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책읽기 2006. 11. 30. 21:06

향수 (양장)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열린책들

오랫동안 소설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시간 낭비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없는 시간 쪼개어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소장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간히 도서대여점에서 빌려 읽었었다. 내 생각이 옳다는 게 아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실용적 책 읽기'의 기준에서 보면 두고두고 읽는다거나 밑줄을 긋는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소설은 한번 읽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네이버 '오늘의 책'에서 최고의 덧글 수를 단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요즘 사람들은 어떤 소설에 열광하는가 싶어 간만에 소설책을 주문했는데 바로 그날 와이프가 이 책을 밤을 세워 읽어 버렸다. 그것도 극찬에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와이프와 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이 매우 다르지만 나는 와이프의 책 고르는 수준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 읽기의 무력함'에 대해서 사무칠 정도로 어린 시절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만에 제대로 마음 잡은 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과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언어일까? 아니면 시각이나 청각을 통한 교감? 그도 아니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육감? 그러나 저자는 특이하고 '냄새' 즉 '후각'에 집착한다. 사람과 모든 사물이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맡을 수 있는 그 한계가 너무도 명확한 미지의 영역을 집요할 정도로 파고 든다.

소설의 줄거리는 눈물 날 만큼 간단하다. 후각에 대해서는 천부적인 감각을 지녔으나 사람과의 진정한 교감을 가지지 못한 채 자라난 주인공이 무려 스물 다섯 명의 앳된 소녀들을 살해해서 궁극의 향수를 얻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향수의 위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살인범으로 사형을 집행 당하는 광장에서 몇 천명의 인파들이 '절대 이 사람이 살인자일 리 없다'는 확신으로 전부 온전한 정신을 잃어버린다. 다시 말해 미쳐버리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토록 딸을 지키고자 했던 딸이 살해당한 소설 인물이 그를 보살피고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장면이다.

이 소설의 결말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보다는 이 소설을 쓴 사람의 배경에 더 관심이 갔다. 들리는 얘기로는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칩거생활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토록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이 단절된 세계를 묘사한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는 향기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 말도 옳다. 그러나 그 향기는 자신만이 느끼고 감탄하고 교감할 수 있는 세계였다. 주변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세계였기에 그가 가진 소통의 도구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오로지 '향수'란 이름으로 사용되고 이용될 따름이었다.

이 소설이 소문대로 영화화 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나올까. 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잔혹하고 잔인하며 이기적인 존재이니까. 그러나 그렇다 해서 이 소설 속의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은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놀랍고 새롭기는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서는 행복해질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차디찬 시멘트 바닥 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 있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새로움으로 인한 감탄 치고는 알듯 모를 듯 내 영혼이 상처받은 느낌이다. 남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엄살 떨 생각은 없다. 그냥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것도 교감을 잃어버린 내 영혼만의 향기는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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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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