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미실!

완벽한 하루 2009. 11. 11. 00:18


"덕만은... 아직... 이더냐?"

평소에 '선덕여왕'을 거의 보지 않던 저도 어제와 오늘 방송분은 보았습니다.
미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서.
엿가락 늘이듯 길어진 스토리지만 어차피 광고로 먹고 사는 방송의 생리를 비난만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오늘 고현정이 보여준 연기는 길이길이 인구에 회자될 명연기였음에 분명합니다.
이 미실의 엔딩을 위해 들인 작가들의 노력에 존경을 표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미실이 그토록 얻고 싶어 했던 그것, 얻으려고 했던 그것,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브랜드가 간절히 다다르고 싶은 궁극의 경지가 아닐런지요.
그 존재만으로도 뿌듯해지는 브랜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그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숭배'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는 브랜드를 제 손으로 만들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CEO아 브랜더들이 간절히 바라는 꿈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돈과 시간, 가족은 물론 인간성까지도 팽개치며 신기루와도 같은 그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만 둘래요."

'더냐'로 일관하던 서슬퍼런 어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 남자의 여자, 한 아들의 어머니로 찰나처럼 돌아오던 인간적인 미실의 모습을 혹 보셨습니까?
아주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저는 보는 내내 그것이 과연 '연기'만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군요.
미실이 그러했듯 현실 속의 고현정도 그 비슷한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저토록 열렬히 자신을 태워가며 연기했던 것은 아닐런지요.
그리고는, 그렇게 독하게 살아가기 위해 가슴 속 깊은 곳에 쌓아두었던 회한을 작은 독백을 통해 설핏 흘리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인간의 욕망이란 때로는 인간의 손을 뿌리치고 나가 그것을 만들어낸 주인에게 날카로운 화살을 돌리기 일쑤입니다.
미실도, 인간 고현정도, 아니 우리 모두도 '욕망'과 싸우려는 무모한 도전을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혹 오늘의 엔딩에서 배울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 비난받게 될까요?

나는 미실이 '나눌 수 없도록 연모한 그 무엇'이 자신의 삶과 바꿀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만한 야망을 담을 그릇이 될 수 없다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대응하고, 움직이기 위해 쏟을 그 에너지를,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나의 가족을 행복하게 하며, 나를 만나는 이들이 행복하게 하는데 아낌없이 모두 써버리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두 시간 넘어까지 열렬히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모 회사 이사님의 얼굴과 조언들을 하나씩 둘씩 되새기고,
멋진 아이디어가 있다면 흥분된 목소리로 퇴근길의 내게 전화를 주셨던 사장님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직접 장에 나가 사온 생고등어로 지상에서 둘도 없는 찜요리를 해준 아내의 솜씨를 떠올리고,
자신의 엉덩이에 얼굴을 갖다대라 한 후 아낌없이 방귀를 뀌어댄 네살배기 딸아이의 영민함?을 떠올리면서,
한낱 드라마이지만, 생각의 공간과 지혜의 메시지를 오롯이 담아내온 '선덕여왕'에게 감사할 수 있다면,
그래서 뭔가 큰 일을 이뤄낼 듯한 흥분으로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지금 이 순간입니다.

브랜드가 사람을 닮았다면,
그런 하루를 경험하게 해줄 브랜드라야
만드는 이도, 그것을 사는 이도 행복해질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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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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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나도 맥을 샀었다.
아마도 모델명이 파워맥 7500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 형편으로 보나, 집에 또 다른 PC가 있었던 것으로 보나 대단한 무리수였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는 인터넷도 없었고, 아이팟도 없었고, 스티브 잡스도 몰랐고, 무엇보다 주위에 맥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교회에서 주보를 인쇄해주던 기획사에 맥이 있었는데, 내가 맥을 통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퀔 익스프레스'로 주보를 편집하는 일이었다(그것도 컬러가 아니라 올흑백으로-_-;;;)
디자이너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회학도였으므로 포토샵도 일러스트레이터도 쓸 일이 없었으니...
결국 눈물을 머금도 되팔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유니타스브랜드 이번 호 특집 기사중 '애플에 중독되다, Apple code'를 읽으면서 그 '아픈?' 기억이 다시금 새롭다.
나는 매니아가 아니었으므로 '견디지' 못하고 팔아버렸지만, 이 세상에는 나같지 않은 맥마니아들로 넘쳐난다는 사실에 쓸쓸하기도 하다.

