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00년 전쯤의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 내가 맨 선봉에 있다고 생각해본다. 그것도 장군이 아니라 아주 말단의 병사가 되어서 말이다. 어제 밤새 날을 세운 검이 손 끝에서 가볍게 떨린다. 옆에 선 동료병사의 거친 숨소리가 파동처럼 번져 나의 숨소리와 구분되지 않는다. 갑자기 저쪽에서 사기를 돋우는 병사들의 방패 두들기는 소리가 천둥 벼락처럼 들려온다. 오금이 저리는 공포심이 파도처럼 덥친다. 두 다리에 바짝 힘을 주고 두 눈끝에 힘을 모아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 지금 내가 싸워야할 대상은 적이 아니다. 바로 내 속의 공포다. 죽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내 앞의 한명 한명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살아남을 욕심보다 내 속의 공포에 밀리지 않는 것, 그것이 우선이다. 생명은 하늘에 맡길 뿐이다. 잠시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까마귀 한 마리가 두 진영의 가운데를 배회하듯 날고 있다. 행운을 빈다. 나 스스로에게 한번 쓰윽 웃어주었다.


물론 이 얘기는 가상의 이야기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불황의 공포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한 병사의 운명이나, 월급에 삶의 모든 것이 걸려있는 직장인의 그것이나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불황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이나 노숙과 같은 인생포기자의 심정을 헤아릴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 절박함의 원천에는 '불안'이라는 인간 심리의 맨 밑바탕에 존재하는 공포감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감봉이나 퇴직보다 이러한 공포감과 더 많이 싸워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불황'이 사실fact라면 '불안'은 인식이다. 군생활을 전경으로 마친 나는 전역 신고하던 날 가장 치열한 광주의 시위현장에서 수백 수천개의 돌이 총알처럼 날아다니는 현장을 발로 뛴 동기들을 만났다. 비교적 '안전한' 전경생활을 했던 내가 얼마나 힘들었냐고 묻자 피식 웃으며 대답하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그 현장을 즐겼다고 말했다. 어쩌면 극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그들은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다큐채널에서 등반 중 추락사고를 당한 여자등반가의 이야기를 TV로 본 적이 있다. 발이 부러져 속살과 뼈가 드러날 정도의 큰 사고였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발을 끌고 밤새 산을 내려고 구조를 받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사고이고 그 극심한 고통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경외심마저 들던 찰나 나레이션이 흘렀다.
"인간의 몸은 극한 상황이 오면 통증을 전달하는 신호를 차단합니다. 이것 역시 인간의 몸이 지닌 위대한 메커니즘의 일부인 것이죠."

불황은 트렌드에 편승한 연약한 브랜드들을 걷어내고 아주 실용적이거나 생명력 넘치는 가치 지향적인 진짜 브랜드들을 가려낼 것이다. 불황은 연약한 인간들에겐 가혹한 현실이 되겠지만 도전 정신과 의지력으로 뭉친 사람과 기업들에겐 기회의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인간, 그리고 삶의 법칙이기도 하다.
Posted by 박요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