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237p.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플랭클>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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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E. 프랭클/ 이시형
청아출판사

*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기 위한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88p.

* "잘 듣게. 오토. 만약 내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네가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전해 주게. 내가 매일 같이 매시간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두번째로 내가 어느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 세번째로 내가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짧은 결혼 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해 주게." 105p.

*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120p.

*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121p.

*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131p.

*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137p.

*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142p.

* 나는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그런 다음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은 물론 이 세상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단 한가지만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그때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말을 되풀이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잇었다. 바로 그날, 바로 그 순간부터 새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느 ㄴ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156p.

* 한편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는 사회과학자들이 48개 대학 7,948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계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예비 보고서는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2년 동안 진행된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된 것이다. 설문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6퍼센트의 학생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대답한 반면 78퍼센트의 학생들을 첫번째 목표가 '자기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169p.

*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특성을 나는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이라고 이름지었다.

이 말은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을 지향하거나 그쪽으로 주의를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성취해야 할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대면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183p.

*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인간이 삼라만상의 진화과정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의 세계를 초월하는 또 다른 차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인간이 겪는 시련의 궁극적인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또 다른 차원의 세계말입니다." 194p.

* 인간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로고테라피는 염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것이다. 이것을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보자. 염세주의자는 매일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얇아지는 것을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반면에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의 뒷장에다 중요한 일과를 적어 놓은 다음 그것을 순서대로 깔끔하게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과 같다. 198,9p.

* "신경질환 환자가 자가 자신에 대해 웃을 줄 알게 되면 그것은 그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상태, 아니 어쩌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203p.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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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E. 프랭클/ 이시형
청아출판사

짧은 책읽기의 경험에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한가지가 있다면
좋은 책이 소개하는 책은 거의가 틀림없다는 것이다.
사실 놀라운 말도 아니다.
'좋은' 책으로 평가받을만한 사람이 읽고 '좋다'라고 느꼈다면
그 책이 '좋은'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쓰다보니 말장난이 되어버렸지만
빅터 프랭클의 이 책은 스티븐 코비를 비롯하여 많은 저자들이 '즐거이' 인용한 바 있는 훌륭한 책이다.
언젠가 한번은 꼭 읽어보리라 다짐은 하면서도 정작 잊어먹거나 찾기 어려워서 미뤄오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서점의 재고를 전화로 확인하고
가서 '찾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내용을 깨달은 건 아니다.
처절하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수용소 생활을 겪고 난 후
사람에게 살아가야할 이유와 목표가 있다면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로 마무리될 수 있는 그의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이 그경험과 지식을 통해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의학의 한 분야로 꽃 피우는 과정...
이 모든 내용이 두껍다고만은 할 수 없는 책 한권으로 엮어져 있다.

다시 한번 물어본다.
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너의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가?
무엇을 할때 가장 큰 삶의 보람을 느끼는가?

그것을 모른다면 어떤 기쁨도, 또한 고통도
무의미하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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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우리 수용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았다.
그날 밤 자유를 향해 간다고 믿었던 우리 친구들을 트럭에 실려 그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막사 안에 갇힌 채로 불에 타 죽었다.
사진으로도 군데 군데 불에 탄 동료들의 시신을 알아볼 수 있었다.
<114,5p.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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