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외국인들, 특히 말뿐인 칭찬을 넘어 때로는 독설을 아끼지 않는(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들을 통해 비로소 우리 모습을 반추할 수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조세린 교수 역시 비슷한 경우다. 한국인도 살아 생전 직접 연주해보기 힘든 가야금 때문에 한국에 왔고 20년 째 가야금을 연주하고 가르치면서 한국에서 살고 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남을 통해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은 더욱 어렵다. 나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을 때 비로소 '진실'을 전해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이랑 비교하는 것 좋아하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열등 콤플렉스’가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거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최근 인터뷰 때문에 10여 명의 인문학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들었던 의문은 '과연 한국,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중국, 일본과 같은 인접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것'이라고 말할 부분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에 적지 않은 열등감을 맛보게 된다. 이러한 열등감은 자연스럽게 강대국에 대한 맹목적인 문화적 사대주의로 연결되기 마련인데 조세린 교수가 가야금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점은 쉽게 발견된다.

“제가 한국에서 가야금 명인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기회가 잘 안 생겼어요. 진짜 만나고 싶은데, ‘안 된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 또래의 피아노 전공자인데, 한국 음악에 관심이 있어 한국 온 사람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하버드에서 왔다’고 하니까 기회가 탁탁 열리는 거예요. 제가 그걸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나도 하버드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솔직히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프로필을 먼저 확인하고 '하버드 출신이 우리 가야금을?'하는 생각과 함께 기사를 읽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났으니까. 그런데 재미있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전문가들이 동경해마지 않는 '하버드'란 이름이 이 사람에게는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한 도구의 하나에 불과했다니. 이러한 당찬 모습은 가야금을 배우는 이유, 과정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내가 도대체 한국에서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어요. 그러다 그냥 ‘좋아할 때까지 하자’고 마음먹었죠. 결국 가야금을 좋아해서 가야금에 빠졌어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좋아할 때까지 하자'
이 말은 아무나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조금만 길이 막혀도 그 길을 피해가기 위한 변명부터 먼저 생각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조세린 교수의 설명이 더 인상깊다.

“쉽게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오래 안 가잖아요. ‘내가 이해를 못 하니까 좋은 줄 모르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더 노력해 보자’ 이런 생각이었죠.


맞는 말이다. 쉽게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래서 그것은 쉽게 '가치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노벨상을 부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분야를 가장 먼저 연구했는가'의 여부라고 한다. 즉 아무리 대단한 발견 혹은 발명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최초'가 아니면 노벨상을 타기 힘들다는 얘기다. 어떤 서양인이 이처럼 애정을 가지고 '가야금'을 사랑하고 연주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가치있는 이유는 그 과정이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읽는 내내 마음을 움직였던 건 보일듯 말듯한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다. 이외수씨는 글쓰기에 관한 책을 통해 대상에 대한 애정이 감동을 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쩌면 가야금에 대한 관심이 한국인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면서 또 다른 조세린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음의 말이 지금까지도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맹목적인 애국심이 아닌, 진심으로 자신의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생각이 아니냐고 누군가 따진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이다.

“내 역할은 한국인들이 한국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나는 한국인들이 한국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인들은 한국을 싫어해요.”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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