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이은영 2006. 12. 24. 07:43

서원력 44개월하고도 24일




아마 다섯 살 때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부모님께 "왜 우리 집엔 산타가 안 오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원래 산타란 없으며, 선물들은 다 그 집 엄마, 아빠들이 준비한 것이다."라는 대답을 듣고, 꽤나 큰 충격을 받고, 생애 처음으로 부모님 말을 안 믿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몇년간은, 원래 산타가 있거나, 없거나...

부지런히 양말을 준비해서 머리 맡에 놓았다가, 아침이면 실망하는 짓거리를 반복했었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양말을 부지런히 뒤지고서는 실망해서 우는 딸을 놀리는 부모님이라니...으으...


.............................................................................



어린이 집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오셔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시간을 마련하니, 선물을 원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마트의 그 현란한 선물코너에서 고민고민하다가, 골라서, 포장해서, 멧세지를 적어서, 서원이 몰래 원으로 보냈다.


고르고, 계산하고, 포장하고, 원으로 보내서, 다시 서원이가 선물을 집으로 들고 오기까지, 딱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서원이가 좋아해야 할텐데....'


행사 당일, 원에서 돌아오는 서원이는 신이 나 있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셨어!!!!"

선물을 조립하면서도 신나게 말한다. "엄마, 아빠오면 선물 자랑할거야."

아빠가 퇴근하자마자, 큰소리로 외친다. "아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셨어요!!!!"

이모가 오자, 이모에게도 신나게 자랑한다. "이모, 이거 산타할아버지가 주신거야!!!"


어린이 집 사진을 보니, 산타할아버지 무릎에 안겨서 선물을 받고 있는 서원이 모습이 찍혀있다.

대강 솜으로 수염만 만들어 붙이고, 옷도 촌스런 산타 복장이건만, 서원이는 그 분이 '진짜' 산타 할아버지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흐흐흐.....




이틀 내내, 산타 할아버지한테 받은 선물에 푹 빠져 지내는 아들을 보노라니, 이루말 할 수 없는 그 은근한 기쁨 한 켠에, 부러움이 살짝 떠오른다.

'짜식..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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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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