 벗겨진 머리, 기름진 얼굴, 보기 흉하게 삐져 나온 배, 짝달막한 양복 바지, 하다 못해 일본만 가더라도 기장을 맞춰 입은 아저씨들이 멋지다는 여직원에 고백 속에는 초라한 이 시대의 ‘아저씨’의 이미지가 묻어나온다. 그들이 능력이 있다면 기러기 아빠로 남아 홀로 빈 집을 지키고, 무능할 경우엔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철저히 소외되어 거리로 나앉아 버린다.

언젠가 와이프가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양육의 어려움으로 EBS 프로에 나간 적이 있다. 나는 아내의 어려움을 있는 힘껏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에 아무런 고민 없이 촬영에 동의했고 휴일과 평일의 저녁 시간을 고스란히 투자하여 아내의 촬영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방송되기 두어주 전, 동일한 프로그램을 보고 그냥 얼어버렸다. 그 프로에는 한 없이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이 시종일관 우울한 얼굴로 아내의 눈물에 대한 직접적인 이유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었다. 프로를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출연중인 아내의 고통과 아픔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정작 그 방송내용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해 보였다. 나는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아내가 출연하게 된 내용은 나랑은 무관해 보였지만 그래도 아내의 문제, 가정의 문제는 당연하게도 남편의 존재감과 떼어서 설명할 수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꼭 필요하다는 추가촬영을 단호하게 거절해버렸고 문제 해결을 위한 그 프로그램의 출연히 또 하나의 다른 문제를 낳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생의 황금기를 이미 놓쳐버린, 새로운 꿈의 실현보다는 현실의 끈을 붙잡고 있기에도 버거운 존재가 이 시대의 ‘아저씨’이지 ‘아버지’이다. 회사에서는 탁월한 성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고, 가정에서는 아내와 기대와 아이들의 필요에 쉼없이 반응해야 한다. 그것이 성공적이지 못했을 때의 경우의 수를 너무도 잘 알기에 내키지 않는 헌신을 스스로 강요하지만 그들의 삶은 언제나 여전히 버거워보인다. 남자들의 출근 가방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들의 웃음은 공허한 정신세계의 반증이기도 하다. 유일한 기쁨의 원천인 담배와 술도 그들의 건강과 존경심을 소리없이 조금씩 갉아먹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한다. 좀 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해 주지 못해서 생긴 미안함이 그들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투덜거리며 문을 열어주지만 존재 자체 만으로도 서로 감사할 수 있는 아내의 자리, 대낮의 태양보다 몇 백만배는 환한 웃음으로 하루의 피곤함을 거짓말처럼 씻어 주는 아이들, 삶의 고단함이 완숙미가 되어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줄 수 있을 때 그들은 행복하다. 한번도 만만해보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주저 앉지 않았던 일의 성취가 주는 쾌감도 결코 양보할 수 없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작은 깨달음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은 넓혀 주었다.

그들은 가끔씩 죽음을 마주 대한다. 그들의 동료와 친구의 아버지, 혹은 조금 이른 지인의 죽음을 검은 옷을 입고 종종 맞아야 한다. 영안실 입구의 왁자지껄함이 이제 더는 싫지 않은 이유도 그렇거니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당신을 이해할 있겠노라’고 고백할 때는 눈물도 난다. 이제 나의 존재감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존재감을 위해서 살아야함을 깨닫고, 비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산뜻한 스타일의 흔적을 찾아보지 못할 지라도 당당한 변명 하나는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저씨’로 불리게 된다는 건 돌아가지 못할 삶의 계곡 하나를 건너버린 것이다. 아줌마처럼 소리 내어 울지도, 웃지도, 수다를 떨지도 못하지만 그들도 하나의 동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 주위를 둘러보며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혜를 얻었기에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가 좀 더 젊은 친구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잠언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제 뒤돌아보기 보다는 새로이 앞에 놓여진 전혀 다른 산 하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뒤에서는 아내와 아이들, 친구와 동료들이 바라보고 있으니 두려운 척도 어려운 척도 해서는 안된다. 아저씨가 된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저씨로 살아간다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아줌마 됨의 두려움을 말하는 ‘줌마포비아’가 실존의 문제라면 ‘엉클포비아’는 책임감의 문제다. 한 사람의 남편, 아이들의 아버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또한 기꺼이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의 문제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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