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완벽한 하루 2007. 10. 15. 13:28

와이프가 주말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다.
결국 교회를 다녀와서 서원이와 오후 늦게 놀이터에 나가게 되었다.
사실 이 나들이를 그리 즐겨하지 않는데 그건 내가 '모래놀이'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죄는 아닐진데 아내에게는 죄가 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이렇게라도 아내를 쉬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부름?을 따라 놀이터에 갔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한살 위의 형이 서원이와 놀아주기를 자처하고 나타난 것이다.
결국 이들 둘은 아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해가 져서 아무도 놀이터에 남지 않은 그 순간까지 형제처럼 놀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T.T

나는 그 시간동안 요즘 쓰고 있는 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하느라 사색에 잠겨 있었다.
책을 내기로 구두로만 약속했지만 사실 책을 낼 수 있을 정도의 프로필이 없는 나로써는 언젠가 내게 될, 그러나 당장 내가 고민하는 부분에 집중해서 생각을 정리중이었다.
그리고 고민이 짧은 만큼 밑천은 금방 바닥나서 원고지로 딱 100페이지를 채운 채 잠정 절필중이다 -_-;;;

몇 가지 읽은 책들과 경험, 생각들을 끄적거리다 문득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관심이 갔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애가 창민(나중에 이름을 알았다)이었는데 덩치도 크고 성격도 좋아보이는데 자기보다 작은 아이들에게 계속 맞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장난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도를 넘어선다 싶었는데 특히나 어린 한 녀석의 입이 너무 거칠어 벼르고만 있었다.
그리고 어떤 계기 때문에 창민이를 불러 얘기나 들을 참이었는데 이 아이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대답도 않고 아는 체도 않는다.
무안해서 쫓아가 물어보았더니 '용건만' 말하란다.
옆의 애에게 물어보니 초등학교 4학년...
괜한 의무감에 함부로 움직였나 싶어서 괜히 놀이터만 어슬렁거렸다.

놀이터도 엄연히 작은 사회다.
그 안에도 분명 엄석대 같은 보스도 있고, 갈등도 있고 평화도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어른인 내가 그들의 세계에 어설픈 정의감으로 뛰어든게 결코 옳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싸우는 애들을 말리는 일은 옳았으나 어느 누구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뛰어든 건 잘못이었다.
특히 창민이를 괴롭히던 종천이가 그렇게 나쁜 애였나 스스로 곱씹어 물어보고 있다.

한편으론 두렵다.
나를 닮아 순하기 짝이 없는 서원이가 과연 이 작은 세계에 내던져졌을 때 지혜롭게 처신할 수 있을지...
그리고 무엇을 가르쳐야 그것이 가능해질런지 고민하고 있다.
왕따를 당하거나 이유없이 맞고도 가만 있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닌가.

벌써 내년이면 6살이 되는 서원이를 생각하니
참견은 않더라도 놀이터를 조금 더 연구해야할 필요는 느낀다.
세상살이... 참 쉽지 않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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