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떠보니 3시가 좀 못 된 시간이다. 눈을 뜬 김에 책이나 볼까 하다가 어제 12시가 넘어서 잠든 생각이 퍼뜩 들어서 좀 더 자기로 했다. 그리고 4시에 일어났다. 성경을 보고 글도 좀 써보고 하지만 머리가 맑지 않고 자꾸만 졸고 있다. 이런 새벽은 의미가 없다. 다시 눈을 붙였다.

다시 일어난 시간은 7시, 밤이 길어진 탓도 있지만 잔뜩 흐린 날씨라 왠지 아직도 새벽 같은 생각이 든다. 토요일 오전이라 평소에 비하면 주변도 조용한 편이다. 다시 성경을 보고 어제 읽다 만 '향수'를 꺼내 읽고 간만에 잡은 권민씨의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을 읽어보지만 역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종종 이런 날이 있다. 뭘 해도 집중이 안되고 무얼 하겠다는 의욕도 바닥을 드러내는 새벽, 마음이 흐르는 대로 그냥 쉬어버릴까 생각도 해보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런다고 해서 사라진 의욕이 저절로 돌아오진 않았다. 쉰다고 해도 미련은 남아서 올곧게 편히 쉬지 못한다. 이럴 때는 다시금 찬란한 삶의 불길을 타오르게 할 부싯돌을 찾아야 한다. 그건 어떤 뜻하지 않는 생각일 수도 있고, 잊혀져 있던 책 한권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로부터 들은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 그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아 나설 때도 있다.

삶을 전쟁으로 생각하고 싸우려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대개 이런 사람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치열함은 배우되 삶과는 싸우고 싶지 않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삶을 누리고 싶다. 사소한 일상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행복을 캐 올릴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싶다. 지구는 독수리 5형제에게 맡기고 나는 내 삶의 영역에서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캐내고 싶은 것이다. 소시민적인 삶이라 욕해도 상관 없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예배를 드리는데(기독교 기업이므로) 목사님이시자 편집국장님이신 분이 우리를 무척 나무라셨다. 지금 이 나라와 민족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 줄도 모르고 자신의 삶에만 매몰되어가는 나 같은 사람들을 향한 질타였다. 학생운동 때 이름을 날렸던 유시민 씨가 법정에서 남긴 말도 인용하셨다. 이 시대의 불의를 향해 분노하지 않는 자는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옳은 말씀이다. 세상은 항상 이렇게 시대를 앞서 가는 사람들의 분노와 희생을 먹고 발전해왔다.(유시민 씨가 꼭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분노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비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삶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한 가지의 가치로 재단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농부의 나른한 일상이 어쩌면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해온 선각자들의 삶보다 더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 그 판단은 사실 우리의 몫이 아니다.

뭘 억지로 끌어내려 들지 말자. 잔이 가득 차면 넘치듯이 내 생각과 의욕과 가치가 나를 채우기를 기다리자. 새벽을 깨우는 것을 결코 우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책 읽기를 다른 일상의 일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갖다 두어서도 안 된다. 아주 작은 일상으로부터 제대로 배울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위대한 책을 읽어도 더 얻어낼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글을 쓰다 보니 다시 의욕이 솟는다. 또 하루를 살아봐야겠다^^




* 새로운 서재, 책 읽은지 고작 2년째라 책장이 좀 빈약하다. 그래도 거의 다 내 손을 거친 책들이라 그 애틋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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