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젊음에게 - 10점
구본형 지음/청림출판

이 책의 작가는 어느 날 첫째 딸로부터 인사를 받는다.
그러려니 하고 자신의 일에 빠져 있던 이 작가는 문득 딸의 출근 첫날임을 깨닫고 격려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약간을 망설이다 이런 문자를 남긴다.
"딸아, 바닥에서 박박 기어 확실하게 배워라. 많이 웃도록 해라. 웃음이 많은 날이 좋은 날이다. 축하한다."

만약 나의 둘째 딸 희원이가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면 나는 무슨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까?
이제 직장 생활 8년차, 박박 바닥을 기었는지 허망하게 허공을 치고 있었는지도 분간이 안 가는 서른 중반의 직장인에겐 다소 버거운 상상일까? 그러나 나의 문자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밥벌이의 지겨움' 하나는 온 몸에 사무치도록 겪어보았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또 다른 차원의 삶에 대한 기대는 끈질기게도 놓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라는 확신도 '네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진짜 인생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없는 아빠가 과연 무슨 말을 딸에게 할 수 있을까?

지난 주말 산책을 하던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고고하지만 배고픈 용이 되고 싶어, 아니면 우리에 갇혀 진흙탕을 밟지만 배만큼은 날마다 부른 돼지가 좋아?"
아내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배부른 돼지 쪽을 택했다. 늘 아내의 이런 분명한 태도와 삶의 자세를 높이 평가는 못해도 부러워하는 나는 아내가 되물었어도 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나를 위한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작가는 한편으로 자신의 일에 감사하고 만족하라 말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라'고 독자를 부추긴다. 결코 어떤 공식이나 답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선문답 나누기를 좋아하는 깊은 산 속의 도인 같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는 바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단한 '밥벌이'와 아웅다웅 다투는 땀 냄새 나는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다. 일과 나, 그리고 관계에 대한 독백, 혹은 대화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으러 가는 주말의 버스 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 핸드폰을 찾아준 버스 정류장의 사무소장님은 혹시 폰이 꺼질까봐 빵빵하게 충전까지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 일의 참된 의미를 찾고, 그 속에서 나를 찾고 그 나가 확장되어지는 관계를 배운다.
다행히 작가의 딸들은 한 사람의 의사로서, 학생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랫동안 책읽기를 끊었다가 다시 책 읽는 보람을 느낀다. 내 안에도 다시 삶에 대한 기대가 차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앞에 놓여진 삶의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박박 기어볼 것이다. 그러나 비굴하게 내 삶을 남에게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어코 내가 좋아하는, 내가 잘하는 일속에서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쁨을 아는 동료들을 찾아 참으로 살아가는 황홀함을 맛보고야 말 것이다.

"희원아, 네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찾아라. 아빠도 힘껏 도우마. 오늘의 어려움이 너를 단단하게 하고 내일의 성공이 너를 꽃피울 수 있도록 쉬지 않고 기도하마. 단지 너라는 이유로 기뻐하마.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마."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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