'아마 IT업계에 디지털 신이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용산(동산이 아니라 전자상가들이 밀집한 용산이다)에 있는 노트북은 네가 임의로 쓰되 선악을 알게 하는 애플의 노트북은 쓰지 말라. 네가 쓰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59p.)'

UB는 여느때처럼 도발적으로 맥북과 노트북을 평범한 사과와 선악과로 구분 짓는다.
빌 게이츠가 들으면 거품을 물겠지만 맥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적절한' 표현이라며 흐뭇해할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 이 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 역시 지금 출시가 임박한 '아이폰'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조금만,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홍대 앞 매장에서 파워맥북을 쓰다듬고 온다.
그 미칠듯한 기분은 겪어본 사람들만 알리라.

애플이라는 브랜드가 영악한(?) 것은 노트북이라는 기계를 팔지 않고 'i'(취미와 일)가 'I'(자아)가 되게 만든 점이다. 애플은 노트북을 통해(도구를 이용해서 ) 자신을 발견, 탐구, 확장, 완성 그리고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그리고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애플에게는 브랜드 중족보다는 '자기 완성'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65p.)

이쯤되면 한 브랜드에 대한 호의를 넘어 거의 찬사에 가깝다.
그러나 유니타스브랜드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많은 해외석학들이 오로지 '애플! 애플! 애플!'하고 소리 질렀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브랜드에겐 과찬이기보다는 생존을 위해서, 브랜드의 영생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란 생각을 지울 길 없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소비자가 이런 브랜드를 너무도 갈망하고 있는 탓이다.

이 아티클을 읽는 나는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를 듣고도 다리가 부러져 쫓아가지 못하는 소년이 된 기분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 간절함이 더 뼈에 사무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아티클은 브랜드 중독의 이유에 관해 '그냥'이라는 답변으로 마무리한다.
소년이 마을사람들에게 대답했듯이,
그 소리가 그저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고...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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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00년 전쯤의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 내가 맨 선봉에 있다고 생각해본다. 그것도 장군이 아니라 아주 말단의 병사가 되어서 말이다. 어제 밤새 날을 세운 검이 손 끝에서 가볍게 떨린다. 옆에 선 동료병사의 거친 숨소리가 파동처럼 번져 나의 숨소리와 구분되지 않는다. 갑자기 저쪽에서 사기를 돋우는 병사들의 방패 두들기는 소리가 천둥 벼락처럼 들려온다. 오금이 저리는 공포심이 파도처럼 덥친다. 두 다리에 바짝 힘을 주고 두 눈끝에 힘을 모아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 지금 내가 싸워야할 대상은 적이 아니다. 바로 내 속의 공포다. 죽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내 앞의 한명 한명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살아남을 욕심보다 내 속의 공포에 밀리지 않는 것, 그것이 우선이다. 생명은 하늘에 맡길 뿐이다. 잠시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까마귀 한 마리가 두 진영의 가운데를 배회하듯 날고 있다. 행운을 빈다. 나 스스로에게 한번 쓰윽 웃어주었다.


물론 이 얘기는 가상의 이야기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불황의 공포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한 병사의 운명이나, 월급에 삶의 모든 것이 걸려있는 직장인의 그것이나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불황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이나 노숙과 같은 인생포기자의 심정을 헤아릴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 절박함의 원천에는 '불안'이라는 인간 심리의 맨 밑바탕에 존재하는 공포감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감봉이나 퇴직보다 이러한 공포감과 더 많이 싸워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불황'이 사실fact라면 '불안'은 인식이다. 군생활을 전경으로 마친 나는 전역 신고하던 날 가장 치열한 광주의 시위현장에서 수백 수천개의 돌이 총알처럼 날아다니는 현장을 발로 뛴 동기들을 만났다. 비교적 '안전한' 전경생활을 했던 내가 얼마나 힘들었냐고 묻자 피식 웃으며 대답하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그 현장을 즐겼다고 말했다. 어쩌면 극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그들은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다큐채널에서 등반 중 추락사고를 당한 여자등반가의 이야기를 TV로 본 적이 있다. 발이 부러져 속살과 뼈가 드러날 정도의 큰 사고였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발을 끌고 밤새 산을 내려고 구조를 받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사고이고 그 극심한 고통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경외심마저 들던 찰나 나레이션이 흘렀다.
"인간의 몸은 극한 상황이 오면 통증을 전달하는 신호를 차단합니다. 이것 역시 인간의 몸이 지닌 위대한 메커니즘의 일부인 것이죠."

