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화

완벽한 하루 2006. 11. 1. 09:23

전세대출문제로 파란만장한 주말을 보낸 뒤 어제 오후쯤 해서 아내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메신저로 던져왔다.
"나랑 왜 결혼했어?"

혹 예고가 있었다 해도 어려운 질문인데 느닷없이 이 질문을 받고 나니 한동안 생각만 복잡해질 뿐 도무지 키보드를 두드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머뭇거리는건 이유가 궁해서인가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자꾸만 온전한 답은 따로 있을 듯 해서 가벼운 대답으로 넘어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업무시간중이라 그나마 시간을 정리할 짬도 나지 않았다. 당신은 왜 결혼했냐며 어설프게 그 순간을 넘기긴 했지만 오늘 아침까지 내내 그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왜 이 여자랑 결혼했을까?

아내를 만난건 부산에서 교회를 다닐 무렵의 청년부였다.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자칫 얘기가 길어질듯 하니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때 나는 교회에서 주보를 만들거나 청년부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날 고양이를 분양한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철도에서 하반신을 다친 새끼고양이를 어렵게 살려 키우고 있는데 그 고양이를 대신 키워줄 사람을 찾는다는 부탁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피투성이가 된 고양이를 동물병원까지 데려가 살려내고 돌봐줄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평생을 같이 살아도 후회가 없겠다고 말이다.

한두달 전쯤인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어떨찌 모르나 나는 결혼하기 전보다 5배쯤은 더 행복해진 것 같다고, 당신이 변하지 않고 지금의 이 모습대로만 남아달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 말은 정말로 진심이다.

사람과 사람이 한 지붕아래서 마음을 맞춰가며 사는게 그다지 쉽지는 않다. 그리고 우리는 성격도 스타일도 정반대의 그런 부부다. 그러나 그 다름이 이상하게 조화를 이뤄가는 경험을 종종 하곤 한다. 화내는 타이밍이 달라 좀체 크게 부딪히지 않고, 나무를 보는 아내의 지식과 숲을 바라보는 나의 지혜가 어울려 크게 어리석지 않은 결정을 그동안 내려왔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에게 천만금보다 소중한 두 아이를 선물해주셨다.

아내는 잠들기 싫어하는 서원이에게 종종 이런 자작 동화를 들려주곤 했다.
옛날에 하나님이 정원을 산책하다가 예쁜 엄마가 아이를 달라고 조르는 기도를 들었어. 그래서 하늘나라 천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얘기했지. 누가 저 엄마에게 가서 착하고 어여쁜 아들, 딸이 되어주겠니? 그러자 그중에 서원이라는 천사가 한손을 치켜들고 저요 저요 그랬어. 그래서 서원이가 엄마 아빠의 귀한 아들로 태어난거야.

아내와 왜 결혼했느냐고?
하나님이 어느 날 내게 와서 물었지. 누가 저 어여쁜 처녀에게 장가들어서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고 싶냐고. 그때 내가 두손을 번쩍 들고 이렇게 얘기한거야.
저요! 저요!

그렇게 결혼했다고 밖에는 더 할 말이 없네...^^



* 그 천사는 현재 '질라래비 훨훨' 어린이집에서 다른 천사랑 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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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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