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했는데 전화가 왔다.
혹시 핸드폰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버스 기사님의 전화였다.
막 퇴근한 터라 버스에서 흘려버린 줄도 모르고 멍하니 받았다가 설명을 듣고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버스 사무소의 소장님쯤 되는 분이었다.
일찌기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전 직원이 남의 핸드폰을 찾아주기 위해 새벽같이 전화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 핸드폰을 찾아가는 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집은 분당이고 내가 핸드폰을 잃어버린 버스는 용인 어디쯤엔가 있는 강남대 근처에 종점이 있다고 했다.
대충 스무 정류장이 훨씬 넘는 먼 길처럼 보였다.
사실 핸드폰은 수명의 거의 끄트막에 다다른 낡은 폰이지만 그 친절이 고마워서라도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은근히 잃어버리고 새 핸드폰을 장만하고 싶은 욕심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늘 타고 다니긴 했어도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그 버스의 종점을 막 다녀왔다.

무슨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 장터를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그 종점에 도착했을 때
세련된 광역버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고 허름한 2002번 버스 사무소에서 소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자물쇠까지 채워둔 서랍에서 충전까지 해둔 내 핸드폰을 다시 만났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아주기 위해서 남의 핸드폰을 충전까지 해두다니...
작은 감동이었다.
언젠가는 위치추적까지 해서 찾아간 사무실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경험도 있는 나로써는 작은 충격이었다.

워낙 외진 곳을 찾아가느라 음료수 하나 챙기지 못한 나를 아내가 야단친다.
다음주 토요일에는 일찌감치 작은 성의를 담아 그 종점을 한번 더 다녀와야겠다.
그리고 웬만하면 2002번, 2002-1번 버스를 애용해야겠다.
그곳에 가면 웬지 흘려버린 내 마음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황금같은 토요일 오후를 핸드폰 되찾으려 다니느라 다 흘려버렸어도 전혀 속상하지가 않다.

이래서 아직 살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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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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