불황은 트렌드에 편승한 연약한 브랜드들을 걷어내고 아주 실용적이거나 생명력 넘치는 가치 지향적인 진짜 브랜드들을 가려낼 것이다. 불황은 연약한 인간들에겐 가혹한 현실이 되겠지만 도전 정신과 의지력으로 뭉친 사람과 기업들에겐 기회의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인간, 그리고 삶의 법칙이기도 하다.
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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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창간될 잡지의 인용 문제 때문에 구본형씨에게 메일을 썼다.
놀랍게도 오전이 다 가기 전에 답장이 왔다. 그것도 위트 넘치고 유쾌한 허락의 메일을...

이 곳에서는 하워드 가드너나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같은 당대 최고의 교수들에게서 원고를 자주 받는다.
처음엔 긴가민가 하면서 메일을 보내지만 정성을 다한 답변을 받고 담당 에디터들이 종종 감격하는 모습을 보았다. 반면 국내 대학의 교수들은 고자세로 일관한다.거절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잡지에 감히 내 글을...' 이런 뉘앙스가 섞인 대답을 듣는 모양이다.
이건 뭔가 잘못된거 아닐까?

물론 제 3국이라 할 수 있을 낯선 나라의 메일이 신기해서 답장을 했을 수도 있다. 국내에서야 우리 잡지 인지도가높다고 할 수 없으니 굳이 이해하라면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진짜 프로를 가려낼 수 있다고 믿는다.

구본형씨가 누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자기계발서 저자이자 강사가 아니던가. 그런데 나는 이 분에게 메일을 보낼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정말 사람을 아끼고, 사람의 열정을 아끼고, 또한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진짜 프로가 되고 싶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만큼, 그리고 성공한 만큼 겸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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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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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be...

완벽한 하루 2008. 9. 25. 10:35
얼마 전 사장님이 회사 막내 직원을 조용히 불러서 '회사에서는 워드를 써요. 아래한글은 학교에서나 쓰는거라구'라며 타이르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순간 뜨끔했다. 나야말로 직장생활이 10년이 가까워오는데도 아래한글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학교형 인간이 아니던가. 물론 재주껏 병행해 쓰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글 쓰는 업으로 전환되면서 이 워드의 존재가 내게 적지 않은 숙제가 되어버렸다. 아래한글의 아주 초기부터 2.5 버전과 3.0b 버전의 화려한 등장을 목격했던 나로써는 세상의 중심에 서버린 워드의 존재가 여간 마뜩챦은게 아니다. 그러나 내가 아래한글을 선호하는 게 과연 그 이유때문만일까?

막 작업을 시작하면서 깨달은건데 내가 워드를 불편해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나친 친절 때문이다.
'1'을 치고 '.'을 쳐서 번호라도 매길라치면 아예 개요 스타일로 바꿔버린다. 나는 이게 여간 불만스러운 게 아니다. 항상 자동개요가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도움말을 살펴보면 이 자동기능을 끄는 기능도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겠지만 오피스의 이런 자동 기능은 가끔씩 나를 숨막히게 하고 열정적으로 일에 나서는 나의 의욕을 아주 엉뚱한 이유로 끊어버리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완성 기능 자체를 뭐라 하는 건 아니다)

'좀머씨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이 사람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한사코 다른 사람들의 참견을 거부한다. 결국 주인공은 좀머씨가 호수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고도 침묵하는데 그것은 평소의 그처럼 '날 좀 내버려두라고...'라고 대답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가끔씩은 내버려두자.
아내가 너무나 어려운 방법으로 블로그를 쓰거나 프로그램을 실행시킬 때도 내버려두자.
효율과 속도만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귀챦게 군다면 비틀즈의 Let it be 를 틀어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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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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