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

완벽한 하루 2007. 8. 22. 20:09
곧 퇴근하면 벌어질 일이겠지만 서원이는 아빠를 몹시도 기다린다.
문을 열면 '안녕히 다녀오셌습니까'라고 다급하고 불분명한 발음으로 배꼽인사를 한다.
그 모양새가 하도 귀여워 '그래, 서원이는 오늘 잘 놀았어?'라고 되묻지만
돌아오는 질문은 아래와 같다. 단도직입적이다.
"그런데 아빠, 아빠는 오늘 간식 뭐 사갖고 왔어?"

요 몇달 째 같은 질문을 들으면서 나는 나름대로 고민이 생겼다.
몸에 해로운 과자나 사탕 말고는 딱히 간식거리로 사갖고 갈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날마다 기천원씩 하는 과일을 사갖고 가기도 애매하고, 간식을 사려고 이마트에 들르는 것도 시간낭비다.
식당에서 들고온 사탕이나 직원들이 간간히 나눠주는 간식거리는 과자이긴 해도 양이 작아 부담없이 들고간다.
그러나 그마저도 없을 때는 정말이지 대략 난감이다.
그러나 그 간절한 다섯살 짜리 아들의 눈망울을 떠올리자면 '그냥 욕을 먹고 말지'하며 작은 과자부스러기라도 사 들고 가야 한다.

우리에게 '간절함'이 없다면 우리의 삶을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다.
싱싱한 횟감에서 느껴지는 꿈틀거림이 내 삶에서 느껴지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 날마다 맞는 새로운 하루하루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평범할 지언정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성격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내일 아침 일어나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늘 잠자리에 든다면
그저 또 다른 하루를 다시금 낭비하는 그런 삶을 내일 살게 될 것이다.

오늘을 살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만들고, 역사에 남을 하루를 굳이 내가 살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와 내 일을 기다리는 사람,
나의 존재가 이 땅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또 그러한 삶을 위해 나를 의미있게 몰아부치는 그런 하루를 살지 못한다면
정말이지 그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일 또 어떤 간절함을 가지고 눈을 뜰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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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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